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법 규정 없어···‘이사진 개편’으로 소유권 이전

기존 이사들에게 주는 ‘뒷돈 관행’ 문제돼야 드러나
법인·학내 지지 얻어도 사회 환경 따라 무산되기도

[한국대학신문 신하영·이용재·이재·손현경 기자] 강원도의 H대, 경북의 D대. 만약 요즘 같은 때에도 대학을 경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비교적 인수 가능성이 높은 대학들이다. H대는 설립자인 A씨가 재임 중 428억 원을 횡령, 구속 기소되면서 지금은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대학을 관리하고 있다. D대도 설립자인 P 전 의원이 지난 2005년 1월 도의원 출마자 등에게 공천헌금 1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면서 대학 경영능력을 상실했다. D대 역시 지난해부터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 대학 인수·매매는 어떻게 가능할까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대학은 더이상 매력적인 '매물'은 아니다. 그러나 의대설립을 목표로 대학을 인수하는 경우는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인수·매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 사양 사업 된 ‘대학 인수’ 발길도 뚝= D대 임시이사들은 내심 학교법인을 인수할 사람이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 법인 관계자는 “교육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재정지원제한대학에도 포함되지 않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의 생존을 위해 뛰고 있다”며 “재정 기여자나 재단 인수자가 나타나 살 길을 열어주길 바라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양 대학의 제 3자 인수 가능성은 낮다. 학령인구 급감에 따라 대학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5년 전만해도 수십억 원을 들고 찾아와 어디 인수할 대학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워낙 대학 경영이 어려운 때라 인수를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병원 의료진 확보를 위해 의대가 설치된 대학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최근 설립자의 비리로 퇴출위기에 몰려있는 서남대에 대해 전북지역의 한 종합병원이 인수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은 이런 이유에서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 인수·매매는 어떻게 가능할까?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때문에 통상 기업을 인수할 때 주식 매입으로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처럼 이사진 개편을 통해 소유권을 가져가는 방법이 있다.
 
◆ 대학 인수의 핵심은 ‘이사 개편’= 여기서 이사진 개편의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천문학적인 발전기금을 약속하며 설립자나 이사진을 설득하는 방법이 있다. 또 학내 분규로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재단 영입’ 형태로 대학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을 쓰든 기존 이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같다.
 
이 과정에서 대학을 인수하려는 측에서 이사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쥐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래 당사자만 알뿐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 사립대 법인 관계자는 “현행법상 사립대 이사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혹 돈이 오가더라도 거래 당사자끼리만 알지 이것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만약 현직 이사가 돈을 받았다면 이것은 바로 배임수재 혐의가 된다. 물러난 뒤에 받았다고 하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세법을 위반하게 된다. 대학 인수를 둘러싼 내막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대부분은 재단 인수자가 학교에 수백~수천 억 원의 발전기금을 약속하며 경영권을 가져간다. 교내 구성원은 대학을 인수하는 측이 제시한 발전기금만 알게 되고, 거래 당사자 사이에 오간 돈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 법원에 의해 돈 거래 드러나= 한국국제대의 경우 인수 후유증을 겪다 법원에 의해 개인 간 돈 거래가 드러난 경우다. 이 대학은 지난 1977년 설립된 진주여자전문대학이 전신이다. 학교법인 일선학원은 이를 진주전문대학(1989년), 진주국제대(2002년)로 개편하며 발전을 도모했다. 하지만 설립자 아들인 강경모 이사장이 학교 운영을 맡으면서 삐걱되기 시작했다. 강 이사장은 2003년 취임 직후 대학기숙사 건축비 과다계상으로 19억 원을 횡령했다가 구속됐고, 2007년에는 등록금 109억 원을 횡령, 재차 구속됐다.
 
강 이사장은 자신의 비리로 학내 반발이 거세지자 고교 동문인 하충식 강인학원 이사장에게 학교를 넘기기로 결정한다. 2008년 당시 경남 창원의 한마음병원을 운영하던 하 이사장은 병원 의료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의대설립을 노리던 차에 인수 제의가 들어오자 이를 받아들였다.
 
인수조건은 하 이사장이 학교 발전기금으로 1600억 원을 출연하는 것. 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인수조건이다. 하 이사장이 강 전 이사장에게 비공식적으로 주기로 한 돈은 134억 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 씨는 대학을 넘긴 뒤에도 돈을 받지 못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하 이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결국 둘 사이의 갈등으로 거래 내막이 드러난 셈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011년 11월 “강 전 이사장이 하 이사장에게 학교건립 출연재산 134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학 매매를 둘러싼 거래가 드러난 시점이다. 당시 하 씨는 강 씨의 개인부채 9억 원을 대신 갚아주고, 강 씨 소유 주택을 25억 원에 매입한 뒤 학교설립기금 명목으로 100억 원을 강 씨에게 지급키로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박대명 노조지부장은 “대학 인수를 위해 이사장 개인의 부채를 갚아주고, 개인주택을 매입해주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결국 하 이사장은 의대 설립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자 경영의지를 잃고 자신이 선임한 김영식 전 총장과도 갈등을 빚있다.
 
◆ 발전기금 말고도 뒷돈은 따로?= 통상 사립대를 인수할 때는 발전기금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상 ‘공식 인수자금’에 해당한다. 기존 이사들에게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대가로 제공하는 돈은 사실상 ‘비공식적’으로 오가는 인수 대가다.
 
한 사립대 법인 관계자는 “서울의 중소규모 대학의 경우 기존 오너십을 가진 설립자나 이사들에게 물러나는 것을 조건으로 쥐어주는 돈이 이사 1인당 수십 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고소나 고발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금액이 오갔는지는 당사자들만 안다”고 말했다.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대로 묻혀버린다는 뜻이다.
 
법인 이사진과 구성원의 지지를 얻어도 당대의 정치 환경에 따라 대학인수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A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은 설립자 작고 후 차남인 B씨가 실권을 잡았다. 그러나 1993년 입시부정 사건으로 B씨가 총장에서 물러나자 장남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지분 확보를 둘러싼 신·구세력 간 갈등이 불거졌고, 내홍이 심화되자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이후 임시이사들은 법인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단 영입을 추진한다. 그러나 중견 기업 3곳이 재단인수 후보자로 등장하지만 차례로 협상이 결렬됐다. 당시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선 구 재단 복귀보단 재단영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2008년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당시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세운 사립대 법인 정상화 원칙은 ‘종전이사 측에 정이사 과반수 배정’이다. 사학의 정체성을 가장 잘 계승할 수 있는 세력은 ‘임시이사가 파견되기 직전의 이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이사정수의 절반 이상을 줘야 한다는 논리다.
 
B씨는 이런 정치 환경의 변화로 지난 2011년 1월 이 대학 이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이사진 7명 중 4명은 구 재단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 대학 관계자는 “사실 노무현 정부 때만해도 B씨 측은 학교 복귀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며 “그러나 MB정부 들어 사분위원들이 교체되면서 복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대학 인수가 비교적 성공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대학이 성균관대다.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시점은 1996년. 삼성의료원에 필요한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의예과 신설이 확실시됐던 성균관대를 인수,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 삼성도 이사회 통해 경영권 확보= 삼성에 대학 인수 의향을 먼저 타진한 쪽은 성균관대로 알려져 있다. 당시만 해도 삼성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었다. 삼성의료원을 대학 부속병원화하고 의대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파트너가 꼭 성균관대일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당시 삼성이 인수를 고려한 대학은 성균관대 외에도 서울·경기도에 캠퍼스를 가진 B대와 서울·충청도에 캠퍼스를 가진 C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균관대의 적극적인 ‘구애’에 결국 대세는 성대 쪽으로 기울었다.
 
삼성과 성균관대가 합의한 인수 조건은 크게 4가지다. △이사회 정원 감축 △총장직선제 폐지 △의대 관련 건물·장비 투자 △교육시설확충 등이다. 특히 삼성은 의대에 대한 투자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지금도 매년 삼성그룹이 대학 측에 투입하는 1000억 원대 전입금 중 60%가 의대와 병원 운영비로 쓰이고 있다.
 
삼성이 성균관대를 소유·지배하는 방식도 이사회를 통해서다. 이사회의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행사하는 방식인 셈이다. 당시 성균관대를 인수한 삼성은 그룹 비서실장과 삼성소비자문화원장을 학교법인 이사로 파견했다. 현재도 이사·감사 5명 중 삼성 측 인사가 2명(삼성전기 전무, 제일모직 대표이사) 포함돼 있다.
 
이처럼 대학 인수·매매는 이사회 개편으로 이뤄진다. 얼마나 많은 이사 수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소유권이 결정되는 것. 최근 구재단과 이들의 복귀를 막는 세력이 격돌하고 있는 조선대가 단적인 사례다. 이사 9명 중 중도파로 분류되던 이사 2명이 구재단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간 구재단 복귀를 막으려던 세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대학 소유권·경영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에선 어느 쪽이 먼저 이사진의 과반수를 차지하느냐가 핵심”이라며 “만약 장기적으로 대학을 인수하고 싶다면 먼저 과반수의 이사진을 확보한 뒤 나머지 이사들은 임기가 끝날 때마다 자기 쪽 사람으로 채워나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