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감축 인센티브 효과 없어 지방대만 쓰나미 맞을 것”

“구조조정 법적 기반 확보하고 사회 인력 수요 고려해야”
“절대평가 도입해도 지역별·특성별 평가 안 되면 무의미”

[한국대학신문 민현희·신나리·손현경 기자] “상대평가를 실시해 하위 15% 대학을 가려내는 방식은 억울한 희생자를 낳을 수 있다. 대학구조조정은 절대평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또 입학정원 감축은 일부 대학의 폐교가 아니라 다수의 대학이 조금씩 부피를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관한 이 같은 대학들의 줄기찬 요구를 일부 반영한 새로운 구조조정안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이달 17일 연세대에서 열린 대학 구조개혁 토론회에서 절대평가를 통해 전체 대학의 정원감축을 단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대학들은 “결국 기존 구조조정 방식과 다를 게 없다”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술렁이고 있다.

특히 대학들은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대학구조조정의 법적 기반을 확보하고 정확한 목표치와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며 “세부적으로는 각 대학의 특성이 반영되는 평가방법을 고안해 대학들 간 상생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원감축 인센티브 안 먹힐 것” = 새 구조조정안의 핵심은 모든 대학의 정원감축이다. 전체 대학을 평가해 △상위그룹 △하위그룹 △최하위그룹 등 3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별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상위그룹에는 대학 특성화를 위한 재정 지원과 함께 정원감축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하위그룹은 정부 재정지원에 제한을 둬 구조개혁을 유도한다. 최하위그룹에 포함될 경우 학교 폐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학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인센티브로는 상위그룹 대학들의 정원감축을 유도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대학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상위권 대학은 대입자원이 급감해도 학생 충원에 대한 걱정이 없는 만큼 자발적으로 정원을 줄일 이유가 없고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정원유지를 통한 등록금 수입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한 상위권 대학 보직교수는 “정원감축 인센티브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다른 교수들과 ‘소용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학령인구가 감소해도 오겠다는 학생들이 많을 텐데 굳이 힘들게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다”며 “정원감축에 따른 정부 인센티브가 등록금 수입 감소액보다 월등히 많다면 모를까 실효성이 없는 방안”이라고 냉소했다.

또 박순진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은 “인센티브 부여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 고등교육예산부터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예산 증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상위그룹에 속한 대학이라면 수조·수천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을 텐데 정부가 인센티브를 준다고 한들 자발적으로 정원감축을 단행하겠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정부 재정지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호남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현재도 상위권 대학들에 정부 재정지원이 쏠려 있는데 상위그룹 대학에 특성화 재정에 인센티브까지 부여하면 나머지 대학들은 운영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하위권 대학들의 생존이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결국 또 지방대 죽이기” = 새로운 구조조정안이 현재와 같이 정량평가를 주요 근거로 할 경우 상위그룹에는 수도권 대학, 하위그룹과 최하위그룹에는 지방대가 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상위그룹 대학이 인센티브가 아닌 정원유지를 택한다면 하위그룹과 최하위그룹에 속한 지방대들이 대규모 정원 감축을 감내해야 한다. 지방대들이 “새 구조조정안이 기존과 다를 게 전혀 없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의원(민주당)이 이달 18일 내놓은 국감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대학정원 감축은 주로 지방대에서 진행됐다. 특히 서울지역 대학의 경우 정원 감축률이 5.9%에 그쳐 전국 평균인 16.4%의 3분의 1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전남과 경북지역 대학들의 정원 감축률은 각 31.5%로 서울의 5배에 달했다.

고석규 목포대 총장은 “그동안의 대학구조조정은 지방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최근 3년간 정부 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결과만 봐도 지방이 수도권보다 3배 이상 많다”며 “정량지표 위주의 구조조정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구조개혁은 지방대 위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지방대 총장은 “새 구조조정안은 ‘지방대 죽이기’라는 점에서 과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모든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지방대만 대규모 정원감축을 하게 될 게 뻔하다”며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대 육성을 약속해놓고 지방대를 구조조정의 희생양으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문에 정부는 새 구조조정안에 정량평가뿐 아니라 정성평가도 반영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이를 둘러싼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이운룡 영산대 기획처장은 “현재 많은 지방대들이 학생 교육에 투입될 예산을 각종 정량지표를 개선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정성평가까지 도입되면 대학들은 평가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정성평가가 대학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걱정스러워했다.

■ 정원감축 방식에 대해선 대학 간 이견 = 전체 대학의 정원감축에 대해서는 대학들 간 의견이 엇갈린다. 수도권 한 대학 보직교수는 “잘하고 있는 대학, 현재의 입학정원을 유지할 수 있는 대학들까지 정원을 줄이라는 건 억지고 역차별”이라며 “모든 대학의 정원감축은 상생을 앞세워 일부 대학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송희영 건국대 총장은 “모든 대학의 정원감축이라는 새 구조조정안의 기본 방향에 대해 동의한다”고 했고, 김민구 아주대 기획처장은 “필요에 따라서는 강제적으로라도 상위그룹 대학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 잘하는 대학이라도 규모가 큰 대학은 슬림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정원감축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 인력 수요, 교육 수요자의 니즈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성철 남서울대 입학홍보처장은 “고등교육 수요자의 니즈를 파악하지 않은 채 무조건 정원만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학과에 대한 평가조사를 실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원감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성열 경남대 대외부총장은 “새 구조조정안은 대학교육의 총량만을 따지고 있다. 구조조정은 총량 못지않게 사회 인력수요 전망에 근거한 분야별 양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며 “대학교육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총량의 조정과 더불어 특정 영역의 인력수요 전망에 기초해 ‘총량의 구성 요소별 조정’을 구조개혁의 하나로 상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 “구조조정안 확정 앞서 큰 그림부터 그려야” = 대학들은 정부가 새 구조조정안 확정에 앞서 ‘큰 그림’부터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구조조정의 법적 기반을 확보하고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구조조정의 효율적 실행을 위한 바탕부터 다져야 한다는 말이다.

권순기 경상대 총장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대학마다 입장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큰 그림부터 완성하지 않으면 지엽적인 문제가 본질을 가리게 된다”며 “이를 테면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의 학생 비율, 국립대와 사립대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을 먼저 고민하고 확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부적인 구조조정 방법론에 있어서는 대학들을 지역별․특성별로 분류해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더라도 전체 대학을 같은 기준을 놓고 평가한다면 상대평가 때의 부작용을 그대로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주장은 지방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정배 선문대 기획처장은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를 나눠서 평가하지 않으면 절대평가라도 지방대가 불리하다”며 “각종 지표에서 수도권 대학들이 유리한 만큼 지방대를 배려하는 평가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기영 영동대 대외홍보처장도 “최근 각종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서 대학 유형별 평가가 꾸준히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며 “각 대학을 지역별, 설립 유형별로 분류해 평가함으로써 대학들이 스스로의 강점을 살려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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