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면 강호 죽림 사람, 부름을 받으면 황급히 공자 사람으로

***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이백(李白, 706~762)의 호기(豪氣) 넘치는 시 <여산요(廬山謠)>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본래 초(楚)나라의 광인(狂人)/미친 노래로 공구(孔丘)를 비웃는다네(我本楚狂人/狂歌笑孔丘)>(김달진 역해, 唐詩全書, 민음사, pp166~169 참조)

공구는 다름 아닌 공자의 이름이다. 공자를 공자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비 웃는다’라는 말을 한 층 격화하는 멸칭(蔑稱)이다. 공자를 폄하하는 첫 구절이 있어야 <오악의 신선을 찾아/먼길을 마다 않고/명산에 들어 놀기/일생에 좋아 했다.>가 받혀진다고 그의 문학관(文學觀)은 믿었던 것 같다.

이백이 살았던 성당(盛唐)시대는 공맹(孔孟)을 배척하고 노장(老莊)과 불교를 숭상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의 구조와 실행은 유교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었다.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치는 왕조가 바뀌더라도 한결같이 유교라는 인프라를 고수하고 그 위에서 가동되었다.

도가 사상의 핵심은 무위(無爲)다. 이렇다고 놓으면, 중국 사람들의 생각에 도가와 대척점에 있는 유가는 유위(有爲)가 된다. 무위는 도가의 자연철학, 사회철학, 정치철학, 양생(養生)철학을 아우르는 일관된 사상이다.

무위(無爲)는 직역하면 ‘없음이 하다’, ‘위함(목적)이 없다’가 된다. 최근 한 번역가는 무위를 ‘억지로 하는 것 없음’으로 번역하고 있다.(신주리 옮김, 왕꾸어똥 지음, 장자평전, 미다스북스, p129 참조).

그렇다면 유위는 작위(作爲)와 같고 무위는 부작위(不作爲)와 같다. 노자에서 무위는 ‘저절로’, 즉 자연(自然)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두 말을 겹쳐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연의 존재와 움직임은 부작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은 무위인 것이다.

유위 또는 작위(作爲)는 권력의 논리고 수단이기도 하다. 언필칭 ‘어리석은 백성’ ‘연약한 백성’을 위하여 수고와 지혜를 다하여 그들을 다스려 주는 작위 말이다.

작위성의 강도를 가지고 정치를 논한다면 그 극단에 공산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공산주의는 서양 근대성(modernism)이 낳은, 한 때 많은 사람에 매력을 뿜어내던 정치사상이다.

합리주의와 이성만능사상이 결합된 공산주의에는 유토피아 건설이 가능하다는 인식과, 반드시 그 건설을 이루어내겠다는 폭력적 의지가 결합되어 있었다. 인민 생활의 모든 방면을 공산당과 정부가 간섭하고 명령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공산주의다.

이에 비하여 노장(老莊)의 무위 또는 부작위(不作爲)는 자유의 논리고 수단이다. 중국에서 노장사상은 자유를 옹호하는 평민적 지식인과 시인 묵객들의 정신적 귀의처(歸依處)였다. 조정(朝廷)에의 참여를 사양하거나 외면했던 강호(江湖) 협객과 죽림(竹林) 은사(隱士)들은 중국 무협소설과 신선(神仙) 소설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는 좀 색다르다. 조선조의 지식인은 거개가 시문(詩文)과 경학(經學)을 겸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시문의 경우는 이백의 노장적 선풍(仙風)이 가장 숭모(崇慕)되었고 경학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자를 따르는 것이었다.

물러나면 강호 죽림 사람이 되고 부름을 받으면 황급히 공자와 주자(朱子)의 사람이 되었다. 이런 조선의 선비정신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江湖애 病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
關東 八百里에 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聖恩이야 가디록 罔極하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