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호 본지 논설위원·덕성여대 독문과 교수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에 영화 「설국열차」가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이 영화를 선전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영화에서 신성한 것으로 그려지는 열차의 엔진은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여러 답이 가능하겠지만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 대학 중심적 사고(?)를 펼쳐본다면 그 엔진은 대학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는 원동력. 사회 생존의 에너지 공급원. 한 사회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방향키. 이런 기능은 대학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대학이란 한 사회의 생존과 발전의 토대이자 최후의 보루다. 이것은 무엇보다 영화의 열차 엔진과는 다른 의미로 가치중립의 영역이다. 정치이념, 계층, 문화, 빈부, 심지어 종교에 대해서도 중립을 지키는, 국가사회와 인류 공존을 위한 연구와 교육의 핵심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대학이 정부의 일시적 정책 실험실이 되어서도, 정치나 종교 이념의 선전장이나 특정 계층이나 경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소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대학의 장소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 연구되고, 개발되고, 논의되는 이론이나 사상 혹은 넓은 의미의 어떤 상품이라도 가치중립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연구·교육되는 사상과 상품의 종착점은 실현 가능하고 평화적 합의에서 도출된 사회 보편적 정의의 실현에 기여하거나,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의 발전과 행복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아!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학은 너무나 쉽게 특정 이념이나 정책,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경제적 이익만을 염두에 두는 상품을 생산하거나 홍보하는 회사나 공장, 정책의 실험실 내지 선전의 장(場)이 되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없는 우리의 대학에 많은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도록 내몬 외부의 간섭은 없을까. 정부 내지 교육부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부의 대학정책이 시효가 지난 적자생존과 시장만능의 근대발전론을 따라서는 안 될 것이다. 현 정부가 내거는 창조경제, 경제민주화는 근대의 발전모델은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인문정신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그 진정성을 믿고 싶다.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평가에서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취업률을 제외하고 획일적 정량평가보다는 정성평가를 하겠다는 것도 이런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방향이다. 다만 정성평가의 구체적 기준과 방향은 사회에 대한 대학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지속적 성찰과 현재의 역할에 대한 가치중립적 논의에서 나와야 한다. 각 분야에 대한 평가기준은 구성원의 동의를 거쳐서 나와야 하고, 정책의 시행 후 구성원의 피드백을 거쳐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가는 각 대학의 상황에 맞게 역량을 강화하고 단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효과적으로 지원해주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하지 처벌과 응징을 위한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평가를 통해 대학은 자신의 발전단계를 검증받고 부족한 것을 확인하며, 교육부는 각 대학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상호소통과 지원의 평가체제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각 대학의 발전을 위해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고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소위 경영컨설팅을 통해 기업식 경영이익 평가를 시행하고 이를 합리적 외부 평가라고 말하거나 이를 통해 일방적, 위계적, 심지어 굴욕적 조정을 요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우리 사회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핵심 엔진이자 가치중립적 연구와 교육의 주체이지 교육부의 통제와 지도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대학의 발전과 개혁의 성패는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합의와 지속적 소통을 통해 담보되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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