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민 서울대 교수

*** 한국대학신문 창간 25주년을 맞아 국내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환경을 돌아보면서 △우수한 연구 △참신한 연구 △흥미로운 주제를 가진 연구 등을 발굴해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 성과와 정보를 공유하는 취지에서 연속기획 ‘괴짜과학자들의 위험한 연구’를 마련했다. 자기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에 뛰어든 학자들의 파격적인 상상력을 뒤쫓아 가보자.

▲ 눈물이 식욕을 억제한다(?) 조영민 서울대 교수는 "눈물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성분을 분석해 스프레이로 만들어 밥을 먹기 전에 뿌리면 비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뇨병 전문가인 조 교수는 눈물이 비만을 억제해 당뇨병을 극복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고 있다. 조 교수가 연구실 한쪽 벽면에 30여가지 연구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재

당뇨병 전문가 조 교수, 다양한 시도로 당뇨치료 접근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눈물을 쥐어짜내는 멜로드라마를 보면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을까? 기발한 상상력이다. 여성의 눈물 앞에 짜장면을 비벼먹을 남성은 없다. 그런데 정말일까. 멜로드라마를 보면 다이어트가 저절로 이뤄질까?

단서는 있다. 여성의 슬픈 눈물은 특별한 기능을 가졌다. 2011년 이스라엘 연구팀이 여성의 슬픈 눈물이 남성의 성욕을 억제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여성들이 슬픈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을 남성들에게 냄새를 맡게 하자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가 내려갔다. 남성의 공격성이 억제되고 성적 흥분이 감소했다. 감정에 의한 눈물(Emotional tear)에 특별한 기능이 증명된 것이다.

성욕과 식욕은 인간의 5대 욕구가 아닌가. 둘 다 뇌 속의 시상하부가 관장한다. 눈물에 함유된 화학신호(Chemosignal)가 시상하부를 자극하는 것이다. 실제로 눈물의 냄새를 맡고 식욕이 억제된다면 눈물을 분석해 그 성분을 알아내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영민 서울대 교수(44·내분비과, 사진)의 흥미로운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실험은  5일 간 진행됐다. 조 교수의 연구팀은 건강한 여성 자원자를 모집했다. 18세부터 35세 사이의 여성이다. 오차를 줄이기 위해 월경주기까지 감안했다. 4명이 최종 선발됐다. 실제 실험에 쓰인 것은 이 중 2명의 눈물. 4명의 여성 중 2명은 충분히 울지 못했다. 남성은 없었다. “사회적 통념상 남성은 눈물을 잘 흘리지 않아 여성의 눈물만 실험했습니다.”

오전 8시, 여성들이 연구실에 도착하자 연구팀은 분주해졌다. 여성의 세수부터 통제했다. 세제와 타월은 연구팀이 준비했다. 피부에 자극이 덜한 액체 비누와 종이 타월이 실험자들에게 제공됐다. 세수를 끝낸 실험자들은 곧장 다큐멘터리를 봤다. 실험자들의 눈물을 짜낼 영상으로 골랐다.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해 MBC 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다. 인간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는 내용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간호사들에게 물었더니 이 작품이 가장 슬펐다고 하더군요.”

15분 짜리 영상을 틀자 예상대로 여성들의 눈시울은 붉어져갔다. 눈물수집은 연구의 관건이다. 신선한 눈물수집에 공을 들였다.  눈꺼풀 아래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1cm까지 흘린 눈물을 모았다. 피부에 묻은 이물질들이 눈물과 섞여 실험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눈물은 실험자들이 직접 손거울을 보며 수집했다. 실험자들은 한번에 1ml 가량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과 비교하기 위해 생리식염수도 똑같은 위치에서 흘려 용기에 담았다. 연구팀은 이 눈물과 생리식염수를 조 교수도 모르게 뒤섞었다. 둘은 색깔도 냄새도 없어 구별할 수 없었다. 

눈물과 생리식염수는 즉시 대기 중인 4명의 남성에게 전달됐다. 이들은 실험을 위해 전날 저녁 10시부터 곡기를 끊었다. 운동이나 음주도 금지됐다. 연구팀은 먼저 이들의 식전 식욕과 혈장 등을 기록했다. 남성 실험자들의 코밑에 여성의 눈물과 생리식염수를 적신 패치를 붙였다.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해서다. 남성 실험자가 붙인 패치가 눈물인지 생리식염수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남성 실험자들은 30분간 빵과 우유로 식사를 했다. 빵은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식후 혈액을 통해 음식섭취량이 기록됐다. 5일 동안 수집된 모든 데이터는 분석 전까지 봉인됐다.

연구팀은 빵을 먹는 실험자들을 주시했다. 몇 명은 전날보다 먹는 양이 줄었다. 그들이 눈물을 맡았을지 생리식염수를 맡았을지 모를 일. 그러나 기대감은 생겼다. 조 교수는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실험은 성공했을까.

▲ 감정에 의한 눈물(Emotional tear)이 식욕을 조절할까 조영민 교수는 감정에 의한 눈물이 인간의 뇌 속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테스토스토론(남성 호르몬)을 억제한다는 연구에 주목했다. 시상하부는 인간의 식욕에 영향을 주는 기관이다.

“실패했어요.” 조 교수는 당당히 말했다. “이스라엘 연구팀의 결과를 국내에서 증명해본 정도예요.” 실험이 끝난 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했다. 실험자들이 빵을 먹는 양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끝내 생리식염수와 눈물 사이의 규칙성은 발견하지 못했다. 생리식염수를 맡아도, 눈물을 맡아도 적게 먹을 사람은 적게 먹고 많이 먹을 사람은 많이 먹었다. 실험이 실패한 것이다. 재미난 연구는 상상에 그쳤다. 

“스트레스를 받아 많이 먹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덜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 개인차가 그대로 드러났어요. 눈물은 영향을 주지 못했죠. 실망했죠." 실망했다는 조 교수는 오히려 농담을 건넸다. “평소에 남자친구가 말을 안 듣는다면 미리 눈물을 받아놨다가 남자친구가 말을 안들으면 뿌려보세요. 공격성향이 줄어들거에요. 하하하.” 

실험 마치고 논문을 써냈지만 학회들은 외면했다. 심사하기 어려운 탓이다. 동료들로부터 엉뚱하다는 말도 들었다. 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당뇨병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뜻밖이었다. 그는 엉뚱했던 이 연구가 당뇨병 치료의 실마리를 찾는 실험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사실 당뇨병 전문가다.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욕조절이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에게 치료의 적은 비만이다. 사람의 눈물이 성욕을 억제한다는 연구를 접했을 때 그는 눈물 스프레이를 만들어서 식욕을 억제하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간 비만약은 많은 부작용을 일으켜왔다. 식욕억제제인 리덕틸(Reductil)은 심혈관질환을 유발했다. 다른 약은 심장판막질환이 생겼다. 폐동맥 고혈압을 유발한 약도 있다. 조 교수는 ‘굴곡진 어두운 역사’라고 표현했다. 상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눈물 스프레이는 달랐다. “밥을 먹기 전에 눈물 스프레이를 코에 칙칙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식욕이 줄어들고, 비만이 없어지고, 당뇨병을 극복하는 거죠. 눈물과 식욕의 상관관계가 증명해낸다면, 눈물의 성분으로 비만약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죠.”

Care Not Cure(치료가 아닌 관리). 현대 의학은 당뇨병을 이렇게 표현한다. 불치병이란 얘기다. 조 교수는 "라임이 살아있다"며 웃었다. 눈물 스프레이는 실패했지만 당뇨병 치료의 끈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혈장을 이용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수년 동안 소화기관인 위장관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포도당 등을 통해 당뇨병을 치유할 방법도 연구해 왔고요. 연구할 게 많아요.”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당뇨병 치료에 관련된 30여가지 연구가 종이에 빼곡히 써 있었다. 이 가운데 논문으로 완성해야 할 주제만 15건에 달한다. 나머지는 실험목록들이다. 연구의 끝자락엔 당뇨병을 정복(!)할 수 있을까. 유독 연구실이 작아보였다. 

▷연구자: 조영민 서울대 교수(44·내분비과)
▷주제: 눈물과 혈장의 화학신호가 식욕에 미치는 영향
▷연구기간: 2011년 5월 1일~201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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