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학평가 한국에 물음을 던지다①미국> 교육부, 장학금·학자금 대출 등 보조금 배분 위한 평가인증

평가인증 없는 대학 재정지원 차단·사회서 소외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20세기 초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학평가체계를 갖췄다. 정부가 대학평가에 따라 재정지원을 달리하고 존폐까지 결정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학협의회의 자기규제를 통한 수준유지방식이 중심이 된 제도가 확립돼 있다.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초기 이민자들에게 교육 자체는 개인적·종교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대학들이 생겨났다. 미국이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교육에 대해 규정하는 헌법 조항은 없었기 때문에 각 대학들은 설립과 운영, 교육 프로그램 등 모든 분야에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율성 때문에 비전문가가 운영하는 대학이 난립하는 지경에 이른다. 전체적인 고등교육 수준이 심각하게 저해됐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자, 19세기 말 미국 대학들은 마구잡이식 설립에 제동을 걸고 스스로 고등교육 질을 관리하기 위해 대학평가인증 조직 설립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총 6개의 지역협의회가 구성돼 대학기관 평가인증이 이뤄졌고, 이어 시카고대와 컬럼비아대, 하버드대 등 명문대학 총장들의 요청으로 미국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Universities, AAU)가 발족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불공정 시비가 불거졌고, 평가인증기관을 인증하는 새 기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이에 따라 COPA(Council of Post-secondary Accreditation)와 CORPA(Comission on Recognition of Postsecondary Accreditation), NPB(National Policy Board on Higher Education Institutional Accreditation)을 거쳐 1996년 7월 출범한 비영리기구 ‘고등교육인증위원회(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CHEA)’는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3000여 개 대학을 아우르며 자율적인 평가인증기관 인증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율협의체와 교육부가 양대산맥=CHEA는 미국 교육부와 함께 대학평가 인증제도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같은 대학협의체 CHEA는 3000여 개의 회원교가 자율적으로 협의한 규약에 따라 평가인증기구를 지정하고 있다. 주로 대학 기관의 교육 수준점검과 향상에 초점을 둔다. 평가인증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사회는 대다수가 대학총장과 같은 교수들로 구성된다.

미국 교육부는 미국 연방고등교육법 규정에 따라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각 평가인증기관은 5년에 한 번 전문성에 대한 인증을 갱신 받아야 연방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미국 교육부에 의해 실시되는 평가인증의 주요 목적은 연방정부의 재정 보조금과 장학금이 인증을 받은 대학과 우수 프로그램에 투입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평가 주기는 최소 2~3년부터 10년까지 넉넉한 편이다. 신설대학은 설립 후 4~6년 뒤 협회에 평가인증을 신청하고 자체평가연구보고서를 제출하며, 관련 교수와 직원들의 평가(Peer review), 현장방문조사 등을 거쳐 인증 여부를 확인 받게 된다.

대학들은 지속적으로 개선 노력을 보고하고 갱신해야 하며, 각 평가인증기구는 수험생과 일반인들이 세세한 평가 결과를 열람할 수 있도록 자료들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CHEA의 인증기준은 △교육 품질 유지 여부 △교육적·사회적 책무 수행 여부 △자체평가 및 자구노력 △의사결정 절차의 공정성 여부 △인증결과에 대한 자체 평가 의지 △충분한 재원 확보 등으로 나뉜다. 각 평가인증기구의 회원교들이 갖춰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육적 성취를 위한 장려 정책이 있나’ ‘대중의 요구와 불만에 실질적·지속적으로 반응할 수 있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등교육 전문가와 대중의 참여가 보장돼있나’ 등의 세부 항목을 기반으로 질적평가가 이뤄진다. CHEA 이사회는 자체 평가보고서와 현장방문 보고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증 여부를 결정하며, 자격미달 판정을 받은 기관은 1년간 평가인증 신청이 제한된다.

반면 교육부의 인증기준은 평가인증기관이 대학을 평가할 전문성과 사회적 책무성 갖췄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평가 범위는 크게 △평가인증기구의 자격 여부 △조직적·행정적 요구사항 충족 여부 △평가인증 기준 준수 △운영절차 투명성 △인증 결과 공개로 구분된다.

▲ <표1>미국 CHEA의 평가기구 평가기준. 한국대학평가원 제공.

■수험생·기업에 대학 질 보증=미국에서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취득 여부는 해당 대학의 교육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요소다. 각 대학은 수험생과 일반인들에게 교육서비스 품질을 보증하는 도구로 평가인증 결과를 활용한다.

특히 미국대학 진학을 원하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유학생들에게는 진학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유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미국의 평가인증제도를 안내하는 글과 함께 CHEA와 미국 교육부 홈페이지 링크가 걸려있으며, 직접 해당 대학의 평가인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졸자가 미국 내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고자 할 때에도 평가인증은 강력하게 작용한다. 고용주가 지원자의 학력을 확인할 때 졸업한 고등교육기관이 평가인증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국가 공인 정규 대졸자에 해당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CHEA 또는 교육부의 평가인증이 해당 고등교육기관의 학위수여 권한과 밀접하게 관련돼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의사와 변호사 등 고등교육기관 졸업과 동시에 전문직 자격을 획득하는 특수한 직종의 경우 평가인증은 더욱 절대적이다. 평가인증을 획득하지 못한 고등교육기관을 졸업한 학생은 전문 자격을 공인받을 수 없다.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가 전미대학교수협의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도 재직 중인 대학이 평가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협회원으로서 누리는 명성이나 이익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한국식 평가 도입 두고 대학 자율성 침해 우려
오바마 정부, 대학 등급별 재정지원 정책 추진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2일(현지시간)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에서 대학평가를 통한 등급별 재정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뉴욕주립대 버팔로>

미국의 대학평가는 전통적으로 CHEA와 교육부가 이분화해 운영해왔으나 최근 미국 대학들은 교육부에 기존 역할을 모두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지난 8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이른바 ‘대학등급제 계획안’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월 뉴욕주립대 버팔로 연설에서 “등록금 수준과 재정안정성, 졸업생 연봉수준 등 양적지표를 기초로 한 대학평가를 통해 재정을 차등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등록금 인상을 막는 동시에 학자금 대출 부담 증가로 인한 가계 재정 악화를 막겠다는 종합 대책이다. ‘반값 등록금’ 여론과 대학 정원감축 구조조정을 대학평가와 연계한 우리나라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취업률 지표’에 상응하는 ‘졸업생 연봉 수준’을 비롯한 양적 지표로 평가하겠다는 태도도 흡사하다.

오바마 계획안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 2015년에는 미국 교육부의 대학 등급 평가가 시작되고, 이르면 2018년부터 매년 ‘재학생들이 지출한 총 비용’을 기준으로 매겨진 대학 순위에 따라 연방 보조금을 차등 지원 받게 된다. 높은 랭킹을 기록한 대학은 보조금과 학자금 대출금 한도를 넉넉히 받게 되며, 그렇지 않은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을 받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재정을 교육비로 할당해야 한다.

연방정부는 ‘대학 등록금 수준, 적정한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론 모으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오바마 교육개혁안’ 도입을 위한 수차례의 공청회 계획을 발표해 대학들의 여론 수렴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반값 등록금 여론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듯 미국 사회에서도 오바마 계획안이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학의 반발은 물론 고등교육 질 저하를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학등급제 도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학평가의 큰 축을 담당하던 대학협의체 CHEA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100년 넘게 미국 대학과 정부가 나눴던 대학평가 시스템의 권력을 정부에서 독점하겠다는 시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CHEA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디스 이튼(Judith Eaton)은 “연방정부가 대학평가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기존의 동등했던 파트너십이 수직적 관계로 바뀌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들이 국가 경제상황에 맞춰 사회적 책무 강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로 대학을 옭아매면 학문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고된 평가가 획일화된 양적지표에 치우친 데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스콜튼(David J. Skorton) 코넬대 총장은 “지역대학부터 선진화된 연구중심대학까지 다양한 형태의 대학들을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특히 졸업생 연봉수준 지표는 대학의 다양성을 무시한 것은 물론 빠르게 변하는 노동시장 환경에도 맞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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