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을보라②]지방대, 지역사회의 미래 등불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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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 외길인생… 현암 최현우의 삶과 교육보국<7>

*** 본지는 대학 창립자가 초기 건학이념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살아 있는 참 교육자’를 발굴, 소개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중이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인 현암 이사장은 지난 9월 1일 숙환으로 영면했지만 교육발전에 일생을 바친 그의 유지를 받들어 연재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앞으로 총 8회에 걸쳐 연재될 내용은 고인의 생전 인터뷰와 유족, 현암학원 관계자들의 증언, 기타 관련자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된다. <편집자 주>

▲ 경북전문대학 학위수여식을 맞아 훈사하는 고 현암 선생

정부와 공공행정기관들이 국민과 주민들의 현실적인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교육기관만은 미래를 지향하고 장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학교는 숭고하면서도 존엄한 목적을 지닌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 경북전문대학교와 동양대학교가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가 미래를 향한 영주지역사회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일 터이다.

그는 교육은 어제를 살펴, 오늘을 반성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하는 큰 계획이라고 늘 주장했다. 그는 대학이 지역문화의 담당자가 되어 지역 및 지역주민에 평생교육의 터전으로 각종 시민강좌의 개설, 도서관의 개방, 시설이용 등이 모색되는 개방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방도시라는 특정한 문화, 경제권에 뿌리내린 지방대학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지역 입지 조건을 유리하게 활용, 지역 밀착형의 선구적인 대학구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 즉 미래형 대학은 반드시 지방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전통이 있는 큰 대학은 지명도나 안정도 면에서 소규모 대학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재정과 조직 비대화에 따르는 경직성이 대학혁신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생각해볼 때 미래형 대학의 선구적인 태동은 대도시에 있는 대규모 대학보다도 오히려 지방도시에 기반을 둔 소규모 사립대학으로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대학은 지역의 평생교육센터로서의 기능을 겸비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는 대학이 결코 고등학교 신규 졸업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에게 부여된 교육, 연구, 봉사라는 3대 기능은 대학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향유하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던 현암은 지방에 그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그렇게 탄생된 것이 영주를 기반으로 한 경북전문대학교이고 동양대학교이다.

경북전문대학교 설립 당시 영주는 물론 전국에서도 전문직업인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기관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경북전문대학교의 설립은 우리나라 전문대학교의 교육환경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문대학’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1979년부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문대학교의 역사는 2013년 현재를 기준으로 34년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전에는 초급대학, 실업고등전문학교, 전문학교 등이 있었으나 전문대학이라고 호칭한 것은 1979년이다.

전문학교는 1970년에 4개교가 설립되고 71년에 9개교, 72년에는 경북전문대학교를 비롯한 10개교가 설립되었다. 따라서 경북전문대학교의 역사는 우리나라 전문대학교의 역사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문대학교는 근대 대학학제와 함께 시작하여 21세기 교육시장 개방 및 무한경쟁 체제에 이르기까지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중심축을 담당해왔다. 특히 광복이후 비약적 경제 성장에 힘입어 괄목할 발전을 이룩하였다. 최근 다매체 문화시대, 지식정보화 시대라는 내·외적 교육환경의 변화에 긴밀하게 부응하며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산파역으로서 그 소임을 다해 온 것이다. 즉 전문대학은 산업발전에 대응하는 노동시장의 수요 탄력성에 발맞춰 다양한 종류의 직업교육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경북전문대학교(개교당시 교명은 영주전문학교. 1985년에 개명)는 이러한 교육변화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72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설립됐다.

현암이 대학을 영주가 아닌 대구 등 다른 큰 도시에 설립할 수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에 대학은 세운 것은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과 더불어 지방에도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척박한 환경을 감안하면 지방에 전문대학을 설립한다는 것, 그것도 중소도시에 세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는 경북전문대학교 개교식 겸 학교장 취임식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무릇 학원이 진리 탐구의 요람인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 진리는 노력 없이는 터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하여 쟁취한 진리는 사회와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봉사정신은 인류의 자유와 평화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봉사 정신은 문화와 경제의 번영을 낳습니다. 우리는 봉사 정신으로서 자기와 지역사회, 지역사회와 국가민족, 국가민족과 인류평화라는 조화점을 이룩할 수 있도록 봉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개척과 봉사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따릅니다만 지역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가 번영하면 희생의 대가는 자기이익으로 순환될 것입니다.”

그는 경북전문대학교의 창학이념을 ‘새 역사의 개척’으로 정하고 1979년 영주전문학교(현 경북전문대학교) 부설 지역사회개발연구소를 설립하여 그해 영주지역개발 방향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영주가 시(市)로 승격되었을 때를 대비한 도시로서의 기본 틀과 미래상이었다. 영주전문학교에 재직 중인 각 전공별 교수들이 분야별로 연구논문을 작성하고, 외부에서 해당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통해서 분과별로 심도 깊은 토론을 거쳐 큰 틀을 완성했다. 분야별 외부전문가 초청, 세미나 개최경비, 세미나 준비 등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지역에 상주하면서 이 지역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일을 바로 학교가 맡아서 하도록 했다. 당시 그는 ‘영주시승격추진위원장’을 맡았는데 전문대 교수들로 하여금 영주가 시로 승격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도시로서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연구토록 했다. 경제, 문화, 관광, 산업, 도시개발 등 교수진 인력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그는 지역의 모든 특성을 대학과 연계시켜 지역발전의 견인역할을 대학이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항상 역설하였다. 현암은 교수들에게 지역과 대학이 연계된 연구 과제를 줌으로 해서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 교수들 자신은 실질적인 연구를 통해서 실력을 쌓고, 학생들은 실무위주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렸다.

이러한 규모의 세미나는 동양대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지역개발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소관이 동양대학교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세미나를 통해 ‘소백산 국립공원지정을 위한 세미나’, ‘동서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세미나’, ‘영주정보연구단지 조성을 위한 세미나’, ‘퓨처웍스 프로젝트’ 등의 굵직한 성과들이 나왔다.

그는 언제나 학교와 지역사회가 일체감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지역 속에 있고 어떤 의미로든 학교가 미치는 영향이 지역사회의 발전요인이 된다는 생각을 변함없이 갖고 있었다. 경북공고는 휴전 직후의 혼란과 궁핍을 겸한 시기에 대구라는 도시에다 설립했기 때문에 학교와 지역 간의 유대와 소통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주전문학교는 그의 고향인데다 도시와는 다른 지역 특수성이 있었다. 학교에서 지역사회에 무엇인가를 바라기 이전에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를 했을 때 학교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성립될 것이다.

영주전문학교 개교 직후에 한창 이름을 날리던 이어령 이화여대 교수를 초청해 ‘문학작품상에 나타난 한국인상’ 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가진 적이 있다. 강연장은 재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이 교수는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이 우리민족 고유의 정신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왔는지’를 특유의 재기 넘치는 달변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그 강연회에 참석했던 많은 주민들은 학교가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에 바로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일체감을 이루는 공동체의 유대감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아울러 갖게 된다.

사실 학교는 어떻게 보면 지역사회의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시작하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문화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학교는 지역사회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한국대학신문 편집국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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