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향해뛰자(6)] 서울대

‘믿고 맡기는’ 파격 지원으로
신진·중견연구자 육성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노벨상에 대한 서울대의 열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벨상 유망 후보자로 서울대 교수 서너 명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빛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향한 서울대의 본격적인 행보는 이장무 전 총장 때 시작됐다. 이 총장은 2006년 취임 당시부터 ‘Top10 세계 초일류대학 진입’을 목표로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서울대는 2010년 2월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50세 이하 능력 있는 교수들에게 석좌교수에 준하는 대우와 지위를 부여해 지원하는 ‘중견석좌교수제’를 도입했다.

중견석좌교수로는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와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교수 등 2명이 선정됐다. 대학 측은 이들에게 △수업 부담 경감 △학기 중 28일간 해외체류 기회 제공 △최소 3년간 2억 원가량 연구비 지원 △국제회의 참석 등 각종 경비 지원 △연구 공간 추가 제공 등의 혜택을 부여했다.

서울대는 이에 멈추지 않고 지난해 법인화 시점에 맞춰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대가 법인화와 함께 내건 슬로건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 역시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노벨상 수상자급 해외석학 4명 초빙, 유망 신진교수 10명 초빙 등 총 235억 원 규모의 ‘글로벌 선도연구중심대학 육성 프로젝트’ 안을 내놓았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지난해 5월 서울대는 처음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초빙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사전트(Thomas Sargent) 미국 뉴욕대 교수를 석좌교수로 임용한 것이다. 대학 측은 앞으로 기초과학 분야 수상자도 교수로 초빙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에는 ‘글로벌 창의선도 연구자 지원 사업(이하 창의선도 연구자 사업)’을 마련하고 노벨상 또는 권위 있는 국제 학술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교수 8명을 선정했다. 앞서 이 총장 시절 도입한 중견석좌교수제를 발전시키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 형태다.

서울대는 이 사업을 통해 △임지순 물리·천문학부 교수 △박성회 의학과 교수 △김규원 약학과 교수 등 3명을 창의선도연구자로,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김빛내리 생명과학부 교수 △김성훈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분자의학·바이오 제약학과 교수 △권성훈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백성희 생명과학부 교수 등 5명을 중견연구자로 선정했다.

▲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지순 교수, 박성회 교수, 김규원 교수, 김빛내리 교수, 백성희 교수, 권성훈 교수, 김성훈 교수, 현택환 교수

창의선도 연구자는 이미 어느 정도 석학의 반열에 오른 교수들로 5년간 매년 4억 원씩, 창의선도 중견연구자는 젊지만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교수들로 3년간 2억6000만 원씩 연구비를 지원 받는다. 해외 출장일수는 21일에서 42일로 2배 늘어나고 강의시수를 매학기 3시간씩 감면하는 등 추가적인 행정지원도 병행된다.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부분은 지원기간 동안 별도의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연구 연속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연구비 활용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창의선도 중견연구자에 한해 3년 뒤 성과를 보고 연장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지는 않은 상태다.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믿고 맡긴다’는 게  대학의 방침이다.

성노현 연구처장은 “창의선도연구자 사업을 추진한 계기는 전폭적인 지원(input) 없이는 눈에 띄는 성과(output)도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이 사업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좋겠지만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연구 환경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외부 연구 과제를 따내 연구비를 충당하는 기존 ‘연구과제중심제도(PBS; Project Based System)’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외부 연구과제에 얽매이지 않도록 창의성과 자율성, 연속성 등을 보장하는 선진국형 모델이라는 것이다.

성 처장은 “정부의 연구 지원이 상급, 중견, 신진연구자로 그룹을 나눠 적절히 분배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일부 과제에만 거액의 연구비가 쏠렸다”며 “이번 창의선도연구자 지원 사업은 신진·중견 연구자를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대학에서 울타리를 치고 보호 육성해보자는 노력”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는 예산을 확보하는 대로 다른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창의선도연구자 2명, 중견연구자 2명을 추가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교수들이 안정적·체계적인 토대 위에서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보고 묵묵히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뷰]“노벨상, 과제 아닌 사람에 투자해야”
‘창의선도 중견연구자’ 권성훈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창의선도 중견연구자 선정 소감은.
“우리 연구실은 새로운 과학적 진리 탐구 중심이라기보다는 실제 신약시장, 의료시장에서 대두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기술로 국제 의료계와 신약개발 분야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꿈이 노벨상의 취지와 일맥상통하기에 부단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 설명해달라.
“크게 개인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과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두 축을 로드맵으로 두고 있다. 개인맞춤의학 연구과제로는 ‘개인 맞춤형 항생제 스크리닝’을 연구주제로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패혈증이나 결핵 같은 박테리아 감염성 환자가 발생했을 때 어떤 항생제 조합 및 복용량이 적합한지 빠른 시간 내에 진단해내는 약물 검사(drug screening)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연구의 주된 목표다.

개발 중인 약물 검사 장비는 한 번에 백만 가지 약물을 검사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어 신약개발 시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빠른 약물 검사 장비는 진단 외에도 차후에 화두로 떠오를 개인맞춤형 의약시대에서 거대한 진단 및 검사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합성생물학 연구과제로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등 유전자 정보를 읽어내는 단계를 넘어 유전체를 새로 작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유전자 합성 기술력은 아직 고가에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 연구실의 기술 개발이 성공하면 광학-공학 기반의 최첨단 기술들을 접목해 유전자 합성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창의선도 연구자 사업의 장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함께 창의선도연구자로 선정된 교수님들로부터 연구 철학과 인생관을 배우고,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얻은 시너지가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정부 연구비는 구체적인 연구 주제를 요구하며 그와 직결된 사항들에 대한 지원만 가능한 반면 창의선도연구 지원비는 연구 주제 자체는 물론 사용 내역도 유연하게 조절 할 수 있다.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디딘 상황이지만 더욱 확장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정부와 대학이 어떤 노력을 해야하나.
“모든 일의 근본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구 분야 역시 연구비나 연구 주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연구하는가’에 따라 그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본다. 따라서 정부나 연구 지원 기관들이 연구 주제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연구 지원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을 지원하려면 촉망받는 젊은 연구자들과 교수들을 발굴해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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