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섭 광주보건대학 부총장

 

박근혜정부의 교육비전을 보면 공교육 정상화, 교육비부담 경감, 능력중심사회기반구축 등 세가지 교육목표도 함께 제시되었다.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학력중심사회의 폐단을 극복하고 능력중심사회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하여 능력보다는 학력이 대접받는 사회풍토를 바꾸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담겨 있어 환영의 뜻을 표한다.

 

사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능력중심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교육시스템, 특히 직업교육시스템 개혁과 바로 맞물려 있다. 제조업 기반에서 지식기반정보화 사회로 가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에 맞는 직업교육시스템을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이 개혁의 본질이다.

일찍이 OECD 국가들은 이러한 변화추세에 맞추어 고등단계에서의 직업교육시스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핵심은 수업연한 및 학위과정의 다양화에 있다. 과거에는 이들 국가에서도 직종별로 엄격한 수업연한을 두고 그에 따라 학위과정도 제한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보다 심화되고 융합된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직종부터 수업연한의 제한을 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평생교육시대에 요구되는 학위과정도 다양화함으로써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적기에 공급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혁해왔다. 이제 이들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의 전문대학에 해당하는 고등직업교육기관에서 일반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더 나아가 직업교육기관에서 석사학위 과정까지 개설하는 경우를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일이 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고등직업교육시스템은 아직까지 수업연한을 기준으로 2년 내지 3년제 단기교육기관 전문대학과 4년제 일반대학으로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등직업교육에 특화된 전문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양성시스템에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보건, 의료계열 등 일부 직종에서 수업연한 연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단기교육연한을 따를 수 밖에 없어 고도의 전문화를 요구하는 기업의 맞춤형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학벌중심사고가 여전한 우리나라에서 어느새 직업교육의 영역을 상당부분 잠식한 일반대학과의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전문대학의 고유성과 다양성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난 수십년동안 직업교육시스템을 묵묵히 이끌어온 전문대학 전체의 생존권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고등 직업교육의 선발주자인 OECD 국가들이 그러했듯 글로벌 지식정보화 사회에 부응하는 발상과 정책의 기민한 변화이다. 이른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인 것이다. 다행히 박근혜정부는 전문대학 학과 특성에 따라 수업연한을 1년에서 4년까지 다양하게 운영하고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맞춤형 직업교육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평생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새정부의 이러한 포부는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 시스템 전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패러다임 시프트로 평가할 만 하다. 다시한번 고등직업교육시스템 개혁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이니셔티브에 대해 박수를 보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추가적인 제도정비가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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