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향해뛰자]①정부정책 개선방향

수상자 다수 10~20년 전 연구 성과 나중에 인정받아
단기성과 기대 어려운 독창적·창의적 연구 주목해야
“연구개발 지원예산 일부 성과 바라지 말고 지원하라”

[한국대학신문 신하영 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서 창조경제가 화두다. 창조경제는 탄탄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창의성을 접목,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지표로만 놓고 볼 땐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다. 연구개발 투자총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5위에 올라있고, 연구 논문 수는 세계 11위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SCI 논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4%로 10년 사이 두 배나 증가했다.  세계 1ㆍ2위 정보기술(IT)을 보유한 기업을 가지고도 있다. 그러나 고도성장과정에서 응용과학의 발전이 있었을뿐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등한 시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과학 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본지는 이러한 현실을 반성하며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정부ㆍ대학ㆍ기업ㆍ연구기관의 역할 등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노벨상은 1896년 타계한 스웨덴의 공업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돼 1901년부터 수여됐다. 1969년부터 수여된 경제학상을 제외하면 6개 분야 중 물리·화학·생리의학·평화·문학상 등 5개 분야가 수상자를 배출한지 111년이 넘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 이후 경제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뒀지만, 아직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경제성장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이뤄진다고 봤을 때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가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을 기대하기기는 요원하다고 판단한다. 향후 10년 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도 있다. 그 이유가 뭘까.

▲ <사진출처:동국대>

◆ “10년 내 노벨과학상 배출 불가능”= 한국연구재단은 지난해 초 ‘노벨과학상 수상 연구주제의 형성과정 분석을 통한 미래 유망 연구주제 발굴’이란 연구보고서를 냈다. 이 연구의 책임을 맡았던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는 “향후 10년 내 노벨상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풀(Pool)이 정해져 있다”며 “그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은 없다. 앞으로 10년 내 한국이 수상자를 배출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도 말했다.

그렇다면 과거 100여년 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특징은 뭘까. 전 교수가 연구책임을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2가지 공통적인 유형이 나타난다. 먼저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는 장기간에 걸쳐 매우 높은 피인용률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 △대다수 수상자들이 노벨상에 앞서 울프상, 래스커상 등 각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을 먼저 수상한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공통점들 때문에 해당 연도의 노벨상 수상자는 대부분 예측 범위 내에서 배출된다. 지난해 10월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도 이미 수상이 예측됐던 학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향후 10년 내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과학자는 아직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관련, 우리나라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경제·산업발전을 이룩해 왔지만, 노벨과학상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패스트 팔로어는 다른 기업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으면, 이를 벤치 마크해 1위 기업보다 개선된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는 전략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 전략으로 경제성장을 이뤄왔지만 노벨상의 경우 이와는 반대되는 정책이 필요하단 뜻이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연구에 전념하고 연구 성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독창적 연구에 주목하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낸 연구논문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이 인용됐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결과가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해도 20~30년 후에는 그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과 창의적·독창적 연구일 때 이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지원체제는 노벨상의 주요 심사기준 중 하나인 독창성(originality)과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연구지원사업이 그간의 실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BK(두뇌한국)21이나 WCU(세계적수준의연구중심대학육성)와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에선 연구 실적을 많이 가진 연구그룹을 선정해 지원해 왔다.

논문이 많이 나오는 분야는 독창적 분야이기 보다는 이미 선행 연구가 많이 진행된 분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그간 패스트 팔로어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우리나라가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수상을 도와줬다는 촌평도 나오는 것이다. 이미 개척된 된 연부분야에 천착하다보니 선행 연구에 대한 인용을 많이 하게 되고, 수상자들의 논문 인용빈도 수를 높아주는 결과를 나왔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전승준 교수는 “결국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선 정부 연구개발 지원 규모에서 일정 부분을 단기적 성과를 바라지 않고 배정하는 게 필요하다”며 “연구비 유용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만, 당장의 성과는 나오지 않더라도 독창적이거나 창의적 연구를 꾸준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성실 실패를 용인해 줘야”= 이 조언과 관련해 참고할 사례가 있다. 일본의 경우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늘리기 위해 2001년 제 2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세웠다. 향후 50년간 노벨상 수준의 과학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한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노벨상은 좋은 연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한 때 국제과학계의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 이후 일본에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거의 해마다 배출되고 있다. 지난해 야마나카 신야 교수를 포함해 지금가지 모두 16명의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일본은 과거부터 대학 교수들에게 논문 등의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대로 하라’란 식의 지원을 꾸준히 해 왔다”며 “그래서 2000년대 들어서서 인풋(투자)에 대한 아웃풋(성과)이 없다는 사회적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 직후부터 과학상 수상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지원체제에서도 ‘성실실패 용인(honorable failure)’에 기반한 꾸준한 투자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과정이 충실할 경우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과감한 정책도 필요하단 뜻이다. 그것도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향후 수십년 앞을 내다본 꾸준한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김병식 초당대 총장은 “실적만 갖고 얘기하면 이미 연구가 많이 된 분야를 파서 빨리 실적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라며 “이런 풍토에서는 독창적인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2008년 포스텍 과학문화연구센터가 지난 30년간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 등을 분석한 ‘노벨과학상 분석 및 접근전략’ 연구보고서에서도 전문가들과 비슷한 분석이 나왔다.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우수 연구인력 확보를 위한 젊은 연구자 양성과 지원사업 확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연구환경 구축과 지원 △해외 유수 연구기관이나 학자들과의 네트워크 강화 등이 필수 조건이란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가까운 장래에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기존 학자들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신진학자에 대한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창의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영재교육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노벨상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지적도= 노벨상의 가치를 두고서도 논란이 많다. 노벨과학상이 전체 과학기술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의견과 ‘상에 목을 매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교차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노벨상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만의 경우 오히려 80년대에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후 과학기술이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노벨과학상을 훌륭한 연구 성과의 결과물이나 명예로 간주해야지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45개 국가가 모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과학상이 국가발전에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인구 760만 명의 작은 나라인 스위스가 천연자원도 없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길 수 있었던 배경으로 노벨상을 지목한다. 스위스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29명으로 인구대비 비율로는 세계 1위다. 백혈병 치료제 시장을 석권한 ‘글리벡’도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의 단백질 분석기술로부터 탄생했다.

김승환 교수는 “노벨상 수상은 연구자 개인에게도 필생의 연구 성과에 대한 하나의 국제적 인정이지만 사실 왕도는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도전적인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길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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