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KAIST 연구교수

*** 한국대학신문 창간 25주년을 맞아 국내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환경을 돌아보면서 △우수한 연구 △참신한 연구 △흥미로운 주제를 가진 연구 등을 발굴해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 성과와 정보를 공유하는 취지에서 연속기획 ‘괴짜과학자들의 위험한 연구’를 마련했다. 자기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에 뛰어든 학자들의 파격적인 상상력을 뒤쫓아 가보자. 

 

▲ 경락의 실체에 천착해온 이병천 KAIST 연구교수(사진)의 전공은 뜻밖에도 자율신경약리학이다. 학·석·박사학위를 모두 약학대학에서 받았다. 과학에 관한한 근본적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워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는 그는 지난 2002년 소광섭 서울대 교수의 추천으로 경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학계의 관심은커녕 무수한 비판 속에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은 건 과학에 관한 호기심과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최성욱

 

경락타고 흐르는 DNA 보여주니 눈 휘둥그레진 해외학자들
현대의학 정설 뒤집을 위험한 연구 ‘미래의학의 주류될까’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혈액과 림프액은 혈관과 림프관을 따라 흐르고 혈액과 림프액 안에는 구조체가 없다는 게 현대의학의 정설이다. 그런데 혈관과 림프관 안에 또 다른 실과 같은 구조물이 떠 있다면…? 몇몇 학자들은 이 혈관과 림프관 속에 떠서 존재하는 프리모관(primo vessels, 봉한관)을 경락(經絡)이라고 부른다.

경락을 잘라 성분을 분석했더니 DNA미립자(산알: 살아있는 알)가 발견됐다. DNA미립자가 이 경락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경락 마사지는 이 경락에 물리적으로 자극을 줘서 DNA미립자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기(氣)가 잘 통한다는 건 DNA미립자가 원활하게 돌아다닌다는 말이다.

경락은 직경 10마이크로미터의 미세한 관이다. 두께론 머리카락의 20분의 1 수준이고 단면은 마치 연근을 잘랐을 때의 모양과 비슷하다. 망사스타킹처럼 장 표면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개, 돼지, 토끼 같은 동물들도 모두 갖고 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실오라기라서 언뜻 봐선 보이지 않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희미하게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다.

 

▲ 토끼의 림프관 안에 실처럼 떠 있는 프리모관(봉한관). 출처: Lymphology 2008 41(4):178-85 BC Lee and KS Soh

유전정보의 매개체로 알려진 DNA는 생체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왜 하필 경락을 타고 흐를까. 이 미립자의 기능은 무엇일까. 이병천 KAIST 연구교수(50·IT융합연구소, 사진)가 지난 2010년 한국연구재단의 ‘모험연구’를 통해 규명하려 했던 지점이다.

이 경락의 기능을 밝혀내는 실험이 ‘위험한 연구’인 건 1953년 왓슨과 크릭이 알아낸 이중나선구조의 DNA모델 즉 유전법칙이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나선구조란 DNA는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데 유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DNA구조체가 풀어지면서 복제를 한다는 학설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경락을 타고 흐르는 DNA미립자들이 조각조각 뭉쳐져서(fusion) 새로운 세포(cell)를 만들어낸다는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를 안개와 비에 비유했다.

“안개가 서서히 뭉쳐지면 비가 되듯이 DNA미립자들도 덩어리가 합해지면 세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조심스런 예측이었다.

연구의 관건은 경락 속 DNA미립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다. 이중나선구조에서는 구조체가 떨어져 나오면서 복제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단순히 뭉쳐지면 각각의 DNA 속 유전정보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내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좀 황당하죠? 학계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요. 그러나 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봐요. 2004년 림프관 안의 경락을 현미경으로 촬영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믿지 않았죠. 그런데 엄연히 있잖아요. 그리고 경락에 DNA미립자가 떠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인체에 ‘그냥’ 존재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모든 사람이 각자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락의 실체가 밝혀지면 신체의 내부자생력을 통해 병을 고치거나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줄기세포(stem cell)만 해도 세포조직을 강제로 심어 넣어 신체를 재생시키는 방식인데, 경락의 자발적 재생능력을 규명해 낸다면 자기치유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경락의 실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알려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경락은 미래의학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겁니다.” 

 

▲ 1평도 안되는 비좁은 연구실엔 간이의자를 제외하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1960년대 경락의 존재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김봉한 박사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책, 경락 인체해부도 등 연구실엔 경락과 관련한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최성욱

사실 이 교수의 경락연구는 국내보다 해외학자들이 더 뜨거운 관심을 보내오고 있다. 지난 2009년 중국 중의학연구원에서는 “연구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직접 보여 달라”며 이 교수를 초청했다. 중국 전국 각지에서 경락 권위자들이 모여들었다. 2011년에는 미국 켄터키주의 루이빌대에도 초청을 받아 선보였다. ‘미크론’이라는 호주의 한 현미경 학술지에 DNA 미립자 융합 연구를 보고하기도 했다. 해외의 학자들은 이 교수의 다소 발칙한 상상의 세계를 흘려보지 않았다.

올해 미국의 대표적인 대체의학학술지 ‘ECAM’에서 프리모관(경락)에 관한 스페셜 이슈를 이 교수에게 맡긴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1960년대 경락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개척한 월북의사 김봉한 박사, 그의 연구를 근거로 경락의 해부학적 존재를 세계적인 무대에 등장시킨 프리모 연구의 창시자 소광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해외 학자들로부터 논문을 받아 직접 엮었다.

이 특집호의 의미는 남다르다. 경락의 본산으로 알려져 있던 중국을 제치고 경락의 의학적 실체 가능성을 한국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경락 실체의 원천기술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저는 정말 재밌는데요. 보통은 답이 나올 법한 연구를 하잖습니까. 그런데 경락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예요.”

지난 2일 이 교수의 KAIST 연구실. 0.5평이나 될까. 책과 주사기, 각종 실험장비가 널부러져 있는 좁은 연구실에서 설명을 들었다. 이 교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세요?”라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늘 생각의 여지를 열어두려고 하는 것 같이… 그리고 눈망울엔 기묘한 상상의 세계가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연구자: 이병천 KAIST 연구교수(50세·IT융합연구소)
▷주제: 경락의 실체: 산알의 구조와 생리적 기능 규명
▷연구기간: 2010년 9월 1일~2013년 8월 31일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