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을 ‘부당 저자표시’로 판정…보직 3개 그대로 유지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지난 8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이하 진실성위원회)에서 ‘부당 저자 표시’로 판정 받은 세종대 A교수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학내 보직을 3개 모두 유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자신이 지도한 제자의 논문을 표절한 정황이 분명한데도 세종대 측에서는 저자표시 문제로 결론내려 학내외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25일 세종대 등에 따르면 A교수는 자신이 지도한 박사과정생 B씨가 2008년 12월 발표한 석사학위논문 『한국어 속 일본어 어휘사용에 관한 논문』을 2년 뒤 연구 데이터 등 상당수 베껴 쓴 논문 『한국에 있어서 일본어 어휘의 사용 실태』를 모 학회지에 실었다.

두 논문을 대조해보면 표절 사실은 금방 드러난다. A교수는  B씨의 학위논문에 실린 질문지법 조사 개요와 데이터를 그대로 활용했다. A교수는 B씨가 세종대 대학생과 문화센터 학습자, 광진노인종합복지관 동아리 노인 등 총 6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째로 인용 없이 쓴 것이다.

분석방법과 도출된 결과까지 일치했다. 연구목적과 선행연구, 조사항목 분류와 순서가 표현상 조금씩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러나 A교수의 논문에는 B씨의 논문을 인용했다는 표시나 참고문헌 명시는 물론이고 머릿말 언급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A교수는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B씨에게 조사를 시켰다”, “오래 전부터 같은 주제의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B씨의 논문 아이디어 역시 모두 나의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당시 B씨가 제보자와 통화한 녹취록에 따르면 그는 “A교수가 원래 논문 지도에 적극적이지 않다. 해당 조사를 의뢰받은 적 없고 내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보자는 A교수가 표절을 인정하는 증언을 확보한 뒤 지난 3월 학교 측에 표절근거와 함께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이 대학 진실성위원회는 지난 8월 표절이 아닌 ‘부당한 논문 저자표시’라는 심의결과를 통보했다.

‘부당 저자표시’는 통상적으로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를 다룬 논문에 연구자의 이름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기여도가 없는 이를 연구자 명단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미 발표된 학위논문의 연구 내용과 결과를 인용 없이 베껴 학회지에 게재한 A교수의 경우는 ‘논문 표절’에 해당한다.

제보자는 “A교수의 논문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표절을 넘어 복사 수준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며 학교 측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세종대 진실성위원회 측은 피조사자인 A교수와 B씨를 함께 불러 조사했으며, B씨가 ‘석사학위논문의 연구가 A교수의 아이디어’라고 시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관계를 두고 봤을 때 이같은 진술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B씨는 현재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수료만 한 상태다.

더구나 A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사후 대응방식이 미온적이어서 학내에서는 보직교수에 대한 ‘봐주기’라는 의혹만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21일 진실성위원회 심의 판정이 나왔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A교수는 단과대학장과 특수대학원장, 연구소장 등 3개 보직 모두 해제 조치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종대의 판정 결과가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A교수의 고의성이 약화됐다는 점과 3개 보직을 해제하지 않은 점, 명문화 된 징계기준이 없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추후 인사위원회 징계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내외 반응이다. 연구윤리 위반 징계는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대양학원 정관 48조에도 ‘징계의결이 요구된 교원은 직위 해제가 가능하다’고만 언급돼있는 게 전부다.

엄종화 교무처장은 “논문표절과 부당 저자 표시는 명백히 다르다”면서도 “학술지 게재 논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도한 제자의 학위논문을 인용한 경우이기 때문에 표절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예측되는 징계수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 대신 이사회의 최종 결정에 달려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대학들이 연구윤리 기준과 위반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추세라는 점에 비춰볼 때 구성원들의 비판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 징계위원회 절차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연구윤리 위반 판정이 나면 미리 1차 제재를 가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는 박문일 의과대학장이 이달 초 아들을 의학전문대학원에 부정입학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징계위원회 소집 전에 보직부터 해임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은 또다른 황우석·강수경 교수가 나오지 못하도록 자체규정을 마련했다. 윤리 위반 사실이 밝혀질 경우 5년간 보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고 승진과 성과급·연구년의 불이익을 주는 등이 주요 골자다. 본부 차원의 추가 징계는 별도로 이뤄지게 된다.

한편 해당 표절논문을 게재한 학회 역시 판정 후 두 달이 지나도록 A교수나 학교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학회 관계자는 지난 25일이 돼서야 학교가 아닌 제보자로부터 의혹을 접수하고 “곧 예비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A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부당 저자표시’ 판정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면서도 “연구윤리 위반 의혹에 휘말려 유감스럽다. 보직에서 모두 물러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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