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와 자연의 선택

***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지난 호부터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진화(evolution)라는 말은 흔히 오해를 거느리고 다닌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진화에는 목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를 거치면 무엇인가 점점 나은 특성이 만들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는 아무 목표 없는, 그저 변화일 뿐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유전적인 특성이 종(種), 개체(individual organism), 분자(DNA와 단백질) 수준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이 변화를 돌연변이(mutation)이라고 부른다.

진화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한 축은 돌연변이고 다른 축은 자연의 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자연의 선택은 그 종의 유전적 특성을 보고 그 종의 번성과 도태를 심판한다. 어떤 특성은 그 특성 때문에 그 종이 번창하고 어떤 특성은 그것 때문에 그 종이 도태 된다.

성베드로는 사람이 천국 문 앞에 오면 그 선과 악을 보고 천당행과 지옥행을 결정하거니와, 자연의 선택은 돌연변이를 심사하여 그 종이 지상에서 번성하게 할 것인지 멸종시킬 것인지 판결한다. 

분진이 많이 발생하는 어떤 공장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모두 검은 색이던 그 지역의 나방이 몇 해 안 있어 모두 흰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캐는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타당해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다:

검은 나방들 가운데 갑자기 흰 나방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백색화’라는 돌연변이 때문에 생긴 변종(變種)이었다. 이 흰 나방은 검은 나방과 교접하여 흰 나방과 검은 나방을 섞어 낳았다.

나방을 잡아먹는 천적(天敵)은 새다. 흰 분진이 덮인 건물 벽과 가로수들에 붙은 흰 나방은 식별이 어려워 새들이 놓지는 경우가 많다.

먹이 찾기가 어려워진 새들은 식별 가능한 먹이인 검은 나방을 사냥하는 데 더 가열(苛烈)해졌다. 검은 나방의 개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다가 몇 세대 만에 그 지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나방의 총 개체수(population)는 오히려 불어났다. 검은 나방이 감소한 숫자 보다 흰 나방이 증가한 숫자가 더 컸던 것이다.

새의 총 개체수는 줄었다. 사냥하기 좋은 먹이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 공장지역에서 자연은 흰 나방 대 검은 나방에서는 흰 나방을, 나방 대 새에서는 나방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앞의 시나리오에서 흰 나방의 번성은 검은 나방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승리한 결과가 아니다. 흰 나방의 적자생존은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의 선택을 입은 결과다.

경쟁에는 공정이라는 룰이 개입하고 공정한 경쟁이라야 정의롭다는 일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에나 정의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싶어 하는 것은 반(反)진화론적 오류인 성 싶다.

자연의 선택에는 불가지(不可知)의 영역, 운명의 영역이 사람이 알 수 있는 부분, 제어(制御)할 수 있는 부분보다 무한대로 크다. 노자(老子)의 무위(無爲)는 진화의 세계를 두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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