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본지 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판결비판,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 근거 있고 방법과 시기가 적절하다면 허용되는 비판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맘에 들지 않는다는 투정이고 비난일 뿐이다. 사법부 판결에 대한 비판은 종종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보수언론과 여당 정치권력이 합작이나 한 듯이 한 몸으로 사법부를 압박하는 상황은 유신 이후에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도 간혹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훼손할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 최근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판결로 촉발된 하급심 판결 비판은 그야말로 상식이하다.

새누리당은 판사출신 당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들과 법률가 출신 법사위원들까지 나서서 ‘해괴한 판결’, ‘민주주의의 실종’, ‘법허무주의’ 등의 용어를 써가며 논평을 내고 어느 최고위원은 “잘못된 재판은 상급심에서 당연히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대법원을 압박하면서 삼권분립의 의미를 망각한 발언을 쏟아 놓았다. 그야말로 해괴한 논평이며 민주주의를 실종시키려는 도 넘은 사법부 간섭적 발언들이다. 국정감사에서도 입맛에 맞지 않는 하급심 판결들이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도 난리다. 자기 입맛에 맞는 판결이면 환영하고 그렇지 않으면 좌편향, 몰상식, 무개념, 함량미달 법관 운운하며 사설형식을 빌거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징계도 강화하고 재임용절차를 거쳐 그들의 시각에서 맘에 들지 않는 문제 있는 판사를 걸러내야 한다며 판사들을 겁박하는 위험한 발상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이 공격하고 정치권력이 압박하면 네티즌이 신상 털기로 동조하는 상황에서 법관들이 양심과 법률에 따라 재판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법관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자기검열부터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사법의 외부로부터의 독립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되고 법치주의가 성숙한 단계에는 정치권력이나 언론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사법간섭은 줄어든다. 오히려 상급자의 인사평정이나 사법행정과 같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지금 사법부는 민주화 이전처럼 다시금 외부로부터의 독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법치국가에서 사법부도 마땅히 비판적 공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건전한 비판과 감시가 가능하도록 재판을 공개하고 판결문도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도의 자유와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확정되지도 않은 하급심 판결을 감정적으로 비난하거나 좌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잣대로 난도질하고 판사의 자질까지 거론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도를 넘은 비판과 감시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불러온다. 심급제도가 있는 이상 하급심 판결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은 최종심까지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법부와 제4부라 부르는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재판과 판결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은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야말로 민주주의는 실종되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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