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급감 대비, 상위그룹까지 정원감축 추진

하위그룹 대학부터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제한
정성평가 어떻게 하느냐 따라 대학 간 ‘이해득실’

[한국대학신문 신하영 기자] 교육부가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정원감축을 단행하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내놨다. 대학 입학자원이 급감하게 되는 만큼 급격한 혼란을 막기 위해선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정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연구 책임자를 맡은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17일 오후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학 구조개혁 토론회에서 “학령인구가 감소해 2020년 이후에는 대학의 정원 미달이 심각해진다”며 “부실 대학뿐 아니라 상위권 대학도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 왜?= 이날 발표된 ‘학령인구 감소 등 환경변화에 대비한 대학 구조개혁 전략과 방안’은 기존의 대학 구조조정 틀보다 ‘정원감축’과 ‘퇴출’이 강화된 안이다. 이대로 가다간 문 닫는 대학이 속출, 사회적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취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도 “현 정부 5년 동안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에서는 더 어려운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이 같은 방안에 힘을 실어줬다.

실제로 연구팀이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현재의 대입정원(55만9036명)을 유지할 경우 2018년에 고교 졸업자 수보다 대입정원이 9146명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이어 10년 뒤인 2018년에는 무려 16만1038명의 대입 정원이 남아도는 상황이 예상된다. 최소한 이 때까지는 대입정원의 16만 명(28.5%) 이상을 감축해야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전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전의 구조조정 방식이 하위 15% 대학을 기점으로 부실대학을 지정, 정부 재정지원을 제한하며 대학에 자율적인 정원감축을 유도한 방식이라면, 이번 방안은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정원감축을 추진한다.

전체 대학을 평가해 △상위그룹 △하위그룹 △최하위그룹 등 3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별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상위그룹에는 대학 특성화를 위한 재정 지원이 이뤄지지만, 정원감축을 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채찍보다는 당근을 주면서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반면 하위그룹부터는 반강제적 수단이 동원된다. 먼저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자격을 제한한다. 하위그룹에 속한 대학은 ACE(학부교육선도대학)·LINC(산학협력선도대학)·지방대학특성화·BK(두뇌한국)21플러스 사업 등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참여가 원천 차단된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에도 소속 대학이 하위그룹에 포함될 경우 국가장학금(1·2 유형)과 학자금 대출에서 제약을 받는다. 이는 ‘부실’을 안고 있는 대학에 대해 학생유치를 어렵게 함으로써 위기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위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 대학은 미리 정원감축을 통해 평가우위를 확보하란 뜻도 담겨있다. 배상훈 교수는 “장기 미충원 정원을 다음 해로 이월시키는 방식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하위그룹에 포함될 경우 학교폐쇄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도 경영부실대학에 선정된 대학 중 4개교가 폐쇄 조치됐다. 그러나 교육부는 향후 학령인구 감소 폭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방식으로는 선제적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구조조정 방안에서는 최하위그룹에 포함되는 대학에 대해선 학교폐쇄가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까지의 느슨한 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정원감축과 부실대학 퇴출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 기존 대학 구조조정 평가 제도와 새 평가 제도 비교 <출처:대학구조개혁 토론회 자료집>
 

◆ 해외 대학 구조조정 방식은?=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를 내기 전 일본·미국·호주 등의 대학 구조조정 방식을 조사했다. 일본의 경우 △평가인증제도 △국립대 법인화 △사립대 경영혁신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2004년부터 실시된 인증평가를 통해 공립·사립대의 학교폐쇄가 이뤄졌다. 한편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사립대의 경상비를 보조해 주면서 사학의 경영개선을 지원했다.

미국은 민간부문에 의한 대학인증평가제를 운영해 왔다. 고등교육평가인증협의회(CHEA)와 같이 대학 평가·질 관리 기관의 역할을 중시,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토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학들은 대학단위 평가와 학문분야 평가를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방·주 정부가 대학평가를 시행한 뒤 이를 근거로 재정지원과 연계하는 사례도 확대되고 있다.

호주는 2008년부터 대학 구조조정을 위한 ‘다양성·구조조정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금은 매년 1회씩 대학 간 경쟁을 통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이에 따라 호주의 대학들은 기금 지원을 받기위해 특성화와 산학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배 교수는 “해외에서도 대학 구조개혁방안 설계·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구조개혁 사업이 재정지원과 연계돼 추진되고,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는 평가인증제도도 확산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 향후 구조조정 어떻게 진행되나= 앞으로의 대학 구조조정은 부실대학을 퇴출시키는 방식과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는 방식이 ‘투 트랙’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물론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원리에 맡기는 방식도 있지만, 이 경우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때문에 일단 대학을 정리하려는 대학 설립·경영자에게 퇴출 경로를 마련하는 일부터 추진된다. 이는 부실대학을 폐교시키고 학교법인을 해산할 때 대학 설립자 등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방안이다. 다만 대학 설립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교협 등 협의체가 주도해 구조조정을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는 고등교육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꼽히지만, 대교협이 회원대학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인 점을 감안할 때 ‘태생적 한계’가 예상된다. 특히 회원 대학 간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이를 조정하는 문제가 난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연구팀이 제시한 방안은 지속 가능한 대학평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문적인 대학평가기구가 필요하단 얘기도 거론됐다.

대학평가는 모든 대학에 대한 상대평가를 실시, 하위 15%를 사실상 ‘부실대학’으로 낙인찍는 기존 방식에서 정원감축과 퇴출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배 교수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절대평가를 실시, 대학들을 그룹화 해 평가결과에 따라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체 대학을 평가결과에 따라 △상위그룹 △하위그룹 △최하위그룹으로 나누고 상위그룹에도 정원감축을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 새 구조조정안 지방대 '거부감'= 그러나 이 같은 방식에 지방대들은 벌써부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석규 목포대 총장은 “최근 3년간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선정 결과를 보면 지방이 수도권보다 3배 이상 많을 정도”라며 “이러한 방식의 구조개혁은 지방대의 지표 값 향상을 위한 편법 성행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를 지켜본 한 지방 국립대 관계자도 “국가 균형발전이 전제되지 않은 구조개혁은 수도권 집중화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새로운 구조조정 방안은 지금과 같은 정량평가를 근거로 할 경우 수도권 대학이 대거 상위그룹에 포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상위그룹의 대학에도 정원감축이 유도된다고 하지만, 해당 대학이 인센티브 대신 ‘규모의 경제’를 택할 경우 하위권 대학들만 대규모 정원감축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학 구조조정에 정성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날 발표된 방안에도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가 병행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정성평가를 진행할지가 향후 대학가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