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요즘 국립대 기성회비가 뜨거운 감자다. 최근 법원은 방송통신대의 기성회가 법률상 근거 없이 원고들로부터 기성회비를 징수하였으므로, 이를 부당이득으로서 원고들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또 국가에 대해서는 기성회비의 납부에 관해 불법행위를 했거나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교육부는 훈령인 ‘비국고회계관리규정’까지 고쳐가며 기성회계에서 공무원 신분의 국립대 직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당장 9월부터 금지하는 한편, 국립대 교수에게 지급하던 정액급의 기성회계 수당을 성과급으로 대체하도록 지시했다.

기성회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법하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자식을 맡긴 대학에서 필요하다고 해서 기성회비를 걷어 주었는데, 이제 와서 기성회비를 받아 쓴 대학이 아니라 기성회가 반환할 의무가 있다니 말이다.

기성회는 학부모들이 부족한 대학운영 자금을 거출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고, 대학 등록금은 대개 학부모들의 부담이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결국 기성회비를 납부한 학부모가 자신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꼴이다. 설령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한들, 기성회가 무슨 돈이 있다고 반환한단 말인가.

법원의 판결은 애써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있다. 아니 국가의 책임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국립대 기성회비는 원래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이다. 해방 이후 국가 재정이 빈약하던 시절 국립대 운영에 필요한 자금 중 일부를 학부모들이 부담토록 한 것이 기성회비의 시초였다.

그 후 국가재정이 확충되었음에도 국가가 이를 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수 십 년간 학부모들이 기성회비를 납부했고, 최근에는 무려 등록금의 70~80 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성회비라는 명목으로 떠안고 있다. 그동안 국가는 대학등록금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수업료만을 징수한다고 폼을 잡은 셈이다.

국립대 운영을 위한 재정책임은 그 설립자인 국가가 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기성회비의 사용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법원이 판단한 대로 기성회비 ‘징수’는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러니 이를 규율하는 교육부 훈령이 법적 근거가 있을 턱이 없다.

물론 국립대는 기성회계를 방만하게 운영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마치 기성회비가 등록금 인상의 주범인양 호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국립대가 교육부 지침에 따라 공무원 직원에게 주던 기성회계 수당을 폐지하더라도, 등록금인하율은 약 2.5% 정도에 불과하다. 학부모한테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미 정부는 사립대처럼 국립대의 기성회계를 폐지하고, 이를 일반회계와 통합하는 ‘국립대재정회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그런데 국가의 책무인 재정부담을 확대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법안이 통과되면 법원도 국가도 뜨거운 감자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성회비가 수업료라는 이름으로 바뀔 뿐, 본래 국립대 기성회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는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기성회 예산에 대한 통제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소득을 얻게 된다.

국립대 기성회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눈 가리고 아옹하지 말고 속히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국립대의 취지에 걸맞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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