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 어려운 과제 떠안은 대학들 불만 제기

컨설팅 결과 이행했지만 폐교된 대학도 있어
지표 상승 대학도 “구체적 발전방안 아쉽다”

[한국대학신문 특별취재팀]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2014학년도 경영부실대학 9개교 명단을 발표했다. 서남대·신경대·제주국제대·한려대·한중대 등 4년제 대학교 5개교와 광양보건대학· 벽성대학·부산예술대학·영남외국어대학 4개교가 지정됐다.

이 중 제주국제대(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학 통합 신설)와 한중대, 벽성대학, 부산예술대학 4개 대학은 2010년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들이다. 강도 높은 대학구조조정 이행과제와 경영컨설팅을 받았지만 부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재지정 됐다.

사학비리 등으로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됐던 선교청대는 명신대·성화대학과 함께 강제 폐쇄됐고, 건동대와 경북외대는 자진폐교를 택했다. 벽성대학 역시 올해 다시 경영부실대학에 지정되며 사실상 폐교를 앞두고 있다.

이렇듯 경영부실대학들이 수년째 부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자 대학가에서는 교육부와 사학진흥재단이 실시하는 경영컨설팅이 “사실상 폐교를 위한 형식적 절차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6일 대학가에 따르면 경영부실대학으로 판정된 이들 대학은 절망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교육부 경영컨설팅이 짧은 기간 동안 실현 불가능한 이행과제를 수행토록 했다거나 지표에만 매몰되게 했다는 비판이다. 일부 대학은 행정 가처분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경영부실대학, 씻을 수 없는 ‘낙인’= 재정지원제한대학이나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의 경우 자구노력을 통해 지표만 상승하면 상대적으로 탈출이 용이하다. 그러나 경영부실대학에 지정되면 얘기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정부 재정지원이 차단되고,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국고지원사업 신청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데다 인기가 높은 사범·보건계열 정원도 신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어 신입생 모집도 어려워진다. 핵심 이행과제를 모두 수행하고 지표가 상승해야 비로소 탈피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노력으로는 ‘학교폐쇄’라는 블랙홀을 피할 수 없다.

경영부실대학 선정 역사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실사를 통해 경영이 부실하다고 판단된 12개 사립대를 선정했다. 이들 대학은 경영컨설팅을 통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 받았으며, 경영정상화에 실패한 대학은 폐쇄되는 극단적 조치에 처해졌다.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되면 먼저 자체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한 뒤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통해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심의 받는다. 심의 과정에는 교육부와 사학진흥재단, 한국생산성본부, 회계법인 등이 참여한다. 이후 3~4개월에 걸친 교육부 경영컨설팅을 통해 핵심 이행과제를 제시받는다. 주로 입학정원 감축, 대학 통·폐합이나 합병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과제가 주어진다.

■ 무리한 이행과제…부작용 속출= 문제는 처음에 설정한 이행과제가 일종의 ‘족쇄’처럼 작용한다는 점이다. 대학의 자구노력 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오더라도 대학과 컨설팅 주체의 협의가 있었기 때문에 수정되거나 유보될 여지가 없다.

대표적인 예로 2010학년도부터 이번 2014학년도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된 제주국제대와 부산예술대학은 모두 수익용 자산을 매각해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핵심 이행과제를 받았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들며 부지 매각에 난항을 겪었다.

제주국제대는 지난 2011년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학이 통합돼 출범한 대학이다.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학 둘 다 2010년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돼 구조조정 차원에서 통합을 선택한 것. 그러나 제주국제대의 앞날은 통합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교육부 경영컨설팅에서 제시된 이행과제 중 하나인 탐라대 부지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내부적으로도 이사회 파행운영, 교직원 임금 체불 등이 겹치면서 경영부실대학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주국제대는 올해 경영부실대학으로 재지정 되자 “25개 이행과제 중 탐라대 부지 매각 건만 남았다”며 “이마저도 애초에 이행기간이 4~5년으로 설정돼있기 때문에 불이행으로 간주하긴 어렵다”고 항변했다.

부산예술대학 역시 핵심 이행과제 중 하나인 수익용 기본재산 매각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도서관 건립’ 과제도 수행하지 못했다. 황문건 기획관리실장은 “우리대학 전체 재산규모가 40억 원에 불과한데 수행하기 어려운 과제를 떠안기고 부실로 낙인찍었다”며 “예술대학이라 취업률 평가도 제외되고 재학생 충원율이 96%에 달하는 등 지표를 끌어올렸는데도 매번 경영부실대학에 지정되니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부산예술대학의 경우 후 수익용기본재산 매각뿐만 아니라 이행과제 16개 중 10개를 이행하지 않아 경영부실대학에 계속 지정되고 있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부산예술대학은 경영부실대학 지정과 이에 대한 제재 조치를 정지시켜 달라는 행정 가처분 신청을 고려하고 있다.

■ 대학설립운영규정과 어긋난 컨설팅 결과= 교육부의 컨설팅 결과를 이행하다 폐쇄된 대학도 있다. 지난 해 9월 자진 폐교신청을 한 건동대가 대표적 사례다. 건동대는 지난 2006년 전문대학에서 4년제 종합대로 승격된 뒤 4년차인 2010년까지 교원확보율 100%를 채우지 못해 절반이 넘는 정원을 감축당하는 제재를 받았다. 이후 경영 악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진 폐교했다.

물론 대학설립운영규정은 ‘전문대학이 4년제로 전환한 뒤 4년째가 되는 해에는 교원확보율 100%를 충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건동대가 2010년 교육부로부터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을 받은 뒤 진행한 컨설팅 결과에선 ‘연차적으로 2012년 말까지 교원 확보율 61%를 충족시키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당시 파견됐던 컨설팅 팀이 대학설립운용규정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 컨설팅을 진행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건동대는 당시 교육부의 정원감축 제재에 대해 “교육부가 스스로의 컨설팅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고 반발한 바 있다. 결국 건동대는 당시의 대규모 정원감축으로 인한 경영난과 교육부 감사결과에 따른 요구조건을 이행하지 못해 폐교됐다.

반면 교육부 관계자는 “건동대는 전문대학에서 4년제 대학으로 전환하면서 전환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원감축 제재를 받은 것”이라며 “당시 경영컨설팅을 통해 도출된 과제에는 교원확보율 61%를 충족하란 과제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컨설팅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다 보니 대학 사정에 따라 컨설팅 방식도 유연하게 바뀔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형선 벽성대학 기획처장은 교육부 경영컨설팅에 대해 “해당 대학의 학사구조도 파악하지 않은 채 서류만 보며 학습 기자재를 교체하라는 식이었다”며 비판했다.

■ “실질적 발전 방향 제시해 달라”= 물론 경영컨설팅으로 효과를 본 대학도 적지 않다. 이행과제가 쉽지는 않지만 재학생 충원율이나 취업률, 교육비 환원율 등 주요 지표를 올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강원도 소재 A대학과 경북의 B대학 등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됐던 대학 중 6개교는 ‘부실’ 꼬리표를 뗐다. 남은 7개 대학 중 구조조정 이행기간이 남은 2개 대학은 탈출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도 회생을 넘어 경쟁력 강화 기반을 다지기에는 컨설팅 기간이 너무 짧고, 실질적 발전방안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2010년 경영부실대학에 지정됐던 B대학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오명을 벗었다. 그러나 이 대학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규모가 작고 등록금 의존도가 높아 자문단으로부터 구조조정과 재정확보를 위해 수익사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행과제를 받았다”며 “수익사업 방향이나 특성화 방안을 제시해 주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벽성대학 역시 컨설팅이 지나치게 지표 올리기에만 매몰돼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컨설팅에서 재학생충원율과 교원확보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언이 오가는 정도”라며 “대학 입장에서는 단순히 지표를 올리라는 말보다는 지표 제고에 관한 구체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흥대학과 통합한 한북대 측은 “경영컨설팅은 대학 통폐합과 구조조정 등 큰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3~4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이라며 “6개월 이상은 꾸준히 컨설팅을 진행해야 경쟁력 강화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 김동안 사무관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학의 신청사항이 합당한 경우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행과제가 수정될 수 있다”며 “대학의 회생 의지와 자구노력 정도에 따라 컨설팅이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지만, 대학이 합의한 이행과제인 만큼 최대한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