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학평가 딜레마…해외 사례서 해답 찾기

현행 대학평가 방식에 대한 대학들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데 더 큰 문제점이 있다. 대학구조조정 평가의 딜레마는 질적평가에 우위를 두느냐, 양적평가에 우위를 두느냐다. 지금처럼 양적 지표를 계속 적용하자니 각 대학에서는 교육·연구기능이 마비되고 편법이 난무하는 등 부작용이 따른다. 그렇다고 질적 지표로 내실 있게 평가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대학협의체 등 복수의 평가인증기관들도 필요하고 변별력 있는 평가 및 페널티 적용기준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창간25주년 특별기획으로 현행 정부주도 대학평가의 현황과 문제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학평가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세계 주요국 대학평가’를 다룬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며 미국과 유럽(영국, 프랑스), 일본,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 국가 순으로 구체적인 평가제도와 방식, 정부의 활용방안은 물론 대학평가와 관련된 최근 이슈까지 살펴볼 예정이다.

이번 세계 주요국 대학평가 연재기획을 통해 각 국가별 대학평가방식이 자리잡게 된 정치·경제적 맥락부터 살필 예정이다. 나아가 각 정부가 이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고, 평가방식이 야기한 효과와 부작용은 무엇인지 진단함으로써 국내 평가방식의 개선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연재순서

<프롤로그>
① 미국의 대학평가
② 유럽(영국, 프랑스)의 대학평가
③ 일본의 대학평가
④ 중화권(중국, 홍콩, 대만)의 대학평가
⑤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알아보는 국내 대학평가 개선 방안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가장 최초로 대학평가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대학설립이 처음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거대한 대학협의체를 구성하고 평가인증기구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재정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평가인증기구의 자격을 심사한다.

유럽은 영국의 경우 국왕의 헌장을 받아 설립되며, 국가보조금을 배분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엄격하게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점은 국내와 비슷하나 페널티보다 질 관리에 초점을 맞췄고 평가지표 역시 질적평가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대통령 직속으로 대학평가기구를 둘 만큼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평가에 따른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며, 질적평가를 통해 대학에 재정적 자율권을 보장하고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본 대학들은 정부에서 공인한 여러 평가인증기관으로부터 평가 받는 시스템이다. 인증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강력한 제재가 가해진다. 그러나 평가인증프로그램이 다양한 만큼 각 대학의 유형과 특성에 맞는 평가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화권의 경우 중국과 홍콩, 대만 세 국가의 상이한 평가방식을 비교하기로 한다. 중국은 국가주도의 강력하고 폐쇄적인 평가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며, 홍콩은 반대로 국제적 수준에 통용되는 평가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대만은 대학평가 도입은 늦었으나 여러 방식을 시도해왔으며, 우리나라보다 앞서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페널티를 부여하다 논란에 직면한 바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학 평가는 어떠한 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처럼)이렇게 양적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는 나라는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정성평가를 도입하기엔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 25일 열린 본지 주최 ‘교육부 장관 초청 전국 대학 총장 간담회’에서 서남수 장관이 한 말이다. 이날 현행 대학평가방식에 대한 총장들의 비판이 쇄도하자 서 장관은 평가방식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일 간담회에 참석한 총장들은 지난 정부부터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구조조정 평가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대부분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과 부실대학 퇴출 등 구조조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평가방식이 획일화돼있고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공정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근본적으로 사립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어 △대학 특성에 맞는 평가지표 다양화 △계열별 평가인증 등 기존 평가결과 활용 △자발적 정원감축 유도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됐지만 모두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대신 서 장관은 이르면 이달 중 대학구조조정 정책 방향과 대학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대학구조조정 평가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섣부르게 지표와 비중, 평가대상 등에만 국소적으로 칼을 대기보다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구조조정방식과 평가목적부터 차근차근 논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학평가, 국가 철학과 직결”=서 장관의 말처럼 양적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는 국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재정보조금을 배분하거나 정원감축 페널티를 줄 때 대학평가 결과를 참고하는 국가들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학 교육·연구 수준을 유지·향상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대개 질적평가를 실시한다. 주요 평가기준은 일반적으로 △학문적 수준 △교육환경 수준 △사회적 책무 수행 정도 △대학의 자구노력 등이며, 대학들은 철저한 자체평가(Self study)를, 평가기관은 구성원 만족도 조사와 실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민원 한국대학평가원장은 “대학평가 방식을 살펴보면 해당 국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누가 평가하는지, 평가 목적은 무엇인지, 중요시하는 지표는 무엇인지, 정부에서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국가의 교육철학은 물론 마주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1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 때부터 ‘취업률’이 뜨거운 감자였다. 취업률 지표가 재학생충원율 지표(30%) 다음으로 큰 비중(20%)을 차지한 데다, 실질적으로 하위 15% 여부가 판가름 나는 지표였기 때문에 ‘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서 원장은 “세계적인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국가들도 대학평가를 경제정책과 연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면서도 “양적지표로만 평가하는 현행 국내 구조조정 평가방식이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평가결과를 근거로 사립대를 퇴출하거나 정원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으로 연결하는 것 역시 다른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좋게 말하면 ‘강력한 드라이브’지만 달리 말하자면 ‘야만적인 평가’로,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뿌리부터…불완전한 대학평가=국내 대학구조조정 평가는 대학설립준칙주의(이하 준칙주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난 1995년에 도입된 이 제도로 인해 최소한의 교육여건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73개 대학이 추가 설립됐다.

당시 정부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를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설대학에 대한 평가체계와 평가에 따른 제재조치는 함께 도입하지 않았다. 대학설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도록 대학들을 자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뒷일은 ‘나 몰라라’ 한 모양새다. 정부가 부실대학 책임을 마냥 대학에만 전가할 수 없는 이유다.

기존 대학들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교육부와 대학 모두 지난 3년간의 구조조정 평가 레이스로 많이 지친 기색이다. 각종 양적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중소규모 대학 교수들은 연구실 대신 각 고등학교와 기업을 전전하는 ‘세일즈맨’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마다 잦은 학사구조조정으로 비전문적인 교수와 방황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콩나물시루’에 비견되는 대형 강의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는 모두 상승했으나 교육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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