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뉴욕까지, 4984km 자전거 횡단한 대진대 조형호 씨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밀도는 낮아졌다. 인간이 하늘을 날면서부터 여행은 과정이 아닌 결과가 됐다. 명소는 관광지와 다르지 않고 빠르고 편안한 이동수단을 계획하는 동안 ‘거주지를 떠나 객지를 나다니는 일’이라는 여행 본연의 의미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 대서양을 등지고 태평양까지. 미대륙 4984km을 자전거로 횡단한 조형호 씨는 "여행준비는 별로 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첫 페달을 밟을 용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열 하루에 걸친 긴 여정 끝에 LA에서 출발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도착했다.

“어느 길을 통해서 갈 것인지, 하루에 얼마나 이동할 것인지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고, 내가 갈 길이 비포장도로일지, 오르막길인지, 혹은 공사 중일지 알 수 없거든요.”

태평양을 등지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대서양을 마주하기까지,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에서 뉴욕의 센트럴 파크까지 동에서 서로 미대륙 4984km을 종단한 조형호(대진대 국제통상학 3)씨의 말이다. 첫 페달을 밟을 용기가 여행준비의 전부라고 밝힌 조형호 씨. 태평양을 마주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문득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뉴욕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죠. 더 멀리 가보고 싶기도 하고, 대서양 너머에 또 다른 큰 세계가 기다리는 것 같아 설렜습니다. 무엇보다 미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모두 여행 동안 만났던 사람들 덕분입니다.”

그가 자전거로 열하루를 달리며 만난 사람은 다양하다. 특히 첫날의 기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더운 날씨에 장시간 여행으로 지친 그에게 스페인 억양의 서툰 영어로 인사를 건넨 한 노숙자의 행복한 얼굴은 그의 머리에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내가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나하는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찼었는데, 그 노숙자의 행복한 얼굴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분에 비해 좋은 자전거도 있고 옷도 있고,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곳도 있잖아요? 왜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다시 그 분을 만나 생수라도 나누고 싶지만 다시 만나기 힘들겠죠?”

객지를 나다니며 만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힘든 여행길에도 조형호 씨가 힘차게 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사람이다. 허름하고 지친 행색의 조형호 씨에게 먼저 다가와 물과 음식을 건네고 집으로 초대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파티를 벌이기도 했단다. 조 씨는 “가족처럼 침대를 내어준 사람도 있었어요. 몸이 편해서 행복했다기 보다 타국에서 사람의 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고 말했다.

열하루, 4984km의 여행길에 행복함으로만 가득 찼을까. 조 씨는 여행길에 생사의 위기를 넘긴 적도 있다. 들짐승에게 쫒기거나 토네이도를 만나기도 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 펼친 텐트로 달려드는 벌레들도 고욕이었다는 조 씨. 그러나 특히 여행 둘째날 캘리포니아 황무지를 헤맨 기억은 그가 꼽은 여행의 클라이막스다.

“캘리포니아 황무지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가 끊기고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가 나왔어요. 위험하겠다 싶어서 지도를 보고 산길로 올라가는데 도중에 GPS가 위치를 몾잡더라고요. 아뿔사 싶었죠. 너무 많이 와버려서 되돌아갈 길도 찾을 수 없었어요.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언덕만 보이고 설상가상으로 물도 다 떨어지고…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가 다 떨어지고 2시간을 더 헤맨 뒤에야 황무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포장도로와 지나다니는 차들을 보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뛰어다녔다는 조 씨다. 열하루의 기억, 첫 페달을 밟던 설렘은 그에게 어떻게 남았을까.

“언덕 하나를 넘을 때마다 어떤 길이 있을지 매번 설렜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지난 학기 가지고 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설렘으로 변했어요. 이제 다음 여행계획도 생각하고 있어요. 시간적인 여유를 만들어 유럽에서 중국을 횡단해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 여행을 떠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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