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사회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대학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가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 발언은 평생을 교육부 관료로 살아온 분답게 책잡힐 게 없는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 발언의 키워드인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대학이 나아갈 ‘방향’과 ‘성과’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구체성에 이르면 교육부와 교수사회는 생각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늘날 교육부가 생각하는 초미의 관심사는 대학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한 대학의 구조조정과, 기업의 인력수요와 대학의 인력공급 간 괴리를 줄여 청년실업 문제를 경감시키려는 취업률 중시정책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장관은 정부가 관여하지 않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다수의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이 파국을 맞게 될 것이고 그것은 지역균형발전에도 장애로 작용할 것이라고 한다.

취업률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잘 반영하고 있고 대학의 경쟁력을 유도하는 긍정적 기능도 하고 있어서 향후에도 대학평가의 주요지표로 삼겠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방향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구현해가는 교육부의 방식에는 교수사회가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또 ‘지방대 육성방안’, ‘특성화 분야 육성사업’, ‘지역선도대학 육성사업’과 같은 재정지원사업을 앞세워 지방대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려는 정책방향엔 수긍한다. 문제는 정원 10% 감축과 같은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고 대학 구성원 간에 논의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조급함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취업률을 대학평가에서 중요지표의 수준을 넘어 거의 결정적 인자로 강요하고 있는 교육부의 처사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재양성을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이 쉽게 바꿀 순 없지 않은가. 사회의 수요와 대학의 인력양성 간의 괴리를 줄여가려면 장기적인 인력수급의 예측 아래 대학의 인력양성 부문을 조정해가야하는 문제가 아닌가. 단기적인 취업률 향상을 강요해서는 대학의 역량을 엉뚱한 곳에 소진시킬 뿐이다. 대학의 단기적 취업률은 우리 사회의 거시경제지표와 기업의 인력수급에 좌우되는 것이지 대학이 취업교육을 잘 시킨다고 해서 높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취업자 수는 정해져 있는데, 대학이 나서서 취업률을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본들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저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취업률을 강요하면, 대학은 개별 교수들에게 학생취업을 강요하게 되고 교수들은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업무에 쏟아야할 에너지를 제로섬 게임에 낭비하게 돼 결국 사회적인 손실로 이어질 뿐이다. 대학의 단기적인 취업률 해소는 정부가 경제정책, 성장정책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이지 대학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지금처럼 구조조정과 취업률의 잣대를 조급하면서도 큰 비중으로 들이미는 행위는 정책적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면서 그저 교수사회의 갈등과 소외를 불러 대학을 우리 사회 최고의 피로사회로 몰고 갈 뿐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의 성과주의로 인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 양산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해 오늘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대학은 교육부의 무리한 정책과 그기에 추종하기 바쁜 대학행정가들로 인해 피로에 찌든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위와 심심함, 휴식이 그리워지기만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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