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행복(한국인문학총연합회 사무총장 /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인문(人文)’은 인류가 축적해 온 문화, 그것들 중에서도 핵심적이고 선진적이며 건강한 부분을 지칭하는 개념이며, ‘문학’ ‘역사’ ‘철학’ ‘교육’의 영역은 물론이요, ‘미학’과 ‘예술’의 영역까지를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은 ‘인문’에 대한 관심과 연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인문학은 인류 문화의 기초를 형성해 왔다.

‘인문’을 연구하는 공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문학은 문화를 중시하며 ‘삶의 가치’를 생산한다.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며, 사람다운 삶의 실현을 추구하고,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으로써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이 모두 인문학이 발전되었음을 보면, 실제로는 인문학이야말로 ‘위대한 쓰임새'를 발휘하는 것이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행복한 세상의 선결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에 주목하는 세상의 관심은 산업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분야에 쏠리기 마련이었고,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는 인문학을 소외시키거나 위기 속에 방치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0년대부터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어 왔는데, 인문학이 도태시켜야 할 분야가 아니라면 시장의 왜곡된 성향에 의해 야기된 불균형을 정부가 나서서 해소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제도조차 인문학을 외면해 왔다.

헌법 제127조는 과학기술 발전 추동의 책무를 국가에 지우며, 「과학기술기본법」 등등 다양한 관련법 제정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인문 분야에 대한 관심은 「학술진흥법」에서 언급되는 정도에 그치는데, 거기에서의 ‘학술’은 모든 학문 분야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진흥을 위한 법률」은 기초연구를 “기초과학 또는 기초과학과 공학·의학·농학 등과의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하는 연구 활동”으로 정의함으로써, 인문 분야를 기초연구 영역으로부터 제외시켰다. 인문 분야가 현저히 홀시되고 있는 것이다. 인문 분야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예전과 같지 않은데, 법체계 속에서는 여전히 인문학의 위상이 너무 낮은 것이니, 이제는 근본을 중시하는 정책을 바탕으로 ‘인문 진흥’을 뒷받침할 제도 수립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 융성과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인문학의 발전이 적극 도모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발전 없이는 문화산업의 발전을 기하기 어렵다. 문화산업은 인문학으로부터 탄탄한 콘텐츠를 제공받아야 하며, 문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와 계승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있을 뿐, 「인문진흥기본법」이나 「인문문화기본법」은 없다. 기초과학의 발전이 기술산업 발전의 전제조건이라면, 인문학의 진흥은 문화산업 발전의 선결요건이다. 「과학기술기본법」이 필요하다면 「인문문화기본법」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인문진흥원’과 병존할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하지 않겠는가?

근본에 대한 중시는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의 국가사회 발전을 선도할 것이다.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인문 진흥의 제도적 기반 수립이 절실한 만큼, 「인문진흥기본법」이나 「인문문화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기대해 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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