한예종 최초 말라위 유학생 림바니씨 · 필립씨

▲ 림바니씨(앞)와 필립씨는 말라위에서 음악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유학생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지난해 아시아우수예술인재 장학프로그램인 AMA장학생 범위를 아프리카로 확대하며 첫 수혜자가 됐다. 현지에서는 이들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타인을 위해 연주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는 말라위에서 온 두 흑인 청년이 품은 당찬 포부다. 지난해 11월 한국예술종합학교 AMA(Art Major Asian scholarship)장학생에 선정돼 한국을 찾은 림바니(21, Munthali Limbani)씨와 필립(19, Philip Mwanjasi)씨. 이들은 각각 색소폰과 키보드를 연주한다.

“우린 꿈이 있었지만 말라위에서는 악기도, 책도 없었습니다. 지역의 유스센터에서 드럼과 낡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했죠. 말라위에서 음악가는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쓸모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만 그래도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스센터는 국제봉사단체들이 말라위를 비롯한 아프리카 지역 빈민가 청소년들을 위해 마련한 교육시설이다.  그곳이 그들에게는 꿈을 꿀 수 있는 장소였다.  두 청년의 꿈은 음악교사다. 그러나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의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어린 시절 가족을 통해 접한 음악이 전부였다. 

“처음 음악을 접한 것은 가족들의 허밍을 통해서였어요. 할머니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셨거든요. 그들의 노래를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다가 동네사람들에게 시끄럽다고 핀잔을 들은 적도 있지만, 그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림바니)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면서 노래를 했는데 성가대에서 리코더를 선물해줬어요. 그 매력에 빠져 혼자 도서관에서 음악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커서도 음악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죠.”(필립)

그랬던 이들이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2009년 정년퇴임과 함께 은퇴한 김청자 한예종 교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게 했다. 은퇴 후 말라위에서 고아후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김 교수는 말라위의 검은 원석이던 두 청년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가 유스센터의 고아원을 방문해 후원하고 있을 때, 직접 찾아가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고민하던 김 교수는 자신의 집에 음악학교를 열고 우리를 초청하셨죠. 매일 4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래도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림바니)

음악에 재능을 보인 두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김 교수는 마침 한예종에서 AMA장학생 대상을 아프리카로 확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AMA장학생은 한예종의 아시아 우수 예술인재 프로젝트로 4년 장학금과 체류비를 비롯해 매달 70만원의 생활비까지 지급하는 장학제도다. 한예종은 지난해 이 장학제도를 아프리카 지역까지 확대키로 결정했으며 림바니씨, 필립씨는 이 제도의 첫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말라위에서 색소폰을 사려면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가야 할 정도거든요. 꿈을 향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이요? 꿈에 다가간다는 기대가 훨씬 컸어요.”(림바니)

두 청년에게 이제 음악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국의 우수한 재원들과 실력으로 겨루며 매일 치열하게 실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 자던 말라위의 생활은 이제 없다.

“이번 학기는 9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전공음악 연습과 색소폰 앙상블, 피아노 코러스, 실내악, 한국어무법, 서양음악사 등이에요. 음악수업은 교수나 학생의 움직임을 보며 따라하면 되지만 언어는 정말 어렵습니다.”(림바니)

“처음 한국에 와 강의를 들었을 때 한국학생들이 너무 잘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뒤처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하지만 그들과 시작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필립)

물론 그들도 고향이 그립다. 국제전화도 양자부담이라 전화도 마음대로 걸 수 없다. 찾아가는 것은 더 힘들다. 비행기삯이 360여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고국에서 음악교사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그들은 그리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김 교수님이 말라위에서 올리시는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랩니다. 말라위는 꿈을 향한 지원이 전혀 없는 곳이었죠. 그러나 유스센터에서, 김 교수의 음악학교에서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 있죠. 환경이 너무 좋아졌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아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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