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U·프론티어사업 등 종료…IBS 등 대형 프로젝트에 '기대'

지난 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브레인'(BRAIN)이라는 이름의 연구 프로젝트 추진을 선언했다. '혁신적 신경기술 진전을 통한 두뇌 연구'(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을 뜻하는 이 계획은 인간의 뇌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다. 미국은 이미 1990년 '뇌연구 10년'(Decade of the Brain)과 2006년 '신경과학 청사진'(Neuroscience Blueprint)을 발표한 바 있다.

이웃 일본도 21세기를 '뇌연구의 세기'로 선언하고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뇌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인간의 인지현상과 뇌질환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뇌와 맞먹는 규모와 기능을 갖춘 인공신경망을 개발하려는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시작해 올해부터 10년간 2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책정했다.

이런 선진국의 대형사업 발표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뇌연구 분야 연구자들은 요즘 한숨을 쉬고 있다. 15년 전 '뇌연구 촉진법'까지 만들었던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이 분야의 예산이 감소하고, 기존 대형 지원사업도 중단 또는 종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 예산 감소
24일 정부의 '연구개발사업 종합시행계획'에 따르면 올해 뇌과학원천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지난해 128억6천만원에서 올해 91억1천만원으로 29.2%(37억5천만원) 감소했다.

감소분 중 25억원은 올해부터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산하 한국뇌연구원의 운영비가 별도로 산정된 데 따른 것이지만, 이를 제외하고 따져도 12억5천만원이 줄었다.

특히 '차세대 뇌영상시스템 개발' 예산은 올해 아예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이 사업에 책정됐던 30억원은 연구자들이 민간 부문 매칭을 성사하지 못해 불용예산으로 반납됐고, 이에 따른 불이익이 가해져 5년간 국가가 598억원, 민간이 496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당분간 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게 된 것이다.

다만 뇌신경생물, 뇌신경계 질환, 뇌인지과학, 뇌신경정보·뇌공학, 뇌융합 등 '뇌연구 5대 분야'별 핵심요소기술 개발에 약 25억9천만원이 신규로 지원될 예정이다.

◇ 대형 프로젝트 잇따라 종료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외의 뇌 연구 분야 대형 프로젝트도 올해 들어 잇따라 중단됐거나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아 왔던 재단법인 '뇌기능활용및뇌질환치료기술개발연구사업단'은 지난달 말로 3단계 4차년도가 끝나 9년 7개월만에 사업을 종료했다. 이 사업에는 10년간 정부 899억원, 민간 159억원 등 1천58억원이 투입됐으나, 지난해 106억원을 끝으로 지원이 끊겼다.

또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이 올해 여름으로 종료됨에 따라 2009년 신설돼 그간 국내 뇌연구 분야에서 큰 역할을 맡아 온 서울대 뇌인지과학과와 고려대 뇌공학과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전자는 '뇌인지과학연구사업단', 후자는 '뇌공학융합기술연구사업단'이라는 WCU 사업으로 신설됐는데, 만약 WCU 사업 종료로 지원이 중단될 경우 그간 쌓아 온 해외 석학들과의 네트워크나 연구자 양성에 큰 지장이 생길뿐만 아니라 학과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 실제 투자, 목표에 미달
이런 대형 프로젝트가 종료되더라도 후속 계획이 나올 것이므로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지만 과거 정부 투자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전례가 있어 연구자들은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8년 뇌연구 촉진법을 만들면서 야심찬 연구 지원·투자 계획을 밝혔으나 실제 지원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제1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상 1998∼2007년 정부의 이 분야 투자는 4천106억원으로 잡혀 있었으나 실제 투자 규모는 계획의 77.4%인 3천180억원에 그쳤다.

또 제2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뇌 연구 분야의 기존사업 확대와 신규 사업에 2008∼2017년 1조5천억원을 투입키로 돼 있으나 이것은 제1차 계획 기간의 투자 성장률(연평균 17.4%)을 전제로 세운 것이다. 정부 스스로도 "연차별 투자액은 예산편성 및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권준수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뇌과학 연구는 이미 '총성없는 전쟁'으로 불릴만큼 선진국들은 국가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뇌인지과학분야에 획기적이고 과감한 국가수준의 투자 및 연구기반 확충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프로젝트들은 '인간 고등인지 기능의 뇌과학적 규명과 인간 뇌질환의 근본적 규명'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으나, 한국의 뇌과학 지원정책은 여전히 전통적인 생물학적 접근법 위주로 구성돼 있어 세계적 연구 흐름의 큰 변화를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비판했다.

◇ 정부 입장
주무 부처인 미래과학기술부는 "전체적으로 보아 뇌과학 분야 예산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거 뇌연구촉진기본계획의 투자 계획이 목표에 미달하기는 했으나 이는 장기 기본계획에서 자주 있는 일이며, 뇌과학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늘어 왔고 이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는 것이다.

다만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따라 노벨상급 업적에 도전하거나 특허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업에 '몰아주기식' 투자가 이뤄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늘어날 가능성은 미래부도 인정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국가 전체로 보면 뇌과학 관련 예산이 굉장히 늘었지만, 앞으로는 연구단별로 연간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이나 한국뇌연구원 등 대형사업에 예산이 집중될 전망이어서 상당수 연구자들이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IBS 등은 아직 뇌연구 분야 사업단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또 교육부 등 다른 부처들이 관할하는 WCU나 두뇌한국21(BK21) 등의 후속 사업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이 사업들은 다른 분야들과 경쟁해야 하고 뇌과학만을 위해 예산이 따로 책정된 것이 아니어서 연구자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정부 부처별로 후속조치는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달께 올해 뇌연구촉진시행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연합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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