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현 연세대 교수 ‘메타물질’ 이용 벽 통과하는 소리를 만들다

▲ 이삼현 교수(사진) 연구실엔 칼, 가위, 풀 같은 공작도구가 많다. 이번 실험도 아크릴판에 구멍을 내어 클린랩을 씌운 게 전부였다. 이 교수가 실험도구를 들어보이며 연구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성욱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투닥투닥 투다닥’ 빗물을 살짝 머금은 바람이 문풍지를 때리면 ‘소나기가 올 모양이구나’ ‘싸아싸아 주르륵’ ‘투투투’ 장독대에 떨어지는 빗방울. 지붕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은 처마밑으로 ‘또옥’ 하고 떨어진다.

전남 곡성군 ‘깡촌’에서 나고 자란 이삼현 연세대 교수(56·물리학과, 사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상경했다. 서울로 온 그를 지독히 따라다닌 향수병은 다름 아닌 자연의 소리였다. 바람이 ‘휘이’하고 지나는 소리, ‘싸아’ 하고 땅으로 내리치는 소나기 소리가 늘 그리웠다.

물리학을 파고들던 그가 ‘메타물질’(Metamaterial)이란 걸 알게 됐을 때 그는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이나 그대로 서 있었던 그 시골마당을 떠올렸을 것이다. 메타물질은 학계에선 전자기파 연구도구로 쓰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메타물질로 소리를 선택한 것은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창문을 열면 빗소리가 들리고 닫으면 들리지 않는 건 당연한데 불현듯 창문을 닫고도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자연의 소리를 그리워하던 한 물리학자의 연구는 이렇게 다소 엉뚱하면서도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빗소리, 새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다는 게 인간에게 얼마나 독인지 몰라요. 소리로 나누는 교감… 청각은 단순히 듣는 기관이 아니에요. 과학적으로도 소리라는 건 상대방의 음파가 내 청각기관에 와닿는 것이잖아요.”

이 교수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을 의식적으로라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른 아스팔트만 밟으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겐 이렇게 과학적 발견으로라도 자연과의 공감대를 회복해야한다는 말이다.

결국 소리가 벽을 뚫었다. 이 교수 연구팀은 문구용 아크릴 판을 덧대어 만든 구조물로 벽을 만들었다. 판 한 가운데 100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을 내고는 주방에서 쓰는 클린랩을 씌웠다. 스피커(펑션제너레이터)에서 소리를 내보내고 벽 양쪽의 진폭을 측정했다. 일순간 양쪽의 진폭이 일치했다. 연구팀은 환호했다. 메타물질을 이용해 이 영화같은 일을 현실로 증명한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무게가 0인 메타물질을 이용한 초투과와 거대 음향 집속’이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미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피직스 리뷰 레터(Physics Review Letter)(IF 7.37)’에 게재됐다. 메타물질은 파동의 특성을 조절하는 인위적인 구조체인데, 공기의 질량을 0으로 만들어서 소리의 전달능력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소리가 벽을 통과한 원리다.

소리가 벽을 통과할 수 있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일단 이 기술이 상용화 되면 범죄예방을 위해 설치한 차단벽에 구멍을 송송 뚫을 필요가 없어진다. 교도소 면회실, 주유소나 택시에도 투명차단벽에 구멍을 내거나 전화를 놓지 않아도 대화하는 데 지장이 없다. 연구팀은 매표소 창구, 소음필터, 음향집중장치 등에 이 기술이 쓰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연구로 이른바 ‘소머즈 귀’(보청기)도 만들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보청기보다 5700배 더 잘 들을 수 있다. 현 기술력으로는 메타물질이 특정주파수만 잡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모든 주파수를 모으는 연구에 성공한다면 상용화할 수 있다. 메타물질의 가능성은 이 교수의 말마따나 ‘폭발적’이다.

이 교수 연구팀은 이번 연구와 같은 원리로 정반대의 상황 즉 창문을 열어두어도 소리가 안들어오게 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소음차단 통풍창이다. 문을 열어둬서 통풍은 되는데 소음은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벌써부터 자신에 차 있다. “재미있지 않나요?” “신기하지요?” 그는 온전히 연구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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