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표 본지 논설위원·인하대 교수

한 동안 북한의 전쟁 위협 때문에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북한의 출구전략이 궁금했으나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니 6월 6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이산가족상봉 등을 의제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하였다. 판문점에서 실무접촉도 있었지만 수석대표 격(格) 문제로 12~13일 서울에서 예정되었던 남북회담이 무산되었다. 판문점 연락채널도 불통이라고 한다.

남북 간 대화는 긴장완화, 관계개선, 그리고 북핵 등 산적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북 당국자 간에 만나서 대화한다는 그 자체로서도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 만나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구걸식 대화, 질질 끌려 다니는 굴욕적인 대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원칙과 기본이 있다. 바로 의전(protocol)이다. 의전은 1961년 비엔나협약에 성문화될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중요한 격식이다. 의전은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반드시 지켜야하는 기본적인 예의와 도리라고 볼 수 있다. 의전은 외교 협상이나 행사의 형식, 절차, 서열, 지위 등을 상호 존중하는 일종의 규범이다. 국가원수가 국빈으로 외국을 방문 할 때 공항영접, 정상회담, 공식만찬, 의장대 사열, 예포발사, 의회연설, 국립묘지 참배, 관심지역 시찰 등등 세심하게 따진다.
 
국내에서도 중앙과 지방정부에 모두 의전편람이 있다. 행사 때 참석자의 서열을 무시하고 좌석을 배치하면 의전 상 결례가 된다. 고위 인사 간 전화통화가 이루어질 때도 비서가 누굴 먼저 바꿔주느냐를 따진다. 외교 행사에 초청장을 받았는데 이름이 틀렸으면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가 간 회담에도 대표자의 격, 회담장소, 좌석배치, 입장순서, 발언순서 등을 사전에 합의한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과 월맹 간 월남전 평화협상을 시작할 때 형식문제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었다고 한다. 좌석배치와 입장순서가 문제되어 출입문을 회담장 양쪽에 설치하여 동시에 입장했다고 한다.
 
회담의 내용이나 결과가 중요하지 형식이나 절차 등을 지나치게 따지는 것은 비효율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은 대등한 주권국가 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자존심과  위신과 직결된다. 의전을 중요하게 따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전에서 무시당하면 회담의 기선을 빼앗긴 것으로 간주한다. 남북회담에 우리 수석대표로 차관급이 나가는데 북한에서 국장급이 나오는 것은 의전 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수석대표를 장관급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남북회담을 무산시킨 것은 상식 밖의 오만불손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남북대화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는 그동안 의전을 무시하고 남북회담을 구걸한 관행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남북대화 그 자체나 본질 그리고 내용도 중요하지만 의전을 무시당하면서까지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이제 상식과 기본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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