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교수(의사소통센터)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왜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 위기’를 말하는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대화와 토론은 실종되고 말싸움과 힘겨루기만 무성하다. 삼권분립의 가치는 엉켜있고 여야 간에는 지루한 정쟁만 되풀이 되고 있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인가 싶을 만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현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본질이 제도적 차원의 형식적 문제를 넘어 구성원의 마인드와 성숙한 시민적 능력에 기반한 문화의 문제임을 느끼게 한다. 각자의 입장과 프레임에 갇혀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 가운데, 주의 깊게 판단해 보다 나은 결정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토론의 원칙과 과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힘이 없는 약자들도 인권을 존중받고, 공정한 과정과 절차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참다운’ 민주주의다. 1859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자유론>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이러한 민주주의는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토론의 가장 큰 의미가 서로가 공존하기 위한 상생의 지혜를 구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설득에 기반한 토론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시민의 힘을 요구한다. 시민적 역량은 일정 기간 교육을 받았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라, 토론할 수 있는 아고라를 만들고 토론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훈련과정을 통해 개발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대학에서 토론을 교양교과목으로 개설하고 운영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면 이제 토론을 ‘배우는’ 수업이 아니라 모든 교육과정에서 일상적으로 토론을 ‘하는’ 수업으로 확대돼야 한다. 각각의 주장을 하나씩 따져보고 비판하는 토론의 과정은 무엇이 진리인지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개인적으로 2002년부터 10여명의 학생들과 매주 진행하고 있는 <리더십포럼>의 경우 그야말로 행복한 토론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치·경제·사회·국제·여성 분야의 현안에 대해 매주 각자 조사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수업은 정규수업이 아님에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토론을 하러 모여든다. 그저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토론의 장에서 깊게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고 있다.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열어놓고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변화를 추구하는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토론은 사람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의 목소리만 들리거나 주류 담론만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소수의 논의들도 동등하게 다뤄져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유롭게 부딪치며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토론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누구나 하는 활동이 돼야 한다. 정답이라는 이름하에 무비판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교육 분위기와 힘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밀의 지적처럼, “인간은 본성상 모형대로 찍어내고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기계’가 아니라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대학은 토론의 가치를 아는 리더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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