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본지 논설위원·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흔히들 현대사회를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고들 하듯이 이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물리적, 지리적 국경이 큰 의미가 없는, 아니 아예 불필요한 그런 시대가 되었음을 고려한다면 국제화와 세계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잘되면 잘될수록 바람직하고 좋은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대학도 이와 같은 국제화, 세계화 추세와 흐름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고, 그러한 물결을 거역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앞서서 이끌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더구나 국제화, 세계화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하는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국제화, 세계화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 결과, 지금 한국에서는 대학의 규모, 특성, 수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체 모든 대학들이 세계화와 국제화를 위하여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대학의 세계화, 국제화바람은 물론 사회적 수요와 요구에 따른 것이기에 당연히 바람직하고 필요한 노력이지만 과연 우리는 올바른 취지와 목적에서, 올바른 방향과 내용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대학을 국제화, 세계화시키고 있는가? 이 기본적인 물음에 과연 우리 대학들은 쉽게 그렇다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먼저, 한국 대학들의 국제화 노력들이 자의적이라기보다는 타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일종의 강요된 선택이라는데 문제의 소지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학의 국제화가 유행병처럼 퍼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정부와 언론기관의 대학평가에 기인한 바 크다. 문제는 거의 모든 평가에서 국제화, 세계화 지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높기 때문에 대학마다 국제화와 세계화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과연300 여개 국내 모든 대학이 학교의 규모, 특성, 그리고 학생들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고 획일적인 평가기준에 따른 국제화와 세계화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지 않을 수 없다. 또 학생들의 전공과 능력에 따라서도 국제화와 세계화의 필요정도가 다름에도 이 또한 고려되지 않고 있다. 과연 모든 대학의 모든 학생들이 다 국제화와 세계화가 예외 없이 필요한 것인가? 소위 대학평가순위 1위인 대학부터 꼴찌인 대학이, 가장 우수한 학생부터 수준이 많이 처지는 학생까지, 국제적 감각과 능력, 그리고 경험이 절대적인 분야와 전공에서부터 국제화와 세계화가 그리 크게 요구되지 않는 분야와 전공에 이르기 까지 아무런 차별도 없이 획일적으로 강요받고 있는 기존의 국제화와 세계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기존의 대학 국제화와 세계화는 대학평가를 잘 받기 위한 평가라고 밖에 볼 수 없어서 가뜩이나 부족한 대학 자원의 낭비이며,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의 국제화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대학과 모든 학생들에게 다 동일하게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국제화가 필요한 대학과 학생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국제화 평가지표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적 국제화도 그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국인 교수들에게 의무적으로 영어강의를 강요한다면 교수들의 강의준비와 수업에 따른 노력과 시간은 몇 배 증대되지만 강의의 질은 모국어인 한국어강의보다 우수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강의를 듣기가 두 배 이상 어렵지만 습득되는 지식은 오히려 반감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영어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은 하나같이 ‘속빈강정’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학의 국제화가 교수와 학생,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에 가르치는 교수나 수강하는 학생 모두에게 부담만 되어 오히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국제화와 세계화는 꼭 필요하지만 그 방식과 내용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대학 국제화의 두 축인 영어강좌와 국제교류가 대대적으로 변해야만 국제화와 세계화의 취지와 목표에 부합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영어강좌는 내국인교강사보다는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교강사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공을 구분하지 않는 획일적인 영어강좌개설이 아니라 분야별 차별화도 필요하다.

국제교류는 어떤가? 대학의 국제교류는 자기 대학 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소위, ‘out-bound’와 외국 학생들을 자기 대학으로 불러들이는 ‘in-bound’로 이루어지는데 둘 다 문제가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out-bound에 치중하고 있으며, 그것도 특정지역의 특정대학에 집단적으로 보내고 있어서 국제교류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효과도 적다. out-bound 국제화의 혜택은 일부 학생들에게 국한되는 것도 문제이며, 이는 또한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국제화 이익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in-bound 국제교류가 바람직한 것이다. 다양한 지역과 국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과 대학의 모든 학생들이 어울릴 수 있고, 그래서 국제교류와 국제화의 이익을 누구나 공평하게 확산(diffusion of benefits)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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