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부, 이공계 반발 예상에 주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인문사회진흥기본법(이하 인문기본법)’이 제안되는 등 인문학 진흥을 위한 방안이 활발히 논의는 되고 있지만 국회가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법제화는 불투명한 상태다. 국회의 이같은 소극적인 자세는 이공계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소장은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인문 진흥을 위한 학술토론회에서 인문기본법 제정을 위한 초안을 발표했다.

당시 조 소장은 “인문학 진흥을 위해서는 관련 법안의 정비가 필요하다”며 “과학기술로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시기는 지났다. 사회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인문학 연구지원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한 근거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문학계는 기본법 제정이 과학기술분야에 비해 열약한 정부의 인문학 지원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1년 정부가 지출한 인문학 연구비는 952억원. 정부지원 R&D 예산의 2.46%에 불과하다. 사회과학이나 예술체육학 등 인문사회분야로까지 범위를 넓혀도 3659억원에 그친다.

김홍구 교육부 학술진흥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문을 통해 “지난해 이공분야와의 과제 수혜율 및 1인당 평균 연구비 격차가 크다”고 밝혔다. 이공분야는 인문사회보다 과제 수혜율이 21.4% 높았고 1인당 평균 연구비는 약 2.34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연구재단의 2012년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인문사회분야 과제수는 5239건, 이공분야는 2만9783건이다. 1인당 연구비도 인문사회 1120만원에 비해 이공분야는 8886만원으로 약 8배 차이가 났다. 반면 인문사회분야와 이공분야의 전임교원은 각각 3만2572명과 3만8317명으로 5700여명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 조지형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소장의 '인문사회진흥기본법안' 골격

■ 인문기본법, 과학기술기본법과 형태 같아 = 조 소장이 제안한 인문기본법의 골자는 국가인문사회심의회(이하 심의회)와 인문사회 기초연구진흥협의회(협의회), 한국인문사회기획평가원(평가원)원의 구성이다.

기본 골격은 과학기술기본법(과학기본법)과 같다. 과학기본법은 심의회를 국무총리 산하로 두고 과학기술 진흥의 전반적인 사항과 연구개발 운영을 심의토록 했다.

인문기본법도 유사한 형태다. 국무총리와 각 관계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심의회는 인문진흥계획 전반을 관장하고 예산도 분배할 권한이 있다.

협의회는 심의회 산하기구로 관계부처의 실무자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심의회서 논의할 안건을 미리 조율하는 것이 주 업무다. 법인격으로 설립되는 평가원은 학계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연구사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기구로 기획됐다.

조 소장은 “과학기본법을 많이 연구해 반영했다. 평가원과 협의회에서 연구자들의 요구를 정부로 전달하고 심의회에서 최종 의결을 거친 후 다시 두 기관을 거쳐 연구비가 배분되는 형태”라며 “민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부예산을 끌어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 인문진흥방안, 갈길 먼 제도화 = 그러나 실제 법제화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국회나 교육부가 관련 법안 제정에 선뜻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새누리당) 보좌관은 “인문기본법 제정에 앞장설 의원은 없을 것”이라며 “이공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법안에 누가 앞장서겠나”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관련부처와의 조율과 학계와의 논의 등 거쳐야 할 단계도 산재해 있다”고 덧붙였다.

인문 학계조차도 낙관적이지 않다. 2010년에도 인문기본법을 제정하려 했으나 관련 부처와의 논의가 지지부진해 무산됐던 경험 때문이다.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인문총) 사무총장은 “조 소장이 제안한 인문기본법이 인문총 전체의 의견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공감하는 면이 있어 곧 초안을 확정할 것”이라며 “법제화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는 않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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