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학평가, 한국에 물음을 던지다> ⑤전문가 좌담회<끝>

▲ 지난 5일 서울 장충동 소재 서울클럽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내 대학평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 서경아 전국대학평가협의회 부회장, 서민원 한국대학평가원장, 박순진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한국대학신문 백수현·이연희·이재 기자]본지는 창간25주년 특별기획으로 현행 정부주도 대학평가의 현황과 문제점을 보다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총 4회에 걸쳐 미국, 유럽(영국·프랑스), 일본, 중화권(중국·홍콩·대만) 등 ‘세계 주요국 대학평가’를 다룬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마지막 순서로 지난 5일 서울 장충동 소재 서울클럽에서 열린 좌담회에서는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내 대학평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대학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대로 된 평가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가경쟁력도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학평가 체계와 방법, 그 활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 모두 하나로 뜻을 모았다. 2시간 이상 진행된 이날 좌담회를 주요 발언 중심으로 정리했다.

◆패널 명단(사회 외 이름 가나다 순)
사회 서민원 한국대학평가원장(인제대 교수, 이하 민)
박순진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대구대 기획처장, 이하 박)
서경아 전국대학평가협의회 부회장(경희대 평가팀장, 이하 경)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이하 안)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이하 임)

▲ 서민원 한국대학평가원장

민 : 오늘 좌담회는 4회에 걸쳐 연재된 <세계대학평가, 한국에 물음을 던지다>의 마지막 차례다.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와 관련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건전한 대학평가 방향과 대안도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근본적으로 대학평가의 질 뿐 아니라 정부 평가도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우선 정부의 현행 대학평가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각국 대학평가 시스템과 이슈 중 논의해보면 좋을 듯 하다.

박 : 기획기사들을 보고난 뒤 우리나라 대학평가가 너무 급하게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행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평가는 ‘대학이 어떤 모습을 갖추었느냐’보다는 ‘재정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렇다보니 대학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번 연재기획 중 프롤로그에서의 대학평가의 기본적인 목적과 철학이 무엇인지 묻는데, 우리 평가에는 그 부분이 빠져있는 것 같다. 외국 사례를 통해 기본적으로 대학평가가 왜 필요한지, 평가를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경 : 동의한다. 우리나라 대학평가시스템의 한계는 재정배분을 목적으로 한 분배의 원칙에 있다. 현 평가지표는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학마다 설립 목적이 있고 추구하는 방향이 있는데 그를 반영할 질적 지표가 개발되지 않았다. 평가에 있어 미국은 연구와 교육의 비중이 균등한 반면 국내는 연구에 집중돼 있다. 교육관련 지표가 상당히 많이 개발돼야 한다. 수요자인 학생들조차 잘 이해할 수 없는 양적지표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현행 대학평가가 누구를 위한 평가인지 묻고 싶다. 평가 자체보다는 평가결과를 대학과 학생, 학부모 등 수요자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민 : 좋은 지적 해주셨다. 최근 세계적인 동향을 보더라도, 각 대학 인증평가에 학생들의 학습 성과 부분을 중시하고 있다.

임 : 연재기획 기사 중 양적지표를 적용하지 않거나, 대학에 대한 페널티가 없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니 우리나라와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대학평가를 왜 하는가’라는 목적 자체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행 대학구조조정 평가처럼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 같이 학벌 서열화·수도권 중심의 국내 대학토양을 감안한 뒤 평가방식을 설계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민 : 참고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국내 대학평가는 1982년 대학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자율적 평가 시스템을 갖추긴 했다. 1990년대 말부터 정부가 재정지원을 목표로 평가체제를 도입했고, 2000년대 후반 고등교육법에 교육부가 대학평가인증기구를 인정해주는 형태로 바뀌면서 정부가 대학평가를 주도하게 된 측면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무한경쟁시대가 되면서 다른 국가들에서도 대학평가를 재정배분과 연계하기 위한 경향을 띠고 있다.

▲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

안 :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부터 ‘부실대학’을 가려내는 형태로 변했다. 반값 등록금 여론이 높아지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고등교육예산지원확보계획이 수립될 당시 사회적으로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상당했다. 정부주도 대학평가가 상당수 구성원들에게 지지받지 못한 이유는 교육의 공공성과 지원이 미미하고 서열화 및 지역대학의 고통 등이 충분히 예견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통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니 ‘지방대 죽이기’ ‘서열화 고착’ 등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학은 사회를 가장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취업률을 높은 비중으로 정량평가 하겠다고 하니 이는 대학을 종속시키고 통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만약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와 자치활동 활성화, 교직원들의 사회적 기여 등을 지표로 대학을 정성평가 한다면 고등교육이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추상적인 아이디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대학이 이 사회와 국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 : 가장 처음 연재된 미국의 대학평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학평가기구를 자율적으로 설립하고 평가해왔기 때문에 일본과 중화권 국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강력한 대학평가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평가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어떤 시사를 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했으면 한다.

박 : 미국의 경우 시민들이 국가 설립을 주도했던 역사적 배경이 작용한 것 같다. 보다 전문적인 대학협의체가 자율적으로 평가하고 국가가 이를 참고해 배분하는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비해 국내 대학평가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크게 개입되다보니 고착화된 서열화를 더욱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학평가를 논하기 전에 국가철학과 교육철학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부의 현행 대학평가 방식과 양적 위주로 치우친 지표, 앞으로의 계획을 살펴보면 교육적 가치가 부재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인다.

▲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임 : 덧붙이자면 정부는 대학평가를 대학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 자체가 이미 고등교육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실제로 지역대학 황폐화, 기초학문 축소, 비정년 교원 처우 악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나.

경 : 지적한 것과 같이 교육기관을 평가하는 지표에 사회적 가치를 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각 대학의 자율성, 고유성, 학문의 책임성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학평가의 지표는 결국 고등교육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키게 돼있다. 이제는 대학평가의 정의와 목표, 기준을 국가 차원에서 명확히 세울 때가 됐다. 그래야 교육강국도 되고, 국가적 숙원인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할 수 있지 않겠나.

박 :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진행하는 대학기관평가인증 지표는 대학 현장에서 볼 때 정부 평가지표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다. 대학으로서의 기본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즉 대학들의 설립 목표와 기본적 여건을 평가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하기 때문에 평가목표도 분명하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구조조정 대학평가는 그 기준이 너무 단순하다.

임 : 동의한다. 현재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대학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교육여건을 명시하고 있다. 추가적인 평가를 통해 재정을 차등지원하고 처벌할 것이 아니라 엄연한 법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평가를 통해 페널티만 줄 것이 아니라, 장기적 계획을 갖고미래를 위해 강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구조조정은 고등교육법 특례조항을 만들어서라도 비만한 대학을 줄이도록 하고, 대학평가는 기본 취지를 살려 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안 : 정부는 어려운 지역대학을 도와주면서 국가의 균형발전, 고등교육의 질 발전을 꾀하고 민간은 오히려 혹독한 평가가 있는 틀로 가는 것이 온당하다. 학령인구 감소가 강력한 구조조정 퇴출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지만, 사실 그 부분은 정부가 안해도 대학이 알아서 한다. 서울 최상위권 대학들은 이미 정원이 4~5만 명에 이를 정도로 비만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학 서열화와 특정대학의 권력 고착화까지 우려된다.

민 : 유럽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영국은 평가를 기반으로 정부가 재정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프랑스는 평가기구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고등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다. 그러나 정부가 권한을 휘두르는 형태는 아니다. 유럽 대학평가는 전문성과 자율성의 관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안 :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68혁명 등 대학이 중심이 된 사회변혁을 겪은 뒤 무상 고등교육에 대한 의식이 발달했다. ‘출생선은 달라도 사회 출발선은 같아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그래서 대학에 대한 지원도 많이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학을 처벌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등교육을 바라보는 국가적 철학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 서경아 전국대학평가협의회 부회장

경 : 유럽이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평가결과를 통보해 처벌이나 경고를 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게 하고 우수사례를 공유하도록 격려하는 방식 말이다. 평가결과를 공유해 정체된 교육과정을 혁파하는 효과를 내야 한다. 개선의지를 북돋는 자극이 평가의 역할인데 국내 평가는 대학가에서 ‘싫은 평가’가 됐다. 평가결과의 유익성은 논의되지 않는다.

박 : 평가결과를 활용할 때에도 자율성을 줘야 한다. 정부가 평가결과를 활용할 방법을 다 정해놓지 않았나. 평가결과를 놓고 대학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철저하게 경쟁이기 때문에 다른 우수사례를 공유할 기회도 없다. 대교협 대학평가기관인증은 다른 대학 사례를 살필 여유가 있는데 정부평가는 불가능하다.

민 : 일본 대학평가의 특징은 자율협의체와 정부주도 평가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무관하게 대학을 평가하는 기구가 11개에 이른다. 국가가 국립대 법인화 뒤 질 관리를 위해 하는 평가도 있다. 민간기구가 자율적으로 평가하고, 정부는 이를 활용하는 것이 기본 체계다. 다양한 평가체제를 인정하고, 또 갖춘 것이 특징이다.
중화권은 또 다르다. 홍콩은 국제적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평가를 하고, 그런 기구를 운영한다. 대만도 국가발전에 대학을 잘 활용한 경우로, 국가자체의 생존과 관련해 고등교육을 발전시키고 있고 국가와 평가기구의 관계가 균등하다.

박 : 중국은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중국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일부 도입한 이후에서야 고급인재를 양성키 위해 전략적으로 대학을 육성, 발전시키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수요가 많지 않아 이를 유인할 목적으로 대학평가 통해 대학의 질 관리에 들어간 것이 역사적 배경이자 과정이다. 오히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학령인구 감소 이슈를 다뤘기 때문에 참고해볼 만하다.

민 : 일본은 사회적으로 사학의 영향력이 강하다. 그래서 평가가 쉽진 않았다. 1947년 대학기준협회가 있었지만 90년대까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일본에서 국내를 방문해 평가체계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국내 대학기관인증평가는 국내 대학의 인프라를 다지는 데 역할을 했다.

경 : 5년여 전에 비해 인프라 구축에 효과가 있었던 것 맞다. 문제는 인프라 구축 이후 평가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본 인프라가 구축된 이후에는 질적 평가가 시작됐어야 했는데 여전히 정량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지표가 그러하니 대학들은 여전히 정량적 성과를 내는 곳에만 예산을 쓴다. 이제 질적 발전은 학교에 맡겨야 한다.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한 일본의 평가시스템을 눈여겨 볼 때다.

민 : 대학평가는 항상 대학들이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서 대학자체평가(Self study)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체평가만으로는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으므로, 동료평가(Peer review)를 병행한다. 대학자체평가와 동료평가가 모여 진짜 신뢰할 만한 평가가 나온다.

▲ 박순진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장

박 : 그 같은 평가를 긴 안목에서 진행해야 한다. 정부의 현행 평가방식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국정목표가 너무 많이 담겨있다. 구조조정도 해야 하고, 지방대학도 살려야 하고 특성화도 해야 한다. 너무 많은 목표를 추진하려니 엇박자가 많다. 정책목표를 단순화하고 평가의 기본목적인 교육적 가치에 맞는 평가를 해야 한다.

민 : 대학자체평가와 정부의 적극적인 외부평가는 구조적으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 균형이 깨지면 고등교육이 발전하기는 어렵다. 평가결과로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을 나누는 것보다는 대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할 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안 : 평가는 고등교육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대교협이 하든, 정부가 하든, 또다른 권위 있는 민간기구가 하든 상관 없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고등교육이 발전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대학평가가 돼야 한다.

임 : 평가를 위한 전제조건 자체가 없다. 대학의 양극화와 서열화, 재정위기 등 문제가 많다. 근데 평가가 이 위기를 더욱 조장시키지 않나. 그리고 평가지표에서 좋은 결과를 내려면 의사결정에 앞서 대학구성원과의 대화는 꿈도 못 꾼다.

경 : 결국 고등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부합한 평가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어떤 인재를 길러낼 것인지, 그 인재가 세계적 수준에 걸맞은지 고민하고 그런 인재를 길러내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민 : 국내 고등교육의 위기가 코 앞에 있다. 학령인구 감소도 문제지만,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 자체도 크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학의 위기를 걷어내는 길은 평가체계에 있다. 패널 분들 모두 선진적인 평가체계를 도입해 대학교육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해주셨다. 장기적 관점에서 ‘고등교육 발전을 위한 진짜 대학평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번 좌담회를 마무리하려 한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