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 오해와 논란

지방대 이전 가능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수도권 내서만 가능

주한 미군 공여지 등 특별법 적용 지역선 대학 설립 규제 안해 

"수도권 못 가는 지방대, 생존 가능성 희박 불안감 가중" 토로

[한국대학신문 민현희·이현진 기자] 이달 초 일부 지방대 총장들이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해하면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개정안은 ‘수도권 내 타 권역 소재 대학’의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이전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나 총장들은 이를 지방대의 이전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당시 성명서를 통해 총장들은 “대학의 수도권 집중을 부추겨 지방대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고 지역의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개정안에 반대한다”며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수도권에 대학이 편중돼 지방대들은 학생 충원율 감소 등 심각한 존폐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총장들의 성명서는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 사건은 지방에 소재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존에 위협을 느껴야하는 지방대들의 절박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최근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등으로 지방대들의 수도권 캠퍼스 건립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대학가에서는 이들 총장의 우려가 이미 어느 정도는 현실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방대 관계자들은 “수도권 캠퍼스를 통해 우수 학생 유치, 대학 이미지 제고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도 “지방대가 수도권에 캠퍼스를 설립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에 주목해 달라”고 말한다. 극심한 지역 불균형, 지방대의 가치·특성을 무시한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등으로 많은 지방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수도권행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 내년 개교 예정인 경동대 양주캠퍼스 조감도. 이 대학은 내년에 300명의 신입생을 양주캠퍼스에서 선발하고 단계적으로 1200명까지 늘려나갈 방침이다.
■ “수도권 이전 허용?” 지방대 ‘발칵’ = 14일 대학가에 따르면 강원지역 10개 대학 총장으로 이뤄진 강원지역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 6일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을 막기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지방대가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학교의 신·증설이나 허가 등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20여년 전부터 수도권 지역의 대학 신설·증설을 제한하고 있다. 수도권은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등 3개 권역으로 구분되는데 개정안에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자연보전권역 이전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 이 개정안을 자연보전권역에 4년제 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의 신설·이전을 허용하는 것으로 잘못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자연보전권역에 자유롭게 대학을 신설·이전할 수 있게 된다고 오해한 지방대들은 발칵 뒤집혔다.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강원지역 대학 총장들이었지만 타 지역 대학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호남지역 한 대학 총장은 “정부에서 지방대를 집중 육성한다고 해 기대하고 있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며 “지방대의 수도권 이전이 가능해지면 재정이 부족해 이전하지 못한 지방대는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안을 둘러싼 대학들의 오해는 국토교통부의 공식 해명과 함께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국토교통부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도권 대학의 입학정원은 수도권 인구·산업 유발효과 등을 고려해 엄격히 관리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지방의 우려를 생각해 개정안은 현재 보류 중이고 향후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 지방대 수도권 캠퍼스 설립 ‘줄줄이’ = 정부가 대학의 수도권 신설·이전을 억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방대들의 수도권 캠퍼스 설립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예외적으로 산업대학, 전문대학의 신설·증설을 허용하고 있고,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도 대학 설립을 규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운대는 올해 3월 인천캠퍼스를 개교하고 경영학과·건축공학과·컴퓨터학과·광고홍보학과 등 10개 학과를 이전했다. 또 내년 3월에는 경동대(양주), 중부대(고양), 예원예술대(양주)가 수도권 캠퍼스의 문을 연다. 이들 대학은 내년에 일부 학과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단계적으로 이전 학과를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을지대와 침례신학대도 각각 의정부와 동두천에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을지대는 의정부에 캠퍼스와 부속병원을 지을 예정으로 캠퍼스는 2017년, 부속병원은 2021년 문을 열 계획이다. 1028병상을 두게 될 부속병원은 경기 북부 최대 규모다.

지방대들은 수도권 캠퍼스 설립을 통해 우수 학생 유치, 인지도 상승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청운대의 경우 2013학년도 입시에서 인천캠퍼스 이전 학과들의 경쟁률이 일제히 급등하며 ‘수도권 효과’를 톡톡히 봤다. 모집인원이 가장 많은 수시1차 일반학생전형의 경쟁률을 살펴보면 경영학과는 지난해 8.04대 1에서 올해 60.2대 1로, 건축공학과는 지난해 8.15대 1에서 올해 54.1대 1로 무려 7배 가량 뛰어올랐다.

이 대학 김경수 입학홍보처장은 “인천캠퍼스를 개교하면서 대학 이미지가 제고됐고 수도권 대학 수준 학생의 유치가 가능해졌다”며 “2014학년도 입시에서는 인천캠퍼스 학과들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해 우수 학생 유치에 탄력을 더할 것”이라고 밝혔다.

▲ 박준영 을지대 총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올해 1월 경기도·의정부·국방부와 의정부캠퍼스, 부속병원 건립을 위한 토지매매·상생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을지대 의정부캠퍼스는 2017년, 부속병원은 2021년 문을 열 예정이다.
■ “수도권행은 생존 위한 불가피한 선택” = 이 같은 효과들에도 불구하고 지방대들은 수도권 캠퍼스 설립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토로한다. 일개 대학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극심한 지역 불균형 탓에 지방대들이 엄청난 행·재정적 출혈까지 감수하며 수도권행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수도권 인근인 충남 당진에 제2캠퍼스를 개교한 세한대 김기선 교무처장은 “서울 한복판에 천막만 쳐놓아도 지방에 번듯하게 캠퍼스를 세워놓는 것보다 학생 유치에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지방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지방대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며 씁쓸해했다.

한 지방대 관계자 역시 “학생들이 전철로 통학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신입생 충원율이 달려있다. 살아남으려면 학생들의 편리한 통학이 가능한 지역에 캠퍼스를 낼 수밖에 없다”며 “설상가상으로 지방은 산업기반이 약해 취업까지 어려우니 대학이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오려는 학생이 있겠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지방대들의 잇따른 수도권행이 지역 경제를 황폐화시키고 수도권 캠퍼스를 설립하지 못하는 대학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지역 한 대학 보직교수는 “지방대의 수도권 이전을 막는 빗장들이 하나둘씩 풀리고 있어 많은 지방대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고, 충남지역  대학에서 역시 보직을 맡고 있는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도권으로 가지 못한 대학은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충남도는 최근 국토교통부·안전행정부·교육부 등에 법 개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충남도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이 지방대의 수도권행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며 “법의 적용대상을 수도권 내에 있는 대학으로 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 “지역발전 힘쓰고 지방대 특성 고려해야” = 대학 관계자들은 “현재 지방대들이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원인, 타 지방대의 수도권 이전에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지역 불균형 해소와 지방대 살리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은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을 줄이고 그만큼 지방대의 입학정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에 맞는 지방대 육성책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대에 입학해서도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대학의 기숙사 확충을 지원하고 각 지역의 교통 편의성을 높이는 등 기본 인프라 확충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 구조개혁 방식이 변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평가에 지방대가 가지는 의미·가치, 지역적 특성 등이 모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선 처장은 “정부가 취업률, 학생 충원율을 중심으로 모든 대학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면서 지방대의 생존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수도권행을 택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률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평가를 받아야지 대학을 평가할 게 아니다”며 “지방대가 지역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비현실적이고 불필요한 평가 지표들을 바로 잡고 지방대의 현실을 반영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재 강릉원주대 기획처장도 “정부는 지방대 평가 시 취약한 산업기반 등 지역적 한계를 반드시 고려해주길 바란다”며 “각 대학을 과거 실적에서 벗어나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적어도 2~3년은 지원을 해주고 그 후 평가를 하는 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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