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률 본지 논설위원·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

지난 해 한국국제교류재단(KF) 초청으로 방한한 도밍게즈(Jorge Dominguez) 하버드 대학 부총장은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종교, 국가, 시장, 기부자, 명성 그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대학은 자유롭고 독립된 공간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이란 한 사회의 미래가치를 경작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신영복). 따라서 대학은 자본과 언론을 포함한 모든 세력으로부터 독립해야하고, 심지어는 과거와 오늘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참다운 대학이란 내일을 위한 가치를 잉태하는 미래창조공간이기에 현실을 비판하고, 권력에 저항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내야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대학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최근 대학가에는 “한국 대학, 이대로 좋은가?”라는 자성적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학이 그만큼 자율성과 공공성이라는 본질을 망각한 채 시장자본주의 경쟁체제에 의해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특히 최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조정의 문제, 50%에 육박하는 시간강사 의존의 문제 그리고 서열화를 통한 지나친 순위경쟁을 부추기는 대학 평가의 문제 등이 오늘날 한국 대학의 황폐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강사처우 개선은 좋든 싫든 정부와 대학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만 할 난제들이다. 그러나 특정 언론사가 주도하는 대학 평가는 대학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 대학 평가는 그 동안 대학 구성원들의 많은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순위경쟁에 뛰어든 일부 대학들로 인해서 적지 않은 위화감을 조성해왔다. 그리고 대학 공동체 정신을 위해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평가를 통해서 대학이 연구와 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고 더 좋은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평가 기준과 방법 그리고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먼저 보장되어야만 한다. 

언론사가 시행하는 한국 대학 평가의 문제는 우리의 고등교육 현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서구 중심적 기준과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평가 시스템에 있다. 언론사들의 대학평가는 영국의 특정평가기관들과 제휴하여 한국 대학을 서구식 평가 잣대로 서열화한다. 그리고 순위에 민감한 대학들로 하여금 대학의 체질을 개악시킴으로써 대학의 본질을 왜곡하고 기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구식 고등교육의 기준에 따른 대학 평가는 한국 대학들을 종속시키고, 더 나아가서 고등교육의 식민화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의 대학들이 서구식 대학평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그것은 서구식 대학평가가 동아시아적 고등교육 현실과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다.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평가의 핵심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평가를 시행하는 언론사들이 특정 대학의 재단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언론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대학들의 경우에도 평가의 주체인 언론사들에게 대학의 광고홍보를 집중적으로 의뢰함으로써 평가의 객관성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평가는 졸업생의 사회적 기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도 대학 평가가 필요하다면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고등교육평가기관을 통해서 우리 대학의 현실을 고려한 평가 기준과 방법을 계발하여 시행해야 한다. 대학으로 하여금 순위 경쟁에 매몰케 하여 인위적인 구조 조정을 강요하는 작금의 대학 평가는 낭만과 지성의 상아탑을 살벌한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척박한 고등교육 환경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구현하는 ‘미래창조’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유롭고 독립적인 참다운 대학만이 국가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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