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구년 다녀온 나희덕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박한 행복 누리는 그들 통해 한국의 삶 돌아봐”
산문집 ‘저 불빛들을···’, 강의서 ‘한 접시의 시’ 발간 
 

[한국대학신문 민현희 기자] ‘지금 나는 멀리 있다. 다른 나라에서 낯선 공간과 시간을 고요하게 두근거리며, 서성거리며, 출렁거리며, 통과하고 있다. 그 출렁거리는 물결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강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고는 한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게 많은 것을 흘려보낼 수 있게 해준다.’ (나희덕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가운데)

벚꽃이 흐드러진 4월의 캠퍼스에서 나희덕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를 만났다. 나 교수는 지난해 연구년을 맞아 영국 런던대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1년을 보내고 지난달 조선대로 돌아왔다. 그는 “연구년은 많은 것을 비워내고 또 그 자리를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며 “바쁜 삶에 쫓겨 생각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 삶의 방식 등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생산성이라는 게 있다는 뜻이지요. 연구년을 통해 시인으로서, 교수로서, 또 한 개인으로서의 숨 가쁜 일상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영국에 있는 동안 나 교수는 그동안 써놨던 원고들을 정리해 산문집 ‘저 불 빛들을 기억해’와 현대시 강의서인 ‘한 접시의 시’를 펴냈고 굵직한 영국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새 책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의 삶은 한국에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와 행복한 삶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 교수는 “누군가 영국을 ‘성장기를 지난 늙은 개’에 비유했다. 그만큼 영국은 사회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변화에 대한 의지도 약한 편”이라며 “그럼에도 그들만의 문화적 전통과 자산, 창의적 전인교육, 성숙한 시민의식 등은 영국을 지탱하는 묵직한 힘이 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대학에 가고 돈을 많이 벌고 더 유명해지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 소박하지만 자기만의 삶을 즐기고 성찰하는 영국인의 일상을 보며 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며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영국이라는 정체된 거울에 비춰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 교수는 영국 체류 중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하고 자급자족하며 절제하는 삶을 실현하는 브루드호프 공동체에서 일주일 정도를 생활했다. 그는 “소유가 없으면서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는 브루드호프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삶에 나 역시 상당히 많이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곳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말하고 그러면서도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1989년 ‘뿌리에게’로 등단한 나 교수는 그동안 김수영 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내로라하는 문학상들을 섭렵하며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시 쓰는 일이 갈수록 쉬워지는 게 아니라 어렵고 두려워진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등단 후에도 10여년은 습작생 같은 마음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그동안 각종 문학상을 받은 게 동료 시인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연구년을 마치고 돌아와 1년 동안 새로 나온 시집들을 읽으면서 ‘참 치열하게 쓰는 시인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받았어요.”

시인과 교수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갈수록 힘든 게 사실이지만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며 “교수로서도 최선을 다하지만 시인으로서도 최선을 다해야 문학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요즘은 시를 쓰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줄었다고들 한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그러나 곳곳에 뛰어난 젊은 시인들이 많이 있다”며 심보선, 진은영, 김선우, 황인찬 등 수많은 젊은 시인들의 이름을 꼽았다.

그는 “내가 심사해서 등단한 시인들이 훌륭히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기쁘고 보람차다”며 “올해 말쯤 새 시집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 많은 것들을 채워 돌아온 만큼 삶에, 작품 활동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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