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주에는 4년제 대학총장 144명이 모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개최한 하계대학총장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열렸던 하계 대학총장세미나는 의례적으로 일정 주제를 갖고 세미나를 하고, 신임, 연임 총장소개, 그리고 친목도모 등으로 일정을 마쳤다.

그러나 이번 하계 총장세미나에서는 2006년 이후 7년 만에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여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교육부의 2중대’라는 인식이 무색할 정도의 강한 톤이었다. 지난 4월8일 대교협회장으로 취임한 서거석 전북대총장은 교육부 1급 출신인 이원근 사무총장을 영입, 대학교육정책의 실무를 직접 관장하며 이번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정부 건의는 모두 6가지인데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새로운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반대한다는 것과 대학 기관인증 평가를 대교협이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부산· 경남· 전북 등 몇몇 지역에서 과학기술원 설립이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론 각 지역마다 과기원 신설에 대한 당위성은 있어 보인다. 공업생산액이 전국의 28%를 차지한다는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신설되는 과학 인프라가 많다는 점에서 과기원 설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전북지역에서도 새만금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도내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이 모두 대학을, 그것도 지역 거점 국립대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 해법을 과기원 설립에서만 찾으려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더욱이 지난 정부부터 심화된 대학구조조정의 여파로 국공립사립대 할 것 없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새로운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려고 하는 것은 완전 모순된 정책추진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과학기술원· IT종합학교 등 특수목적 고등교육기관을 새로 설립하기 보다는 기존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나 경쟁력 있는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지원을 늘려나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대교협의 논리가 설득력을 갖는다.

대교협은 또 최근 교육부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한국고등교육평가원(가칭)에 대해서도 대학협의체의 자율적 질 관리 시스템에 의해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현재 대교협의 주요업무로 인식되어져 있는 대학기관인증평가 사업을 계속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교육부가 새로운 평가기관을 검토하고 있는지, 공정성을 갖춘 평가전담기구가 새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왜 나오게 됐는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의 대학기관 인증평가에 대해 ‘선수가 심판을 보는 격’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교협이 논리를 세워 방어에 나서야 한다. 기왕에 하던 사업인데 왜 이관하려 하느냐든지,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식의 일차원적인 논리로는 교육부의 새로운 평가기관 설립 검토를 잠재울 수 없다.

대교협은 이밖에 국가장학금 2유형의 폐지도 함께 건의했는데 이는 대교협의 건의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국가장학금 2유형을 빌미로 대학의 등록금인하나 장학금 확충 같은 재정 부담을 떠안기는 것은 대학구조조정과 함께 대학에는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교육부 장관, 새로운 대교협 회장이 진용을 갖추었다.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말에 걸맞게 대학사회가 발전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정책이 수립,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대교협이 교육부의 2중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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