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향해뛰자]⑤기초과학연구원

▲ 기초과학연구원 19명의 연구단장들. 기초과학연구원은 2017년까지 모두 50명의 단장을 선발한다

[한국대학신문 김기중 기자] “국내 박사급 연구원들은 연구가 주 업무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험실 관리, 국책연구 신청 서류 준비, 강의 준비 등 잡일이 주 업무다.”(정부 출연연구소의 한 연구원)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연속성.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제대로 지키긴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다.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d System, PBS)’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PBS로는 노벨과학상을 타기 어렵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1년 11월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런 PBS의 한계에서 출발했다.

■ PBS 극복, 노벨상 노린다= PBS는 정부나 외부 연구과제를 받아 연구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연구자 인건비도 여기서 나온다. 이 제도는 초창기 경쟁을 통해 과학계를 활성화시키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선진국 추격형 연구를 해왔던 우리나라에 꼭 맞는 방식이었다. 경제성장을 이끈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추격형 연구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PBS는 연구의 창의성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심지어 “연구자들을 앵벌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 2017년 완공예정인 과학비즈니스벨트 내 기초과학연구원

PBS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출범한 게 기초과학연구원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2017년까지 총 5조1700억 원이 투입되는 과학벨트 기본계획 속의 핵심 사업이다. 연구단 50개, 연구·비즈니스 인력 3000명 규모로 조성된다. 비전은 기초과학 분야 세계 10대 연구기관. 연구자가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내세웠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노벨과학상 수상 및 근접 과학자 최대 배출·보유기관’이다.

이처럼 ‘대놓고’ 노벨과학상을 거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단일 연구기관 중 최다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때문에 학문이 뿌리째 흔들렸다. 이후 ‘연구자들은 정권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정치로부터 연구의 독립성·자율성을 확보했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80여개에 달하는 막스플랑크 연구소들은 연방정부와 주 정부 예산지원을 받는다. 연구현장에는 ‘야전 사령관’이라 불리는 연구소장들이 이들을 지휘한다.

기초과학원 역시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 연속성을 보장한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모두 19명의 연구단장을 선정했고, 2017년까지 모두 50명의 연구단장을 선발한다. 이들에게는 연간 100억원의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한다.

■ 연구과제 지원·평가 틀 깨= 무엇보다 연구의 독립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논문과 특허수라는 정량적 지표를 포기했다. 지금까지의 연구과제 지원·평가를 거부했다. 국내외 석학급 연구자 15인 내외로 구성된 ‘연구단 선정평가 위원회’가 심사 했다.

연구단장에게는 연구의 연속성 보장을 위해 최소 10년간 연구지원을 보장한다. 다만 연구성과는 3년 단위로 분야별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평가한다. 연구단장과 그룹리더의 정년은 연장이 가능하며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

송충한 기초과학연구원 정책기획본부장은 “그동안 평가는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 특히 논문 몇 편 썼느냐가 가장 중요했다”며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한 게 기초과학연구원의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논문을 200편 낸 사람이 20편 낸 사람보다 더 우대받았다. 우리나라 논문 수가 세계 10위권 진입한 것은 10년 전이다. 그런데도 SCI급 논문은 30위에 그치는 이유다.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장은 이에 대해 “모든 연구에서 이제 숫자놀음을 그만 두어야 한다”며 “아무도 관심없는 10편의 논문을 쓰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1편의 논문을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연구단 선정평가 위원회에 외국인 석학을 절반 이상 넣은 이유는 학연에 따른 말썽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이들은 명예를 걸고 선발에 나섰다. 이틀 동안 심층면접 등이 진행됐다. 평가를 받았던 이영희 기초과학원 나노 구조 물리 연구단장은 “위원회의 위원장이 외국인 교수인 점, 여기에 외국인 교수들이 절반 정도 참여해 평가한 것은 기존의 국내평가의 편파적 몰아주기를 방지했다” 평가하고 “향후 평가 역시 기존의 논문 수 평가는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단장, 지난 1년 6개월 간 성과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선정된 19명의 연구자들은 나름의 성과를 냈다.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단장 신희섭)은 다양한 수면 장애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면뇌파 유도 방법을 개발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PNA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나노입자 연구단(단장 현택환)은 무독성 반도체 나노입자를 활용한 고해상 삼광자 (三光子) 인광 생체 광학영상 구현에 성공해 지난 2월 <Nature Materials> 온라인판을 장식했다. 이 연구결과는 기존 발광영상보다 높은 해상도로 암 등 다양한 의료분야의 초정밀 진단 및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다 평가 받았다. 유해성 논란의 중금속 기반 기존발광입자를 대체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연구단(단장 유룡)은 단백질 내 화학반응의 전이 상태와 그 반응경로를 3차원 구조로 실시간 규명해 지난 2월 <Nature Chemistry> 온라인 판에 연구성과를 게재했다. 이 성과는 화학 반응 전이 상태 관찰을 통해 전이 상태를 조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신약 개발 및 의학 치료 등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식물노화연구단(단장 남홍길)도 식물 세포 핵 내의 단백질 집합과 해산이 개화시기조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내 지난 3월 <Cell Reports>에 게제됐다. 이 연구는 식물의 개화시기 조절과 지구촌 식량난 해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 (사진제공=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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