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대학의 6월은 잔인한 달이다.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직접 채점하는 교수들에게는 특별히 그러하다. 단순히 기대하는 답안을 쓴 학생 수가 적고 그에 따라 점수가 낮아서만은 아니다. 답안지의 내용보다도 답안지에 담긴 학생들의 바탕 능력에서 좌절감 비슷한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좌절감은 소위 명문 대학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좌절감의 넓이와 깊이가 해가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데에 있다.

학생들의 답안지를 보면서 느끼는 첫 인상은,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답안지가 낙서장 같다는 것이다. 글씨를 못쓰는 것은 이해된다. 예쁘고 바르게 쓰라는 교육이 없어진 마당인데다, 쓰기보다는 타이핑에 익숙하니 글씨를 못쓰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깔끔하게는 써야하지 않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답안이 논리적으로 씌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답안이 논리적이지 않으니 채점을 답안이 쓰인 순서대로 못하고 논리에 맞추어 찾아다녀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 저학년에서 특히 심각하다.

계산능력 부족의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식전개를 옳게 해 놓고도 숫자를 대입하여 계산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틀리기 일쑤다. 단위를 못 맞추어 틀리기도 하고 단순 계산을 잘못하여 틀리기도 한다. 그래프를 그리고 해석하는 능력은 더 떨어진다.

정작 정답을 써 놓고도, 답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정답률은 수직직하로 떨어진다. 자신이 쓴 답이 왜 정답인지를 모른다면 정말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한 능력 없이 어떻게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서 풀고 검증할 수 있을까?

어떠한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현상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형식의 문제는 거의 풀지 못한다. 직업인 생활의 기본인 문제해결능력이 배양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문제해결능력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의 가능한 원인들을 생각하고, 그 여러 원인들의 영향을 분석하여 문제의 원인을 찾고, 찾은 원인이 진짜 원인인지를 검증하고, 그 원인을 없애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체계, 비판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 창의적인 사고, 이러한 사고력의 바탕 없이는 문제해결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앞의 논의의 결론은 요즈음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훈련 또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판적인 책읽기와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 또한 심각하게 부족하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교육열과 교육투자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실상이다. 도대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10여 년 전, 학습능력 신장을 위하여 학습과 사고라는 과목을 개설한 교수가 전한 어느 학생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학교생활 중 한 번도 생각하기를 요구받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전통적인 지식교육,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고력의 뒷받침 없는 지식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겠는가? 비판적,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창고에 방치된 물품과 같다. 교육의 본질이 학생들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라면,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말고 사고력의 신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의 두뇌가 가진 능력이 단순기억을 훨씬 넘어서는데, 단순기억만을 강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쇠퇴시키는 일인 것이다. 이렇듯 교육에 있어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신장시키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사고력 신장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이 무너진 자리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의 교육을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가 목표하는 인재상을 재정립하고 그에 따른 최적의 교육과정과 방법론, 단계적 실천방안을 수립하여 실천하는 거대 교육개혁, 그것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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