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세상살이로 그간 잊고 있던, 묻고 있던 생각과 말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재해석해줄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를 연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생각은 ‘나’의 것이다. 말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생각이 말로써 나타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모든 사람의 것인 말을 통해서다. 말은 생각을 담아내며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소통될 수 있게 한다.

한어(韓語)의 주인은 한어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다. 영어의 주인은 영어를 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다.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조금만큼 주인이 된다.

경제학에 공공재라는 용어가 있다.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라는 뜻이다. 노벨상의 경제학자 P. 새뮤엘슨은 공공재를 비배제적(非排除的, non-excludable) 이고 비경합적(非競合的, non-rivalrous)이라는 특성으로 정의하였다.

비배제적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재화의 사용이 허락되어 있어 그 사용을 금하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경합적이라는 것은 이용자의 숫자가 많아져도 보다 적은 사람이 이용할 때와 같은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공재의 예로 흔히 꼽히는 것이 도로, 교육, 국방이다. 그러나 이 셋은 비배제, 비경합 원칙을 완전하게는 만족시키지 못한다. 도로에는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배제되는 도로가 있다. 또 통행량이 너무 많아지면 서로 먼저 가려는 경합이 붙게 될 수도 있다.

교육은 학비가 없거나 수능 성적이 미달하여 배제되는 일이 항상 생기며 입학 정원이 있는 학교에는 지원자 사이에 경합이 벌어진다. 국방은 외국을 방위해 주지는 않으므로 그 혜택이 외국인에게는 배제되며 특히 적국의 국민에게는 이쪽의 방위가 침략이 되는 경우마저도 생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말은 완벽한 공공재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사용하더라도 배제나 경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부분 그 과목의 말을 배우는 것이다. 경제학 공부는 경제학이 가진 단어와 문장을 공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재는 경제학의 단어다. 공공재를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경제학의 문장이다.

학문마다 그 학문에 고유한 단어와 문장이 있다. 물리학에는 물리학의 것이 있다. 영어에 영어의 단어와 문장이 있고, 한어에 한어의 단어와 문장이 있듯.

그림과 음악도 말이다. 요리도 말이다. 말만이 말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을 담아내고 사람들 사이에 소통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표현, 곧 문화 전반이 말이다.

문화는 그것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 즉 공동체의 것이다. 생각은 개인의 것이다. 생물 세계에 자연의 선택이 있는 것처럼 문화의 세계에는 ‘문화의 선택’이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생각은 생물학의 돌연 변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들 가운데 어떤 것은 문화의 선택을 입어 모습을 얻어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오래 가고 널리 퍼진다. 장수(長壽), 번식, 전파(傳播)를 거치면서 문화는 축적되어 거대한 숲을 이루기도 한다.

개인의 생각은 작고 짧다. 집단의 문화는 크고 길다. 그러나 집 속에 사람이 산다고 해서 집이 사람보다 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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