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5주년기획]“우리는 사회의 병(丙)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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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자' 조교, 학부생은 무시하고 교수는 종부리듯

담배 심부름에 대리운전까지…연구비 상납 관행 여전

[한국대학신문 이용재 기자 ] #1. “돈 들어왔을테니 확인해봐.” 서울 소재 K대학 연구조교로 일하는 손경현(28, 가명)씨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한 뒤 지난 학기 개설한 통장을 챙겼다. 손씨는 자신 명의의 통장에 들어온 100만원을 고스란히 C교수의 계좌로 입금했다. 연구비였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교수연구실로 돌아가려던 손씨는 무언가 생각난듯 급히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C교수가 시킨 담배 심부름을 잊었다.

#2. 충청지역에 위치한 한 국립대의 미술 관련 학과는 조교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까다로운 교수들 때문에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 후 사무조교로 일하고 있는  이예림(가명, 25세)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학부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한 교수가 책을 집어던지면 고함을 질렀다. 이씨는 밖에서는 온갖 교양을 떨면서 조교는 몸종 대하듯 하는 교수들에게 환멸을 느껴 현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너, 이 정도면 병이야”

조교는 대학의 감초다. 명칭도 다양해서 연구조교, 행정조교, 학부조교, 대학원조교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교들이 서로를 이르는 말은 따로 있다. ‘병(丙)’이다.

지난해 3월부터 서울 K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손경현씨는 “대학에서 조교는 한마디로 봉이다. 교수들의 잔심부름을 도맡는다. 사회적으로 한창 갑과 을 논란이 불거질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병이라고 불렀다. 정(丁)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공식적인 업무는 한국직업사전에 나오는 대학조교의 정의처럼 학술연구와 학사업무 보조다. 하지만 손씨는 자신을 ‘대학조교’가 아닌 ‘교수보조’라고 설명했다.

손씨의 하루 일과는 C교수가 애지중지하는 난을 닦는 일로 시작된다. 그는 “관리를 못해 난 끝이 노란색으로 변하기라도 할까봐 늘 노심초사다”라며 “그래도 어느 대학 교수처럼 개를 기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보통 교수실에서 5분대기조처럼 대기한다. 담배 심부름 등 교수가 시키는 갖가지 잔심부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그만의 야근이 시작된다. 학내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전화가 오면 지하주차장에서 교수의 차를 빼 집까지 모셔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손씨는 “친구들에게 말하면 처음에는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주는 것으로 오해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관행이라니까요”

이런 현실에도 왜 대학조교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손씨는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조교를 하면 적지만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교에게 지급되는 돈은 대학마다 다르지만 행정조교의 경우 주20시간 파트타임은 40~80만원, 40시간인 풀타임은 100~200만원가량이 지급된다. 연구조교의 경우 20~40만원의 조교비와 연구비가 지급된다. 연구비는 교수가 맡은 프로젝트마다 상이하지만 대개 100만원 내외다.

하지만 조교들에게 연구비는 숫자뿐인 돈이다. 연구비를 상납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손씨는 “연구비 상납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이라 이 부분에 대해선 교수와 조교 모두 아무 거리낌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 명의의 통장을 개설해 교수가 사용하거나, 교수 1인당 조교 제한이 있어 다른 조교를 자신인냥 대리 등록하는 등 명의를 돌려서 사용하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연구비 상납의 경우 비단 이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S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함예지씨(가명, 28세)는 이것을 ‘넣었다 뺐다’라고 표현했다. 함씨는 “산학협력단에서 프로젝트비가 들어오면 ‘넣었다 뺐다’를 한다”며 “일정부분은 조교가 갖고 나머지는 교수의 통장으로 보낸다. 비율은 보통 교수8:조교2 정도”라고 설명했다.

상납된 연구비는 어디에 쓰일까. 함씨는 “교수들은 진행하고 있는 연구비가 모자라거나, 다음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연구비를 확보하지 못한 곳에 쓰인다고 말한다”며 “그 돈으로 회식이나 엠티를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돈 때문에 조교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학위를 취득하거나 취업, 교직원 채용 우대 등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함씨는 “우리학부의 경우 조교 자리가 할당량이 있어 대학원생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다”며 “특히 풀타임 조교가 되면 일이 너무 많아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봉사’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학업을 위해서는 안 하는 것이 낫지만, 우리 학부 특성상 취업 때 교수들의 입김이 세 어쩔 수 없이 조교를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끼인 자, 조교”

학과사무실이나 대학본부에서 일하는 행정조교들에게는 또 다른 고충이 있다. 학부생들과 교직원 사이에 끼인 위치 때문이다.

충청지역 한 국립대학 행정조교인 이예림씨는 “조교 특성상 학부생들과 부딪칠 일이 많은데 가끔 무시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특히 군대를 다녀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부생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들이 학부생들 앞에서도 막말을 하는 등 무시하니까 학부생들한테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일을 미루는 교직원 때문에 속을 끓이기도 한다. 이씨는 “내가 처음 교육받은 업무는 학생관리와 수업상황 보고 같은 학사 업무에 관한 것인데, 회계 업무를 시켜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또 “야근도 비일비재하고 입시철 등 바쁠 때는 주말근무도 해야 한다”며 “야근 수당은 고사하고 급여도 정직원의 60~70% 정도만 주면서 하는 일은 똑같다”고 털어놨다.

그나마도 주머니에 다 넣기는 힘들다. 학과에 배정되는 업무추진비를 사적 용도로 쓰는 교수들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달 학과에 큰 행사가 있어 학부생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업무추진비가 바닥나 수 십 만원에 달하는 학부생들의 인건비를 내 월급으로 충당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이어 “월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지만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을이 봐도 불쌍해”

자신을 ‘을 중의 을’ 이라고 밝힌 시간강사 황효일씨는 조교에 대해 “불쌍하다”고 표현했다. 황씨는 “업무량만 본다면 모든 직원 통틀어 조교가 업무량이 가장 많다. 하는 일도 직원과 똑같아 조교가 없으면 학내 모든 업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교도 엄연한 직업인데 100만원 남짓 보수를 받고, 이 마저도 2년만 일하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또 “대학조교는 대표적인 학내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학조교는 비정규직 관련 법령에도 언급돼 있지 않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일컫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 위원회법 어디에도 조교에 관한 조항은 없다.

조교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고등교육법이다. ‘제14조(교직원의 구분) ③ 학교에는 학교운영에 필요한 행정직원 등 직원과 조교를 둔다’와 ‘제15조(교직원의 임무) ④ 조교는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을 폐지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대학노조 김일곤 정책실장은 “고등교육법에서 조교가 사무직 노동자들의 사무를 보조하게 돼 있어 값싼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며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행정업무를 하는 조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에는 갓 졸업한 학생들을 1년 단위로 채용해 취업률을 올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대학들이 조교를 대학 편리할대로 도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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