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맞아도 협상과정서 결렬 다반사

“졸속 추진보다 구성원 지지 얻어 신중히 추진해야”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학령인구 급감을 앞두고 살길을 찾기 위한 대학 간 통합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숭실대와 인제대가 재단 통합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대학가에 ‘대학통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대학이 만나 통합이 성사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서로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통합 논의가 시작됐다 하더라도 △교수 업적평가 △학과 통폐합 △통합교명 결정 △고용승계 등 민감한 문제를 협의하다 협상이 결렬되는 일이 다반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부터는 대입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본격화되기 때문에 대학들은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통합의 험난한 과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끊임없이 통합을 시도하는 이유다.

◆ 끊이지 않는 인하대·항공대 통합 설= 최근 학교법인을 통합한 인하대와 한국항공대 간 대학통합설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하대 입장에서는 서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군사지역에 캠퍼스가 위치, 고도제한을 받는 항공대도 통합으로 캠퍼스 확장을 노릴 수 있다. 다만 대학 규모 등을 볼 때 사실상 ‘흡수 통합’될 가능성이 높은 항공대 측의 거부감이 강한 상황이다.

재단에 대한 항공대 측의 신뢰가 엷은 점도 통합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항공대는 1952년 국립대로 설립된 뒤 1979년 한진그룹(정석학원)에 인수됐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대의 지위를 잃었지만 대기업이 재단으로 영입됐기 때문에 기대감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재단으로부터 이렇다 할 투자를 받지 못했다는 게 항공대 측의 볼멘소리다.

지난 7월 말 양교 재단이 통합된 직후 이 대학 교수·직원·학생이 주축이 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비대위는 “항공대를 동양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으로 만들겠다던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항공대 등록금은 전국에서 제일 비싼 것이 현실이다. 한진그룹의 부당한 운영과 지원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통합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항공대 구성원들은 양교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항공대가 인하대의 단과대학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항공대만의 특성이 사라지고 인하대 소속 화전캠퍼스로 분교화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인하대는 비교적 통합에 적극적이다. 총장과 보직교수들 사이에서도 최근 통합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유일의 항공·우주분야 특성화 대학을 자교의 단과대학으로 흡수할 수 있고, 서울 진출에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이에 대해 학교법인 측은 재단통합이 대학통합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정석인하학원 관계자는 “법인 통합 이후에도 양 대학의 교명과 독립경영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인하대는 실용적 진리 탐구, 항공대는 항공우주 특성화를 갖춘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교 통합에 대한 인하대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통합 설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상호 이점 있어도 통합 지지부진= 대학 간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더라도 통합까지 성사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명지대와 관동대가 그런 경우다. 명지대는 ‘서울’이란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고, 관동대는 ‘의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이 양 교간 통합 설을 만들어 냈지만 아직까지 통합논의는 지지부진 하다.

양 교의 통합논의가 외부로 드러난 시점은 지난 2012년 9월. 이후 지금까지 명지대는 계속 ‘검토 중’이란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양 대학은 학교법인(명지학원)이 같기 때문에 재단 통합 작업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관동대가 지난 2012학년도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에 포함되면서 양교의 통합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명지대 관계자는 “명지학원 법인 측에서 통합을 추진 중이라기보다는 관동대에서 통합 제안을 받은 정도로 알고 있다”며 “현재로서 대학 통합이 가시화됐다거나 명지대에서 통합을 추진 중인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명지대의 한 교수도 “관동대가 의대를 보유하고 있고, 또 대학 통합 시 더 큰 규모의 거점 대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캠퍼스 별 학생 수업 교환, 서울캠퍼스 학생 수용 한계, 관동대와의 입시성적 차이 등의 문제로 통합이 쉽게 진척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인·대학 통합을 전후로 헤게모니 선점을 위한 알력 다툼이 일기도 한다. 특히 숭실대와 인제대의 재단 통합 추진의 경우, 통합법인 이사 구성 비율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남장로회가 설립한 숭실대와 백낙환 이사장이 소유권을 가진 인제대가 통합할 경우 이사회 지분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2008년에도 두 대학의 재단통합이 한차례 추진된 바 있지만, 통합 이사회 구성 과정에서 무산된 바 있다.

◆ 통합 이후에도 갈등·난항 이어져= 이미 통합이 이뤄진 대학이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물리적 통합을 이뤘더라도 화학적 통합을 완료하지 못을 때 나타나는 불협화음이다.

강릉원주대는 2007년 강릉대와 원주대가 통합된 대학이지만 교명을 ‘강릉원주대’로 결정하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양 대학이 서로 자교의 교명을 앞에 넣어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9년 강릉원주대란 교명으로 공식 출범을 했지만, 이후 4년이 지나도록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강릉원주대가 원주캠퍼스의 패션디자인학과와 음악과를 강릉캠퍼스로 옮기려고 하자 원주지역에서는 원주대를 분리해 강원대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에 앞서 통합 당시 강릉대의 공과대학을 원주로 이전하기로 했지만, 강릉원주대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원주시는 강릉원주대에서 원주대를 분리, 강원대와 통합을 진행하는 방안까지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가 정량적 평가지표를 재정지원의 기준으로 삼자 통합 후 고충을 토로하는 곳도 있다. 지난 1월 국립대로 출범한 인천대는 지난 2009년 교육부가 ‘국립대 구조개혁 추진계획안’을 발표하며 국립대 간 통합을 추진하자 유일하게 인천전문대학과의 통합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어 인천대는 지난 2010년 인천전문대학을 통폐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후 이 대학으로 편입한 전문대학 편입생 1800명이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대학 측은 고민이 깊다. 최성을 총장은 “통합으로 특례 편입한 학생 1800명이 전체 졸업생의 40%를 차지하는데 아직 이들의 취업률이 얼마나 나올지 예측불허”라며 “특례편입생들도 취업률에서 예외로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때론 탄탄한 자본이 잡음 걷어낸 경우도= 대학 통합과정에서 자본의 논리가 통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천대는 가천의과학대와 경원대가 통합해 지난 2012년 출범했다. 가천학원과 경원학원이 재단 통합을 완료, 가천경원학원으로 새롭게 출범한지 약 1년 만에 대학통합을 성사시킨 것이다.

경원대는 가천의과대학과의 통합 이전인 지난 2007년 이미 전문대학과의 통합을 이룬 상태였다. 경원전문대학을 흡수 통합하면서 전문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데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감이 작용했다. 학령인구 감소를 앞두고 수도권 작은 대학에서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계산이었다.

가천의과학대도 가천의대와 가천길대가 합쳐진 것으로 결국 2개 재단(가천학원·경원학원)과 4개 대학(가천의대·가천길대·가천의과학대·경원대)이 한 재단과 대학으로 통합돼 가천대가 탄생됐다. 이렇게 완성된 가천대는 현재 의학·한의학·약학·바이오 등 네 분야를 갖춘 바이오메디컬 종합대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천대의 통합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천의대와 경원대가 통합하며 교명을 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홍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30년 전통의 경원대 측에서는 통합된 교명에 ‘경원’이라는 이름을 넣길 바랐다. 그러나 통합교명 결정투표는 학생·동문을 제외한 보직교수 32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고 이런 바람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후보에 올랐던 △가천 △경원가천 △가천경원 △경원 등 네 가지 중 ‘가천’이 26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선정됐다. 이를 두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경원대 명칭변경 반대 성명을 냈다. 경원대 구성원들도 “교명 논의는 무효”라며 학교 측과의 갈등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결국 교명은 ‘가천대’로 결정됐다. 당시 통합 교명에 ‘경원’을 넣자는 주장은 이길여 이사장의 ‘5년 내 1000억 원 이상 투자’란 출연 약속에 묻혀 결국 잠잠해 졌다.

대학가에선 서로 다른 대학이 만나 통합까지 성사되는 과정을 ‘장기 이식’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통합을 추진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뜻이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사범대학 학장)은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대학 간 통합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준비 없이 서둘러 통합을 진행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양 대학 구성원의 합의를 구해 상세한 통합조건에 대해서까지 합의를 해나가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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