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 이론의 핵심이자 사회학적 개념인 '공론영역(public sphere)'을 동양 역사의 이해에 적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역사학회 주관으로 경제사, 지역사, 과학사, 미술사 등 15개 역사 관련 학회들의 참여 속에 지난 25, 26일 양일간 건국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는 '역사에서의 공공성과 국가'를 공동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공공영역'이란 위르겐 하버마스가 1962년『공론영역의 구조적 변동』에서 제시한 것으로 민중과 정부 사이에 인위적, 자연적으로 형성돼 시민사회와 국가지배의 정당성을 비판하는 기능을 가진 의사소통의 공적인 영역을 일컫는다.

이번 대회에서 '서양에서의 공공성과 공공영역'을 주제로 발표한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공공영역은 유럽사의 특수성"임을 강조했다.

중국과 비교해 국가 형성과정이 늦은 유럽사회는 상대적으로 지체된 정치적 축적과정을 통해 '시민사회', 즉 국가가 매개하는 공공영역이 출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는 것.

최 교수는 "공공영역은 18세기라는 특정시기에 유럽이 근대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독특한 역사적 현상"이라며 "이는 보편적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국역사상의 공공성과 국가'를 주제로 발표한 김택민 고려대 교수는 "중국의 경우, 공자 이래 공공성의 영역이 열려있었다"고 주장했다.

미국학자들은 19세기 중국의 신사, 상인 등 지역 엘리트들이 동향회, 회관 등을 조직해 능동적으로 공공사업에 참여했던 사실을 근거로, 당시에 시민사회적 존재가 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는 향촌자치에 의존해 온 중국 사회 전통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19세기 말 활발했던 지역 엘리트들의 공공사업 참여가 20세기 들어 갑자기 사라진 것은 내적 혼란 상황에서 국가권력과 대립되는 개인의 권리,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지방자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에서 '공공영역'의 태동과 발전양상을 점검한 박광용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의 경우, '공론'의 주체는, 17세기 붕당정치를 통해 중앙 관료계층에서 사림으로, 18세기 탕평정치에 의해 민서에까지 확대됐으나 정조 사후 모두 무너졌다"고 말했다.

정조 이후 정치의 장에 민인들의 요구가 수렴되지 못하고 불만이 높아지자 민의는 반체제적 민간신앙에서 민란 등의 폭력적 방식으로 표출돼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에 대해 '공공영역'을 한국사와 중국사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주영 전국역사학대회 조직위원장은 "제도권 영역 밖에서 비판과 설득의 방법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소수 지식층 집단이 누구인가를 역사 속에서 밝혀내려 했다"며 "이같은 논의가 최근 한국에서 성숙해가는 시민사회의 성격과 방향을 이해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둘째날인 26일에는 각 분과학회들이 공동주제를 놓고 발표회를 가졌으며, '생활세계로서의 지방사 연구',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몸, 질병, 역사', '멀티미디어 시대의 역사인식:영화와 역사Ⅱ' 등을 주제로 분과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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