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야 할 것만 보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보지 않는다"

***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기원전 7세기 경, 어느 날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말의 상(相)을 보는 명인 백락(伯樂)을 불렀다. 백락은 천상의 말을 관장하는 별, 또는 신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날 목공이 그를 부른 것은 말의 상을 보는 사람을 증원하려고 그 후보자 천거를 부탁하려 함이었다.

당시 중국은 춘추시대였다. ‘중국’은 중원에 있는 여러 나라들을 뜻하는 집합명사다. 반드시 통일된 단일 국가를 지칭해 온 것은 아니다.

당시에 말은 오늘날 항공기에 견줄 수 있는 가장 가공할 병기이자 가장 빠른 운송 수단이었다. 각국 제후는 전투력을 증강하기 위하여 비용을 무릅쓰고 말을 구입하고 사육하였다. 오늘날 초음속 스텔스기 확보를 놓고 세계 각국이 경쟁하듯이 명마(名馬)를 얻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2500년 뒤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이 발명 되어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 동서양을 불문하고 말의 군사적 중요성은 이어졌다.

대적하는 양군에서 장수가 하나씩 나와 말을 타고 자기가 좋아하는 창이나 검을 들고 승부를 벌이는 장면을 역사 소설에서 읽는 것은 오늘날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장수끼리 벌이는 마상 대결은 그 날 전군의 승리와 패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싸움이다.

목공이 물었다. “자네 문중에 말의 상을 잘 보는 사람이 있는가?” 백락이 대답했다. “제 자식들 중에는 양마(良馬) 정도는 가려낼 능력이 있는 놈이 있습니다마는 천하의 명마를 볼 눈을 가진 애는 없습니다. 그런 능력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타고 나야 합니다. 제 친구 중에 구방고(九方皐)라는 자가 있는데 몹시 가난하지만 말의 상을 보는 데는 저에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목공이 구방고를 불러 명마를 구해 오라고 명령하였다. 석달 후에 그가 복명하였다. “찾아서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모래언덕(사구; 沙丘)에 있습니다.” 목공이 물었다. “어떤 말인가?” 구방고가 대답했다. “털이 누런 암말입니다.”

급히 사람을 시켜 말을 데리고 왔다. 본즉 검은 숫말이었다. 모래언덕에 다른 말은 없었고 그 말 한 마리뿐이었으므로 혼동하였을 리도 없었다. 목공이 백락을 불러 도대체 암말과 숫말도, 검은 말과 누런 말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명마를 찾아 낼 수 있겠느냐고 힐문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백락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차탄하였다. “아, 그 자가 여기에까지 이르렀는가. 그렇다면 나를 포함하여 그 아무도 그에게는 미칠 수 없겠구나. 그가 보는 것은 천기(天機)다. 그 정(精)을 얻으매 그 조(粗)를 보지 않는다. 그 안에 있어 밖은 잊는다. 보아야 할 것만 보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보지 않는다. 그는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 이상의 어떤 것을 보고 있구나. 그런 경지라면 암수나 색깔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백락이 아니었다면 구방고는 말의 암수도 모르고 색깔도 못 보는 엉터리 말 관상가로 우스개 소리 깜이나 되었을 것이다. 무슨 일에든 구방고가 제노릇하려면 우선 백락부터 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이 이야기는 노장(老莊) 계열의 책인 열자(列子)와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것이라지만 나는 야스오까(安岡正篤)가 쓴 <노장사상>에서 읽었다. 야스오까는 이 책의 서문에서 공맹(孔孟)에 노장(老莊)이 있는 것은 인가(人家)에 산수(山水)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구방고는 산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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