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강사 선발·검증·관리체계 마련 ‘고민’

학기 중 돌연 사라지거나 강의 끝나면 ‘나 몰라라’
‘3개월짜리 시간강사’ 신분 벗어나게 토대 다져야

[한국대학신문 특별취재팀]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가는 영어회화 등 외국어교육을 담당할 원어민강사 채용으로 고민이 깊다. 학기당 수십 명에 달하는 원어민강사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들의 자격을 엄정하게 심사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건·사고도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4일 대학가에 따르면, 원어민강사들은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년간 계약하는 ‘강사’ 신분으로 채용되고 있었다. 계약 기간이 길어야 1년이기 때문에 학기 중 갑자기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강의가 끝나는 다음날부터 휴가를 떠나는 강사도 적지 않다.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성적 이의신청을 받거나 학생 상담을 하는 원어민 강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자격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관광비자로 입국한 영어강사가 강의를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 지역대학을 대상으로 전면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소동도 뒤따랐다.

또 대학 강사는 아니지만, 지난달 25일 여성들을 쫓아다니며 엉덩이와 다리를 집중적으로 촬영한 학원 소속의 한 원어민강사가 검찰에 불구속 기소를 당하는 사례도 일어났다. 그는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의 하체를 2주일 동안 무려 306차례나 동영상으로 찍었다.

학원에서 수업하는 영어회화 강사들도 언제든 대학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자격 검증·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미스런 일 예방 女강사 선호= 대학 안팎에서 일고 있는 원어민강사 자격시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경우 이들의 자격을 검증하고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관리체계가 거의 없다.

대다수 대학들은 원어민강사 채용 웹사이트에 공고를 내거나 지인의 추천을 받는 식으로 채용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지역의 초중등학교나 학원가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이땐 경력보다는 강사의 도덕성, 업무수행 능력 등 ‘자질검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김민호 전북대 국제협력본부장은 “이미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외국인 중 평판이 좋은 사람을 뽑으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최소한 학사학위와 테솔(TESOL, 영어교사 자격증) 정도는 갖춘 사람을 뽑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학생들과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해 여자 강사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대학들은 그러나 원어민 강사들의 학위나 자격, 범죄 경력 등 신원조회를 여권(visa)으로 대신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 강의경력을 검증받은 강사도 다르지 않다. 본국에서 저지른 범죄 전력은 여권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대의 경우 강사의 인적사항을 경찰에 의뢰하고 있지만 본국이나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 전력은 알 수 없다. 외국인들의 전과기록은 본국 수사기관에 본인이 직접 의뢰해야 범죄사실이 없다는 증명서류 등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게 대학 인사담당자들의 고민이다. 김민호 본부장은 “입국심사를 할 때 본국에서의 범죄 전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강의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어민강사를 채용한 이후에도 이들의 강사자격이나 범죄경력을 검증할 방법이 딱히 없는 게 대학의 현실이다. 오래전부터 50여국에 이르는 다양한 국적의 교원을 채용해 온 한국외대조차 전임교원에 비해 강사 검증시스템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이 대학은 관리가 어려운 원어민강사보다 등록체계가 더 까다로운 원어민 전임교원을 더 많이 선발하고 있다.

외대는 원어민강사 채용을 각 학과와 실용외국어위원회가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강사 채용 시 대학본부는 이들의 승인절차를 행정적으로 처리해 줄 뿐이다. 교무팀이 진행하는 업무는 강사 선발이 완료된 후 이들의 행정업무를 돕는 데 집중돼 있다.

원어민강사를 실용외국어위원회의 내부회의를 통해 뽑고 이에 대한 승인을 법인이사회에 요청해 확정한다. 이처럼 대학본부가 원어민강사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권에서 원어민강사를 선발하기 때문에 전공교수가 아니고서는 질적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외대 관계자는 “학과마다 선발과정이 다르다. 보통 학과교수회의를 통해 선발을 담당한다. 학과의 교수들이 교무팀에 비해 해당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기 때문에 교무팀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도 단과대학별로 직접 채용할 강사를 검증한 뒤 계약서를 본부에 올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원어민 강사들은 3월과 9월 학기 단위로 채용되거나 재계약한다. 임용 전 원어민강사들에게 성범죄 예방교육을 이수토록 하고 있지만, 실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어떤 처벌을 받는지는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는다.

서울대 교무과 소인철 주무관은 “계약서에는 해당 업무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식으로 포괄적인 사유를 적시하고 있다”며 “그래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법적 공방에 휘말리지 않고 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 만료된 보조교사들 잇단 ‘대학 行’= 올 초 서울시교육청이 중·고교에 배치된 영어 보조교사를 대거 감축했는데 이들이 대학으로 흡수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월 중·고교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150여명을 계약만료로 내보냈다. 기초회화 중심의 초등학교 수업과 달리 독해와 문법 위주로 이뤄지는 중·고교에서는 교육효과가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다.

계약이 끝난 중·고교 원어민강사들은 대거 대학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학기 전북대 강사채용 경쟁률이 예년(2~3대 1)에 비해 4~5배 높은 10대 1까지 치솟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중·고교 교사들의 ‘대학 行’과 더불어 대학의 영어교육과정 개편도 원어민강사 채용시장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대교협 산하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의 손동현 원장은 “최근 대학 교양과정의 영어교육은 말하기에 머물지 않고 듣기·읽기·쓰기가 가미된 이른바 ‘프리젠테이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어 프리젠테이션(발표)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풀어내는 훈련이다. 단순히 외국인에게 영어로 말해보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회화 위주의 영어교육이 보다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남대 교무부처장을 지낸 박구용 교수는 “원어민들을 강사로 불러서 (학문이 아니라) 스펙 쌓기 같은 기능적인 영어교육을 대학이 대행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볼 문제”라면서도 “우수한 원어민강사들을 발굴해 교육의 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강사들이 한국에서 직업적 전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직업적 전망과 토대란 정부와 기업체 등의 재정지원으로 강사들의 신분과 처우를 개선하고, 한국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학 원어민강사들은 
영미권 국가에서 학사 혹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현지인들이 전 세계를 다니며 영어를 가르친다. 이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대학의 인사담당자들은 “대부분 개인적 경험 쌓기의 일환으로 국내대학에 지원 한다”고 말했다. 계약기간은 3개월~1년이며 신분은 강사다. 주로 교양과정 소속으로 교양영어, 실용영어, 영어회화, 듣기, 쓰기 등을 강의한다. 강사 당 2~3과목을 맡는다. 최근엔 경희대, 건국대 등을 중심으로 이들을 비정년트랙 전임교원(2년 계약)으로 뽑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월급은 학·석사 등 학위에 따라 약 200만원~240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 특히 중원대는 3500만 원대(1년 계약)의 비교적 높은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기숙사를 제공 받아 대학에 상주하지만, 강사 신분이기 때문에 학교의 공식행사나 교수회의 참석 의무는 없다.


[인터뷰]“강사 자질 보증할 추천인 없는 게 문제”
한·일 대학 경험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한국대학신문 최성욱·이용재 기자] 미국인인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서울대 교수(51세, 국어교육학과·사진)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에서 23년간 강의한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1992년 KAIST와 고려대, 1995년~2008년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교토대·가고시마대를 거쳐 200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부교수로 부임한 그는 일본에서 13년, 한국에서 10년 동안 강의했다. 양국의 대학에서 영어강사는 물론 원어민강사 관리업무까지 두루 경험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그를 만나 미국 출신 원어민강사의 특성과 한·일 대학의 채용시스템에 대해 물었다.

파우저 교수는 국내대학의 원어민강사 채용 문제점으로 ‘허술한 인사검증시스템’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보통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다”고 말했다. 직업적으로 경력을 쌓아 프로영어강사가 되려는 원어민강사는 드물다는 말이다. 대학에 인사검증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에 비해 일본 대학들이 강사 채용에 있어서는 검증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일본은 교수와 강사 채용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단과대학에서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다면평가를 한다. 이땐 추천인이 필요한데, 추천인은 막중한 책임을 진다”며 “무엇보다 전체 교수회가 참여하는 검증작업은 여러 단계로 이뤄지고 관여하는 사람도 많아 부적격자를 골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대학들은 일단 ‘뽑고 보자’는 식이라 문제가 발생하면 수습하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원과 달리 강사의 경우 해당 학과에서 자율적으로 채용하고 계약을 해지하기 때문이다. 파우저 교수는 “교양학부장과 몇몇의 교직원들이 서류와 면접만으로 원어민강사의 자질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대학의 추천인제도처럼 해당 강사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파우저 교수는 ‘실력 있는 원어민강사’를 가려내려면 “스펙보다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육철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해외유학 등 타문화 경험 △한국에 대한 지식과 관심  △2~3년 이상의 장기 경력 등을 살필 것을 주문했다.

경력이 다채롭고 눈에 띄게 좋은 지원자는 의심해 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왜 영어센터에서 강의하려고 하겠는가. 취직이 안돼서 왔거나 ‘좋은 자리’가 나면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는 한국어교육 등 문화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원어민강사들의 강의 질도 올라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원어민강사들이 강의가 끝나고 어떻게 살든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사실상 방치돼 있다. 이들을 위해 한국어강좌를 개설하거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답사 프로그램을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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