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창업을 하고 싶은데 계속 학교에 남아 전공수업을 들어야 할까요?”

지난 21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서울대에서 학생들과의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을 때 공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질문을 던졌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빌 게이츠에게는 적잖이 생소하게 느껴질 물음이 아닐 수 없다. 학생창업이 보편화 돼 있는 구미 대학들과는 달리 학업과 사업을 캠퍼스에서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학생의 고뇌가 엿보인다.

이 학생은 2년 전 서울대 안에서 10여명의 학부생, 석사과정생과 IT기업을 만들었으나 이로 인해 교수들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 그 결과 일부 학생은 학업을 그만 두기에 이르렀고 기업은 학교 밖으로 옮겨야 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독려하고 지원을 해줘도 부족한 마당에 교수들이 구시대적인 학문 잣대로 자라나는 새싹의 성장을 막아버린 것이다. 국내 최고 지성의 전당임을 자부하는 서울대가 이럴진대 다른 대학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학원생을 소유물 정도로 여기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연구실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국내 대학원에는 졸업 감사비, 논문 대필, 제자 연구 가로채기 등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관행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과도한 행정업무는 더 이상 이슈가 될 수 없으며 교수와 선배의 성폭력은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지곤 한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인재들이 일찍이 유학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식과 창의성을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시키는 인프라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그 중추 역할을 대학 연구실이 담당하는 게 가장 타당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연구실에 갇혀 지도교수들의 눈치나 보는 ‘두뇌’들에게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재들이 이 땅에서 제대로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도 높은 연구실 문화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은 장학금 시스템 개혁과 업적평가 개선 등 연구실의 비뚤어진 관행을 뿌리째 뽑아내도록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말로만 창조경제를 외칠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대학원생 연구 지원방안을 내놓는 등 체질개선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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