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가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이 한창이다. 그런데 정작 대학 내부에서는 시국 선언의 내용보다 시국 선언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구성원들끼리 갈등을 겪고 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 가운데 몇몇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이는 총학생회의 의견일뿐 학우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라며 논란이 일었다. 반대로 총학생회가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단과대별로 의견을 모아 시국선언을 진행한 대학들도 있었다.

이렇듯 각 대학 커뮤니티는 이 문제를 두고 연일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시국 선언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사실일 경우 국가의 기강을 흔든 매우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견을 보이는 것은 ‘시기’다. 찬성하는 측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명백한 사실이니 하루라도 빨리 규탄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아직 정확한 판결이 나지 않았으므로 판결 후 시국선언을 해도 늦지 않다고 반대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서로를 ‘일베충’(극우파) 혹은 ‘좌빨’(극좌파)이라고 몰아가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 시국선언을 하면 좌빨이고 신중히 생각하자고 말하면 ‘일베충’이라는 불필요한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대학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토론 보다 상대를 단정하고 헐뜯기에 바빠, 올바른 해결 방안 대신 서로에 대한 감정만 남아 갈등만 되풀이 되고 있다. 특히 집회 참여나 특정 인사의 학내 강연 불허 같은 정치적 사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학문을 배우는 대학은 그 어떤 곳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유연한 사고의 기본은 상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의견을 막무가내로 일베충 혹은 좌빨 등 집단으로 규정하지 말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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