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향해뛰자]⑧가천대 뇌과학

기초과학 분야 과감한 투자로 독자적 영역 확보

▲ 최근 가천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제작한 초정밀 뇌신경 지도. 이 지도는 그동안 밝혀내지 못한 뇌신경까지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이용재 기자] 가천대가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실적에서 잇따라 ‘세계 최초’를 붙이며 노벨상 수상을 위한 움을 틔우고 있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 박사 연구팀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초정밀 뇌신경 지도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7T MRI(7테슬라 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대상으로 초고해상도 뇌지도 제작 성공에 이은 쾌거로, 이번에 공개된 뇌신경 지도는 그동안 밝혀내지 못한 뇌신경까지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같은 달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은 신체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인 뇌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새로운 식욕억제물질과 그 신호전달경로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원은 지난 2008년 WCU(세계적 수준 연구중심 대학)에 선정됐으며, 올해 가천대 길병원이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는 등 기초과학 분야 집중 투자와 육성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외 독보적 성과, 뇌과학연구소=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 총 1800억을 들여 뇌과학연구소(2004년), 바이오나노연구원(2007년), 암당뇨연구원(2008년)을 잇달아 설립하는 등 매년 기초과학 연구분야에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설립된 뇌과학 연구소는 노벨 과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뇌과학계의 세계적 석학 조장희 박사가 수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 기존 1.5T MRI(좌)와 조장희 박사가 개발한 7.0T MRI(우)로 찍은 뇌 사진. 7.0T 이미지는 높은 해상도로 시상, 중뇌, 뇌교, 골수 같은 뇌조직의 뚜렷한 특징들을 보여 주고 있다.
조 박사는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 단층촬영(MRI) 장비를 함께 개발해 낸 세계 유일의 과학자로,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MRI와 PET를 혼합한 ‘7T PET-MRI’를 이용해 초정밀 뇌신경 지도 제작에 성공했다. 이 지도는 뇌 부위 등을 구조적으로 영상화한 기존 뇌지도를 넘어 뇌신경다발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어, 수술 좌표는 물론 뇌질환을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슬픔·우울 등 부정적 감정과 기쁨·웃음 등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를 찾아내 우울증 등 감정 이상 질환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등 매일 새로운 뇌의 대륙을 개척하고 있다.

조 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로부터 1000억원의 지원을 받아 추진 중인 ‘14T MRI’(T는 Tesla로 숫자가 높을수록 영상의 선명도가 높아지며 일반 병원에서는 1.5T급 MRI가 사용되고 있다)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가천대는 지난 3월 뇌융합과학원을 설립하고 뇌 과학 연구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뇌융합과학원은 기존의 뇌과학연구소와 함께 치매·파킨슨병연구소, 정신건강연구소, 뇌질환 유전체 연구소, 나노의학 연구소, 테라그노스틱 컴파운드 개발연구소 등을 총 5개 연구기관을 신설해 운영한다. 향후 인재 양성을 위한 뇌융합대학원과 연구업적의 신속한 임상적용을 위한 뇌병원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명철 뇌융합과학원 원장은 "분야별로 분산 추진 중인 뇌 연구 역량을 집중해 2020년까지 세계 10대 뇌융합과학원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고의 시설 투자로 연구의 토양 일궈=지난 2008년 설립된 이길여암당뇨연구원은 마우스 대사질환특화센터, 유전성 출혈성 모세혈관확장증 연구센터, 실험동물센터 등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 지난 2008년설립된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은 1만3200㎡의 부지 위에 연면적 1만6500㎡의 두 개 건물로 세워진 인천 유일의 바이오 분야 연구교육기관이다. 만성질환인 암과 당뇨의 정복을 위해 국내 최대 실험용 설치류 실험센터를 설립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전임상 실험을 시행해 암, 당뇨의 치료를 현실화 시키고 있다.

암당뇨연구원은 지난 2009년 5월 국내 최초로 한국인의 게놈 지수를 작성했으며, 최근 이봉희·변경희 교수가 서울아산병원, 하버드대 등과 진행한 공동 연구를 통해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인 뇌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새로운 식욕억제물질과 그 신호전달경로를 밝혀냈다. 이는 뇌에 특정 단백질 투여를 통해 비만을 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비만 등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치료제와 식욕억제제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성과의 바탕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설이 있다. 연구원 지하 1, 2층에 약 3만 마리 이상의 설치류를 수용할 수 있는 실험동물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마우스 대사질환 특화센터’에서는 유전자 변형 마우스(실험용 쥐)를 통해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대사질환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 실험동물센터는 3300㎡ 규모로 SPF동물실험실(좌) Ivis Imaging imaging 시스템(우) 등을 갖춰 3만 마리 이상의 설치류를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최첨단 설치류 실험동물센터이다.

아시아에서 단 한 대 뿐인 ‘9.4테슬라(T)핵자기 공명분광기’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마우스의 생체가 실험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전희숙 이길여암당뇨연구원 부원장은 “기초과학 연구라는 것이 시설이나 장비 없이 좋은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며 “우리 연구원은 최고의 시설을 갖춘 만큼 운영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동물실험센터만 하더라도 유지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학교측에서 그 비용과 인력을 모두 지원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누구에게 얼마’ 식의 지원이 아닌 보이지 않는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암당뇨연구원은 현재 하버드대, 예일대, 존스홉킨스대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석 플로리다 주립 의과대학 교수와 진행하는 유전성출혈성모세혈관확장증에 대한 공동연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전 부원장은 “이제 혼자만 연구를 해서 되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배우고 싶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전문가들이 협동을 해야 획기적인 것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암은 물론 비만 등 대사질환이 세계적으로 큰 문제다. 당장 노벨상을 바라지도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지만,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좋은 성과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 대학이 싱크탱크로 성장해야”
[인터뷰]조장희 가천대 뇌과학연구소 소장

- 우리나라엔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나.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서양의 학문은 뉴턴, 갈릴레오부터 시작해 대학들도 옥스퍼드, 캠브릿지 등 10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도 1850년에 동경대학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1950년 처음으로 서울대가 생겼다. 캠브릿지 옥스퍼드는 이런 싸움을 오백 년 천 년을 했는데 50년 역사로 되겠나. 시간이 굉장히 걸릴 것이다.

역사뿐 아니라 연구 풍토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나라에서 학자들이 할 연구를 다 정한다. 이 걸 해라 저 걸 해라. 그러면 안 된다. 학자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와야 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된다.

-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내가 늘 얘기하는 것은 '투자하라'는 것이다. 1970년대에 일본을 갔더니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더라. 그것이 지금 노벨상 15명을 배출하는 등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의 세계는 시간이 굉장히 걸리므로 투자도 긴 안목을 갖고 해야한다.

하지만 제대로 투자해야 한다. 학문에 투자하지 않고 식당 만들고 건물만 올리는 그런 대학에 지원하면 안 된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을 나눠서 지원해야 한다. 나라에서 지원을 해 주면 대학 또한 연구자들에게 그만큼 투자해야 한다. 투자는 하지 않고 전관예우로 사람들 모셔와서 나랏돈만 받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학들은 각자 의사가 갖고 대학의 노선과 연구 분야를 정해야 한다. 또 대학과 연구소를 늘릴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 있는 것들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있는 것에 투자해서 키우고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야 한다.

좋은 교수를 데려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족의 자존심 같은 걸 버리고 세계화에서 각 분야에 좋은 교수를 많이 데려와야 한다. 꼭 외국인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데려온 것이다. 지난 1979년 콜럼비아 대학에 가니 그 곳 교수는 각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그 분야를 일으킨 사람들만 데려왔다. 원래 있던 부교수가 교수가 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교수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포항공대 모 총장은 최고의 교수라면 5백만불을 주고서라도 데려온다는 정책을 실행했었다. 대학은 이런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투자 안 하면 30년 후에도 노벨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학과 교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대학은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연구하는 곳이다. 가르치는 곳은 학원이고 대학은 연구를 하는 곳이다. 학문의 새로운 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대학이다. 인터넷 시대가 돼 이제는 스탠포드와 하버드의 강의를 안방에서 다 볼 수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지식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다 나온다. 강의를 잘해서 좋은 대학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학문을 창조해야 한다. 연구를 하지 않으면 대학의 입지가 더 좁아진다. 그래서 대학이 나라의 브레인, 즉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학문의 센타우리(centauri)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수 또한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타려면 ‘아 저 사람 탈만하다’ 하는 사람이 몇 백 명이 있어야 한다. 한 두명 네이쳐에 났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은 권력을 좇지 말고 연구로 권위를 세워야 한다. ‘자기 것’을 연구해야 한다. 외국 유학시절 논문하나 쓰는데 4년이 걸렸다. 좋은 논문을 쓰려면 10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자들은 대부분 유행만 따른다. 나라에서 이 것 하겠다 하면 이렇게 따라가고... 그래서는 국제 경쟁력 없다. 먼저 앞서 나가야 한다. 남이 못한 걸해야 노벨상이든 뭐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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