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관련 담론 너무 '입시'에 치우쳐있다" 우려

본지는 최근 창립 1백20주년 및 취임 1주년을 맞은 정창영 연세대 총장을 만났다. 지난달 30일 연세대 총장실에서 가진 본지 이인원 회장과의 대담에서 정 총장은 정부의 대학 관련 정책과 글로벌 인재양성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다음은 정 총장의 인터뷰 전문. - 대학 관련 정부 정책에 대한 대학가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학 문제를 언급할 때는 늘 입학 관련 이야기만 오르내린다. 물론 입학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본래 기능인 교육과 연구가 주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을 뽑을 때 공부만 잘 하는 학생들을 뽑으려는 것이 잘못이다. 연세대는 장기적으로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해 학력 위주로 뽑는 학생을 50%로 하고 30%는 각양각색의 특수 재능을 가진 학생, 나머지 20%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을 뽑겠다. 이를 위해 연세대는 가계곤란 학생들을 위해 ‘한마음 입학전형’을 신설·운영하고 있다. 학생 구성은 다양성이 생명이라고 본다. 서로 경쟁하면서 배울 수 있게해야 한다.” - 입학만 하면 졸업은 자동적으로 되게 하는 대학에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대학 교육을 충실히 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들은 졸업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연세대는 지난해부터 학부대학에서 ‘2배 이상 공부시키기’ 캠페인을 펴고 있다. 4년 동안 연세대에서 공부하고 세계무대에 섰을 때 어떤 분야든 선진국 동년배에 비해 손색이 없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명저를 읽히고 심화반을 만들고, 수강인원을 줄였다. 다시 말하지만 입학은 대학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선발 이후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 대학교육을 충실히 하기 위한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 사립대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을 활용할 계획인가. “교육·입학정책을 통해 창립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세대는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어떤 엘리트를 배출하는 것이 겨레와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가 아닌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드는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 바로 통일 선진한국을 이끄는 진정한 엘리트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오는 9월에 연세자원봉사단을 발족한다. 이웃에 봉사하는 것이 몸에 밸 수 있도록 하겠다.” - 우리나라의 경제순위가 세계 11위라고 한다. 교육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평가되면서도 교육 자체에 대한 평가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경제발전 원동력이 교육이라고 한다. 최근 IMD자료 인용해서 세계 60개국 가운데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59등이라는 말들을 하지만 이 자료가 사실이라면 오늘 날의 한국을 설명할 수 없다. 신뢰도가 빈약한 자료로 대학을 폄하하고 있다. 세계 1백대 대학이 없다는 비난도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대학의 자연계 학술활동 대단히 활발하다. SCI논문수가 수직상승하는 등 한국 대학이 굉장히 발전했다. 일부 학문분야는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한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 중에서 1백위권에 들어간 대학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우리 대학이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다.” - 대학교육이 양적으로 팽창돼 있다. 대학의 위기도 결국 양적팽창에 기인한다고 보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 정원이 너무 늘었고, 질이 떨어졌다. 대학 졸업자를 이렇게 과잉공급해서는 안된다. 현실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았고 현재 정원이 이렇게 는 데는 산업수요에 따른 공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정부 당국의 책임이다.” - 대입 3불정책이 일부 대학 입장에서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대학은 가장 훌륭한 인재집단이다. 기본적으로 입학 등 업무에 대해 대학은 완전한 자율을 가져야 한다. 연세대는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본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심층면접이나 논술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본고사가 필요한 대학이 있다고 하면 인정해야 한다. 학생선발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야 한다. 연세대는 특히 입학사정관제를 도입, 학생을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활용하겠다. 다양한 학생들을 뽑겠다.” - 지나온 연세대의 1백20년 발자취를 보면서 앞으로의 1백20년을 계획한다면. “연세대의 역사는 해방 전후로 60년씩 꼭 1백20년이다. 선교·의료·교육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선도해 온 데 자긍심을 느낀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 기업과 대학은 국제경쟁력이 있어야 존립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사명은 전세계에서 존경받는 좋은 대학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전체 대학 중 10여개 정도는 국제 수준의 교육·연구를 할 수 있는 대학이 나와야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대학마다 로스쿨 전쟁이다. 이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보나. “입시철에 보면 인문사회 1등은 법학과로, 이공계 1등은 의대로 다 가고 나머지를 차례로 채우는 순서다. 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전문대학원제도를 찬성한다. 우리 대학도 의대 교수들이 반대하기는 했는데, 교수들이 찬성만 하면 언제든지 갈 채비가 돼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문제는 최소한 정원이 2천명 수준은 돼야 한다. 1천2백명 수준은 현실을 고려할 때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 다른 대학에서 연세대의 재정을 부러워하더라. 실제로 연세대 재정이 탄탄한가? “굉장히 건전한 재정이다. ‘임자없는 대학’이라고들 하지만 다시 말해 ‘모든 대학이 임자’이기도 한 대학이다. 주인이 없고,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 우리나라 대학 전체가 다같이 비슷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나. “연세대의 경우 ‘수월성’이 생명이다. 이것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대학은 세계 1등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 보면 형평성 증진 차원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지만 시야를 밖으로 돌리면 상황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10개 정도는 세계 수준에 올라야 한다. 결국 대학이 마음대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 교육평준화가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국내에서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특히 입시준비하는 학생들 애처로운 것 생각하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제 상대는 미국, 독일 등 세계 유수의 대학이다. 이제 우리도 10개 정도의 대학에는 완전한 자율을 줘야 한다.” 대담 : 이인원 회장 / 정리 : 김은영 기자 / 사진 : 한명섭 기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