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수많은 역사서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작품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래도 어떤 책들은 살아남았다. 그것들이 살아남게 된 힘은 무엇일까. 역사에 대한 키케로의 생각이다.

역사는 시대의 증인이고, 진실의 빛이며, 기억의 생기(生氣)이고, 삶의 스승이며, 옛날 일들의 전달자이네.(연설가에 대하여 제2권 36장)

역사가 기억의 생기이고 삶의 스승이라는 언명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가 시대의 증인이고 옛날 일들의 전달자라는 표명에 있다. 두 표명을 충족시킬 역사서가 내 생각엔 한 권도 없을 것이기에. 일단, 죽어야 할 한 인간으로서 역사가가 시대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신들의 지평에 자리해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그것도 증인으로 말이다. 특히 증인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지칭한다면 말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역사를 ‘옛날 일들의 전달자’로 보는 키케로의 생각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옛날 일들의 전달자로서 역사가는 원천적으로 시대의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태의 핵심으로 곧장 돌진하자. 키케로가 전하는 역사 서술의 법칙들이다.

누가 모르겠는가. 역사가는 어떤 거짓을 말하기 위해서 감히 어떤 만용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역사 서술의 첫 번째 법칙이라는 것을 말이다. 두 번째 법칙은 진실을 말함에 있어서 결코 주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법칙은 그러나 역사 서술에 어떤 호의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법칙은 어떤 악의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설가에 대하여 제2권 62장)

어느 것 하나 결코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키케로가 역사가에게 첫 번째로 거짓을 말하는 데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요청에 눈길이 간다. 이어서 진실을 말하는 데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요청도 흥미롭다. 역사가에게 중요한 덕목은 진실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실은 그 진실을 다룰 때 분별(non audere)과 용기(audere)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역사 서술은 이미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인 행위이라는 점을 키케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키케로가 역사가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사람들은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역사 서술도 강자의 입장에서 기술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키케로의 요청은 이런 통념에 대한 반박일 것이다.

역사가 어떤 특정 기간 동안은 특정 승자의 것일 수 있겠지만, 실제 역사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서술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힘 있는 자들의 입장과 생각에 의해서 역사가 서술되고 조작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언제가 역사의 심판(dammahistoriae)을 받을 거란 것. 이런 점들이 키케로의 생각이다.

역사를 지배하는 것은 필연(ananke)이 아니라 우연(tyche)이다. 역사의 아버지 투키디데스의 말이다. 강자가 항상 강자인 것도 아니고 부자가 항상 부자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키케로가 역사 서술에서 분별과 용기를 강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였다. 역사가에게 어떤 호의도 어떤 악의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그의 일갈도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키케로의 이런 주문은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어느 정도 효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 증인으로 타키투스가 있다. 타키투스는 <연대기> 서문에서 ‘어떤 애정(neque amore)도 어떤 증오(et sine odio)도 없이’의 정신으로 역사를 서술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정신 덕분이었을까. 타키투스의 역사서들은 역사의 혹독한 검증을 거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역사의 검증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말솜씨의 힘 덕을 본 게 아니고, 거짓과 진실을 다룸에 있어 ‘생각의 균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키케로가 역사가에게 요청하는 덕목도 개인의 당파적 이해관계와 감정적 애증 관계를 넘어서서 역사의 자기 운동 원리를 살피라는 통찰이었을 것이다. 이는 키케로가 역사가에게 분별과 용기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역사는 변하고 도는 것이기에 역사 자체를 두려워하라는 것. 이것이 키케로의 주문이다. 어쩌면 키케로의 이런 주문을 가장 반길 이는 공자일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것도 <춘추>이고, 나를 단죄하는 것도 <춘추>(知我者春秋罪我者春秋!)” 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