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취업률 감사 나서자 취업 시킨 교수들에 ‘화살’
보직교수 “다들 꺼려서 맡았더니 책상에 욕만 쌓인다”
대학평가 방식 개선 시급 … 전문성 따라 보직 맡겨야
[한국대학신문 민현희·이현진·손현경 기자] “기업 관계자들 일일이 찾아다니고 굽실거리며 겨우 취업률을 올려놨더니 교육부에서는 감사 나온다고 하고 학내에서는 ‘괜히 나서고 다녀 일 만들었다’고 뒷말들을 해요. 취업률 때문에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될까봐 사생활도 포기하고 뛰어다녔는데 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합니다.”(부산지역 대학 A교수)
“다들 안한다고 피해서 ‘눈 딱 감고 2년만 봉사하자’는 생각으로 보직을 맡았어요. 그런데 보직 맡고 매일 욕만 먹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한다’고들 하는데 ‘그럼 당신이 하지 그랬냐’고 말하고 싶은걸 꾹 참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보직 맡은 게 후회스럽네요.”(서울지역 대학 B교수)
최근 대학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학 구성원 각자의 역할과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특히 보직교수와 취업 담당 교수·직원은 맡은 업무의 중요도가 큰 만큼 구성원의 질타도 심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위해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건 비난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취업률 등을 바탕으로 한 정부 대학 평가, 구조조정 방식의 개선이 시급하다”며 “아울러 각 대학 내에 비판보다는 격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구성원을 위한 실질적 보상·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감사 부작용(?) “취업률 올라가도 원망들어” = 7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교육부가 취업률 증가폭이 큰 대학을 중심으로 감사에 돌입하면서 학생 취업을 위해 노력한 교수·직원들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취업률 감사의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다.
A교수는 “몇몇 교수들과 주말까지 뛰어다니며 학생 한 명이라도 더 취업을 시키려고 노력했고 취업률도 대폭 상승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대대적인 취업률 감사를 선언하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며 “학생 취업에 손을 놓고 있던 교수들이 오히려 ‘당신 때문에 감사 받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취업률 때문에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될까봐 대학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건 원망이라니 허탈하다”며 “이제부터는 일을 해도 적당히,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털어놨다.
서울 한 대학 취업 담당 팀장도 “취업률이 떨어지니 대학평가 점수 낮아진다고 욕하고 힘들게 올려놓으니 이번에는 교육부에서 감사 나온다고 욕한다”며 “취업률이 특정 부서로 인해 내려가고 올라가는 게 아닌데 왜 화살은 다 우리에게 돌아오는지 억울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취업률 감사로 교수·직원들이 비난을 받는 일은 또 있다. 최근 감사를 받은 서울소재 대학 관계자는 “졸업생들이 실제로 취업을 했는지, 근무하고 있는지 증명해야 해 수차례 전화하고 방문했다. 졸업생들이 ‘일하기도 바쁜데 왜 자꾸 이러냐’며 짜증을 내더라”며 “기껏 취업률을 높여놨더니 그만큼 확인해야 할 졸업생이 많아져 덩달아 싫은 소리 듣는 횟수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수·직원들이 각종 비난보다 답답해하는 부분은 ‘취업 공장’으로 전락한 대학의 현실이다. 취업률이 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등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취업 준비 기관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충청지역 한 대학 인문대학 교수는 “그동안은 학생들을 전공과 연계해 취업시켰고 보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괴감이 든다. 취업률을 높여야 하니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 취업부터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현재와 같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대학을 넘어 사회까지 모두 썩게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보직기피 만연 … “괜히 맡아 비난만” = “열심히 일하고 비난 받기 일쑤”라고 토로하는 것은 보직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생존·발전을 위한 밑그림이 모두 이들로부터 나오는 만큼 보직교수는 크고 작은 학내 비판에 세심히 귀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들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부분은 “나라면 그렇게 안 한다”는 식의 대책이 부재한 비난이 꽤나 많다는 점이다. 교수들의 보직기피 현상이 만연한 가운데 대학 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보직을 맡았는데 비난이 쏟아지면 “연구·교육까지 미뤄두고 지금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보직을 맡고 있는 서울 한 대학 교수는 “총장이 ‘보직 맡을 사람이 없다’고 네 차례나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런데 보직을 맡아서 예전처럼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동네북이 된다”며 “빨리 2년의 임기가 지나 보직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또 한 재정지원제한대학 보직교수는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 후 그동안 학생 취업 등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교수가 ‘어쩌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따진 적이 있다. 조언을 구하자 ‘알아서 하라’고 답하더라”며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의 잘못이 집행부에 있는 것은 맞지만 애정 없는 비난은 대학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교수들이 보직을 기피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대학 행정에 신경을 쓰다보면 연구·교육에는 손을 댈 틈조차 없다는 데 있다. 특히 교수 업적평가에 연구가 상당한 비율로 반영되는 데 반해 보직교수는 성과보상은 적고 부담감은 커 많은 교수들이 이를 피하는 분위기다.
윤재희 안양대 기획처장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이 처한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많은 교수들이 보직을 맡기 전 고심한다”고 전했고, 신영준 경인교대 기획연구처장은 “대학가에서 ‘처장 맡은 기간만큼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만큼 신경 쓸 게 많고 어렵단 말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대학평가 방식 바꾸고 행정 전문성 살려야 = 전문가들은 취업률 감사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취업률 반영 비중이 높은 정부의 대학평가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도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현행 대학평가 지표 가운데 제일 문제가 큰 게 취업률로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며 “대학평가 때문에 대학은 교수 개개인에게 취업률을 올리라고 상당한 압박을 넣는다. 취업률을 못 올린 게 교수 징계사유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취업률이 낮은 것은 사실상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 현재는 마치 대학이 잘못 가르쳐서 취업을 못 시키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대학평가를 없애야 하지만 먼저 취업률 평가부터라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의 보직기피 현상 완화를 위해 일반 직원의 보직 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일반 기업과 달리 대학의 행정조직은 연구·교육을 뒷받침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직원들에게 모든 보직을 맡기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때문에 교수와 직원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직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직교수의 역할과 능력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낸 바 있는 이석열 남서울대 교양과정부 교수는 “대학 내 직무 영역을 명확히 나눠 교육·연구와 관련된 것은 교수, 경영·행정과 관련된 것은 직원이 주축을 이루도록 한다면 업무 효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보직을 맡는 직원이 늘어나면 대학 행정에 대한 교수들의 부담도 한층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 출신인 이성휘 인하대 학생지원처 부처장은 “교수들도 일부 보직은 직원이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직원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며 “직원의 보직 참여 기회가 늘어난다면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역량 강화, 자기개발에 더욱 힘쓰는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취업률이 대학 흔드는 본말전도 바로잡아야”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