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득표 본지 논설위원·인하대 교수

엊그제 시작한 것 같던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2-3주가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캠퍼스는 활기가 넘쳐야 하는데 왠지 분위기가 무거운 느낌이다. 학생들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고 표정도 그리 밝은 것 같지 않다. 젊은 대학생들로 가득한 캠퍼스가 희망찬 모습으로 생동감이 넘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나 고민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단연코 학점관리가 최우선 관심사였다. 학생이 좋은 성적을 기록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신경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반기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빈둥대면서 논다고 ‘먹고 대학생’이란 말을 한 적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요즘 상황은 달라졌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기숙사 입주도 장학금 신청도 가능하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청년 실업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취업문이 좁은 상황에서 불안하기 때문에 현재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란 인식 때문이다. 한번 받은 학점은 평생 따라 다닌다. 물론 취업이 학점이나 스펙 중심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래가 불안하니까 믿고 의지할 것은 성적뿐이라는 인식으로 학점관리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또한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자포자기 하지 않고 학점관리에 몰두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청계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든 말든 학생들은 관심이 없는 가운데 자기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학생의 본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다행스럽지만 한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의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이다. 학점을 잘 관리하고 일정한 스펙을 쌓으면 미래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사회진출의 전망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꿈과 낭만을 만끽하고 젊음과 지성을 마음껏 발산해야하는 대학생들이 취업에 대비한 학점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현실이 안쓰럽다. 

학점 다음에 관심이 무엇인가 물어봤더니 학생마다 개인차는 있지만 대부분 학비, 하숙비, 용돈 등 경제적인 문제였다. 동록금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반값 등록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대학생들이 커다란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등록금도 비싸고 알바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도 턱 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점심을 건너뛰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고 싼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이 짠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시절은 부족한 것이 많다. 등록금이나 용돈 걱정하지 않고 풍족하게 대학생활을 보낸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마당에도 등록금과 용돈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점관리와 경제사정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은 현실에서 웃음 넘치는 활기찬 캠퍼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읽고 싶은 책도, 듣고 싶은 음악도, 보고 싶은 영화도, 가고 싶은 여행도, 이성 친구와 데이트도 하면서 즐겁고 알찬 대학생활을 보내야 창의력도 기를 수 있고 인성도 함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안 됐다. 대학생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꿈과 용기를 잃지 말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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