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본지 논설위원·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국정원 선거개입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학교수들과 학생들의 시국 선언이 이어지고, 정치권에서도 국정원 개혁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너무 다양해서 사건의 주요 쟁점과 문제해결의 방향에는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권과 해당 책임자들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이야기한다. 또 국정원을 비롯한 우리 정치권의 근본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선결과에 영향을 미친 만큼 대통령의 책임 있는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대선 결과 무효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이 한 점으로 모아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관련 주체들이 너무 다양하다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대선 시기 댓글과 NLL 발언 공개 등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범법행위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경찰과 검찰의 미비한 수사와 공조, 법무부 장관의 압력에 의한 전 국정원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지난 정권 전반에 걸친 국정원의 정치 개입, 그리고 대선의 당락이 갈릴 수 있는 정치적 대치 국면에서의 경찰의 행태와 후보의 대응 등 너무나 많은 쟁점들이 연루되어 있는 사건이다.
  
국정조사에 어렵게 합의한 여당과 야당은 국정조사위원의 선정부터 이견을 보이면서 관련 사항에서 전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가 현 대통령의 선거 결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유권자 간에도 강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어 어디까지 어떻게 건드려야 할 문제인지에 대한 합의 도출이 어려워 보인다.
  
많은 사안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시발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본질과 초점을 흐리고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계속되는 시국선언과 시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심각성은 훨씬 낮은 듯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이 사건은 나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정치권의 문제일 뿐이다. 그간 정보기관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검경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 행태를 수없이 보아 왔던 우리 국민들에게 이번 사건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암울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우리 국민은 뜨겁게 민주주의를 열망했고 결국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이른 우리 민주주의는 사반 세기만에 국가 정보기관이 국민의 기본권을 자유자재로 침해하였던 과거로 회귀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큰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관심하다. 문제는 이 사건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사회적 의제로 강하게 끌고 나갈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다. 야당도, 시민사회도 성공하고 있지 못한 이 일은 사실상 언론의 몫이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사건 초기부터 사건을 축소하거나 정권을 보호하기에 급급한 양상을 보였다. 이 사건은 우리 정치의 가장 굵직한 개혁 요구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규명하여야 할 것인지,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지,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국가 기관들의 정치개입을 어떻게 처벌하고 근절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국민적 관심과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국정조사는 일시적인 정치 쇼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더불어, 이 사건은 현 정권의 민주적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혹여라도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요구를 사건의 은폐와 축소 또는 왜곡으로 덮으려는 시도가 감지된다면 현 정부에 대한 신뢰는 결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정권 초기에 부딪힌 이 문제를 강력하게 대처하고 강한 개혁 의지를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 위에 단단히 설 수 있는 정권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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