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향해뛰자]③연구지원 현황과 개선점

정부 ‘국가과학자’ ‘WCU’ 등 기초과학연구 지원 대대적 강화
“단기적이고 실적 위주인 지원책 개선하고 기본부터 탄탄히”

[한국대학신문 민현희·최성욱 기자] 우리나라 정부가 노벨과학상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이후 정부는 기초과학 진흥을 위한 지원을 꾸준히 강화해왔으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히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연구 토양’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부, 기초과학 육성 본격화 = 한국이 낳은 ‘천재 핵물리학자’, ‘이론물리학계의 거목’ 고(故) 이휘소 박사가 197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사망 3년 전, 그는 당시 물리학계의 난제였던 ‘매혹 쿼크’의 존재를 예측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이 쿼크와 관련된 소립자를 발견한 학자들이 노벨물리학상을 휩쓸었고 이 박사 사망 1주기 추모강연장에는 당대 최고 석학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거 자리했다.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노벨과학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 박사의 죽음은 서양 학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벨과학상을 한국인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1977년 한국과학재단이 설립됐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우수과학연구센터(SRC), 우수공학연구센터(ERC)사업 등 기초과학육성을 위한 정부 과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노벨과학상에 대한 그간의 열망을 현실화 하는 기폭제였다. 정부는 기초의과학연구센터(MRC, 2002년), 국가핵심기초연구센터(NCRC, 2003년), 지방연구중심대학(2004년) 등 기초과학지원정책을 쏟아냈다.

이 시기에는 아예 노벨과학상을 따내기 위한 전략적 국가지원사업도 나왔다. 2000년 초반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를 내고 최고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내 연구자 11명을 ‘국가과학자(Star Faculty)’로 선정했다. 이들 기초과학자에게는 연간 최대 2억원씩 최장 10년을 지원했다.

■ 정부·대학 “노벨상에 더 가까이” = ‘BK(두뇌한국)21’ ‘WCU(세계적수준의연구중심대학육성)’ 등 대규모 지원 사업도 이어졌다. 특히 이 가운데 WCU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수상 경험이 있는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연구결과가 반영됐다.

이 사업을 통해 정부는 2008년부터 5년간 8000억원에 달하는 국고를 투입했다. 총 33개 대학에서 140여개 과제를 수행했고 노벨상 수상자 9명을 포함해 342명에 달하는 해외 학자들을 영입했다.

WCU 사업은 국내 대학들의 연구역량 강화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지난해 5월 발간한 ‘WCU 사업의 성과와 과제’ 보고서에 의하면 2008년 12월부터 2011년 8월까지 WCU 사업단에서 총 5736편의 논문을 SCI급 저널에 게재했다.

특히 이 가운데 2271편(39.6%)은 SCI급 상위 10% 저널, 81편(1.4%)은 SCI급 상위 1% 저널에 게재되는 성과가 나왔다. SCI급 논문 1인당 인용지수(Impact Factor)는 WCU 참여 전 13.61%에서 참여 후 17.65%로 30.2%P 향상됐다.

각 대학들도 연구 잘하는 교수들을 집중 지원하며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팔을 걷었다. 서울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구 업적을 내고 있는 교수들을 지원해 노벨상과 이에 준하는 국제 학술상 수상자를 배출하고자 지난해부터 ‘창의선도 연구자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임지순 물리천문학부 교수 등 3명이 창의선도 연구자로 선정, 5년간 연 4억원씩의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또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교수 등 5명은 창의선도 중견연구자로 뽑혀 3년간 연 2억 6000만원씩을 지원 받는다.

이와 함께 고려대는 올해 문을 연 KU-KIST융합대학원을 통해 ‘학연(學硏) 교수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교수와 연구원이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동시에 근무하는 제도로 우수한 과학자가 고려대와 KIST 양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연구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 “장기적 투자로 토양부터 다져야” = 이 같은 정부와 대학들의 지원 강화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부분의 학자들은 노벨과학상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추진해온 사업들이 모두 단기적인 데다 실적위주 평가로 지원한 탓에 학자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축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용희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노벨과학상 수준의 연구업적을 내려면 오랫동안 연구에 매진할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며 “학자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자기 분야 연구의 역사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독보적인 자기 연구 분야를 개척한다는 말이다.

김상식 고려대 산학협력단장도 “BK21·WCU 등을 거치며 국내 대학들의 연구역량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벨과학상이라는 게 돈을 쏟아 붓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며 “성숙한 연구 문화, 충분한 연구 환경 등 기본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연구 풍토, 인력풀 조성을 위해 정부 재정지원이 보다 고르게 거시적으로 분배돼야 한다고 말한다. 허남건 서강대 산학협력단장은 “BK21, IBS사업 등의 지원이 일부 대학과 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노벨과학상을 기대한다면 1명에게 100억원을 주는 것보다 100명에게 1억원씩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BK21·WCU의 후속인 BK21플러스도 보다 많은 대학들에게 분배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상식 단장은 “어느 한 연구자를 집중 지원하는 정책은 거시적으로 옳지 않다. 학자군이 많아져야 그 안에서 노벨과학상을 받을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것”이라며 “대학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연구문화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연구중심대학을 세계 수준으로 어떻게 올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놓는 학자들이 잇따르고 있어 노벨과학상 수상이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승환 포스텍 산학협력단장은 “최근 우리나라 기초연구 투자 확대와 기초연구역량의 급속한 증가, 젊은 과학자들의 약진 등을 고려해볼 때 향후 10~15년 내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확률이 50% 이상은 된다고 본다”고 전했다.


노벨과학상 가장 근접한 국내 학자는 누구...

지난 10여 년간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역량이 눈에 띄게 높아지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도 점점 커지고 있다. 본지는 노벨과학상 정책연구책임자를 비롯해 자연과학분야 교수, 산학협력단장, 연구처장 등의 추천을 종합해 노벨과학상에 가장 근접한 국내 학자 8명을 꼽았다.

▲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1969년생)

• 학력
서울대 미생물학 학사
서울대 미생물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분자세포유전학 박사

• 연구 분야
RNA유전체학

• 연구 성과
국내 생명과학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자로 손꼽힌다. 10여년 전부터 유전자 조절 물질인 마이크로RNA의 중요성을 인지해 마이크로RNA의 생성원리 및 기능을 규명했다. 현재 세계 최고 권위의 생명과학학술지인 ‘셀(Cell)’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적으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 특이사항
2007년 한국과학재단 및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주관사 미국 톰슨사이언티픽 선정 ‘올해 세계 수준급 연구영역 개척자상’
2010년 정부 선정 ‘국가과학자’


▲ 유룡 KAIST 교수
◆ 유룡 KAIST 화학과 특훈교수(1955년생)

• 학력
서울대 공업화학 학사
KAIST 화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 박사

• 연구 분야
나노다공성 탄소물질

• 연구 성과
나노다공성 탄소물질 분야의 개척자다. 유 교수가 만든 탄소나노벌집은 ‘CMK’라는 고유명사로 통용되며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창출했다.

• 특이사항
2007년 정부 선정 ‘국가과학자’
2010년 국제제올라이트학회 선정 ‘제올라이트 연구 분야의 노벨상’인 브렉상(Breck Award) 수상
2011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 화학자 100인’


▲ 이서구 연세대 교수
◆ 이서구 연세대 의과대학 석좌교수(1943년생)

• 학력
서울대 화학 학사
미국 가톨릭대 박사

• 연구 분야
활성산소

• 연구 성과
세포 노화, 암 등 만병의 원인으로 생명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활성산소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며 노벨상 후보로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활성산소를 없애는 특수물질인 퍼옥시레독신(Prx)을 세계 최초로 찾아내고 활성산소가 세포 안에서 각종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라는 사실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 특이사항
2006년 정부 선정 ‘제1호 국가과학자’


▲ 현택환 서울대 교수
◆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1964년생)

• 학력
서울대 화학 학사
서울대 무기화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 무기화학 박사

• 연구 분야
나노소재 제조·응용

• 연구 성과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나 MRI 조영제의 구성성분인 나노(10억분의 1m) 입자를 기존보다 1000배 싼 비용으로 1000배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국내 과학자 중 나노분야 피인용 횟수 상위 0.1%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 특이사항
2011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화학자 100인’


▲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단장
◆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장(1950년생)

• 학력
서울대 의학 학사
서울대 의학 석사
미국 코넬대 유전학 박사

• 연구 분야
뇌 과학

• 연구 성과
우리나라 뇌과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150여편(2012년 기준)의 우수한 논문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KIST 뇌과학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냈다.

• 특이사항
2006년 정부 선정 ‘제1호 국가과학자’


▲ 남홍길 DGIST 교수
◆ 남홍길 DGIST 차세대생명과학융합전공 교수(1957년생)

• 학력
서울대 화학 학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이학 박사

• 연구 분야
식물분자 유전학

• 연구 성과
식물의 노화, 생체 시계 리듬, 개화시기 조절 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식물분자 유전학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 석학이다. 식물의 쌍둥이 정자 형성 비밀, 생화학적 눈동자의 개념 등을 규정해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에 논문을 발표해 과학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 특이사항
2010년 정부 선정 ‘국가과학자’


▲ 김기문 포스텍 교수
◆ 김기문 포스텍 화학과 교수(1954년생)

• 학력
서울대 화학 학사
KAIST 화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 박사

• 연구 분야
초분자 화학

• 연구 성과
세계 초분자화학 분야 선두주자로 2010년 쿠커브투릴(Cucurbturil)을 이용한 세포막 단백질 분리에 세계 최초로 성공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 특이 사항
2007년 정부 선정 ‘미래를 여는 우수 과학자’
2012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원 명예교수


▲ 김동호 연세대 교수
◆ 김동호 연세대 화학과 교수(1957년생)

• 학력
서울대 화학 학사
서울대 화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 화학 박사

• 연구 분야
시간·공간 분해 레이저 분광학

• 연구 성과
연세대가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라며 간판 과학자로 내세우는 학자 중 한 명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의 ‘시간분해 분광학 연구의 수준을 일약 세계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 받는다. 국제 SCI 논문만 200여편 이상(2007년 기준)으로 2020년까지 노벨화학상 수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 특이사항
2006년 정부 선정 ‘11인의 국가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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